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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rene Mar 23. 2020

N번

N번방, 박사 방 문제에 대하여

주말 내내 고민했다. 이 소재로 글을 써도 될 지에 대해서. 써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사실 [프리 하지 않은 프리랜서 이야기] 이후에 연재할 계획인 [한국에서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하여]란 시리즈를 연재하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남자들의 세계가 깊게 병들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병든 남자들의 세계가 끔찍하고 가혹하게 드러난 것이 이번에 드러난 텔레그램에 있단 N번방과 박사 방 등과 같은 방일 것이다.


N번방 등에 들어가서 영상들을 즐겨보고 그걸 확산까지 시킨 자들은 처벌하는 것을 넘어서 [성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  및 공지제도]를 통해 신상을 공지하고 그들 거주지 인근에 사람들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성범죄자들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상으로는 그 영상을 만든 사람들까지는 거기에 엮어  넣을 수 있지만 그 영상을 소비한 자들은 그럴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것이 천추의 한이다.


작년에 한창 시끄러웠던 한 여자 유튜버가 과거에 음란한 사진의 모델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이슈화 되는 과정에서도 어느 순간 상황이 그 유튜버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가고 있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물론 그 유튜버가 과정에서 말을 잘못했고, 거짓말과 변명을 하면서 일방적으로 피해자인 것처럼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잘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건은 애초에 은밀한 곳에서 다수의 남자가 돈을 주고 어린 여자를 모델로 음란한 사진을 찍으려는 '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생긴 '공급'이었다. 어느 순간 누구도 그 사건에서 그 부분을 문제 삼지 않는 듯한 분위기에 남자인 나도 충격을 받았었다.


그런 자리를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중개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참여하는 사람들도 최대한 처벌을 하고, 소극적으로 참여한 사람에게 형사적으로 처벌하는데 문제가 있다면 신상은 공개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평판이 중요한 우리 사회에서는 신상이 공개될 것을 알면 그러한 행위에 가담하는 사람의 수가 확연하게 줄어들어서 어느 정도의 예방 효과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보통 다른 형태의 성착취나 성폭력에 관여할 확률이 없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 성적으로 피해받는 사람들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신상은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그런 자리에 참여하거나 그런 영상을 즐기는 사람들은 공감능력을 상실한 괴물들이다. 그걸 당하는 사람이 느낄 고통은 전혀 고려할 줄 모르고 자신의 말초적인 쾌락만 관심 있는 것이 사람인가? 괴물이지. 그걸 가하는 사람뿐 아니라 돈을 주고 보는 사람들도 가해자다. 그걸 구매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애초에 그런 걸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그런데 그들을 처벌하고 신상을 공개하는 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런 괴물들이 만들어진 건 단순히 '그들이 괴물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괴물들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런 괴물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는 한국 사회의 괴물과 같은 사회적 분위기와 현상들이 이면에 있다. 물론, 그렇다고 그것이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생이나 사춘기 청소년들이라면 뭘 모르니까 그럴 수 있고 실수일 수 있다. 본인의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하는 성인이 그런 결정을 하는 건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되거나 용서될 수 없다. 인간에겐 이성이 있고 그 이성은 욕망을 다스리라고 있는 것이다. 동물이, 짐승이 별건가? 그 이성을 쓸 줄 모르는 것이 결국 동물이고 짐승이다. 인간을 짐승과 구분하는 게 그 이성이고.


그러한 괴물들은 우리 사회에서 물질만능주의가 만들어낸다. 돈이면 다 되고, 성공하면 되고, 경쟁에서 이기면 된다는 생각. 그게 우리 사회에 없다고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획일화된 기준과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성공만 하면 된다는 생각. 그 생각이 우리 사회에 꽤나 만연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 '사람다움'에 대한 인식은 없다. 정치인들만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권력을 좇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돈과 권력, 명예, 경쟁에서 승리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렇다 보니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게 되고, 그게 N번방이나 박사 같은 괴물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게 왜 남자들에 의해서 여자들에게 강제될까? 그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적 문란함의 풍조 때문이다. 물론, 이 역시 물질만능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사람들에게 이제 '혼전순결'은 구시대적 유물처럼 여겨진다. 물론, 내 브런치에서도 수차례 연애와 스킨십에 대해서 쓰는 과정에서 밝혔듯이 나도 혼전순결이란 말은 싫어하고 그걸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에 전부 동의하진 않는다. 하지만 혼전순결이 품고 있는 가치와 그 안의 인문학은 중요하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고, 상대방의 동의가 있을 때만 관계를 갖거나 스킨십을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간다움이 '혼전순결'안에 전제되어 있다. 그런데 그게 우리 사회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됐을까? 그건 어쩌면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과도할 정도로 성적으로 억압되어 있고 그에 대한 대화나 논의를 터부시하고 상스러운 주제로 여겼기 때문이다. [마녀사냥]이란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그나마 성적인 것에 대한 대화가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그 안에서도 논의는 깊지 않았다. 현상에 대한 자극적인 얘기가 많았다 보니 [마녀사냥]은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성적으로 억압된 사회에 성적인 것들이 왜곡되어 드러나는데 기여한 면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성적인 것이 그렇게 억압되어 있는데, 안에 욕구는 현실적으로 있다 보니 그게 왜곡되어서 구현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성적으로 억압된 분위기에서 변태적인 문화가 나온다는 것은 일본의 AV문화가 보여준다. AV문화만 보면 일본이 굉장히 개방된 사회 같지만 사실 일본은 엄청나게 보수적이다. 모든 면에서. 심지어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 수도 전 세계에서 적은 편일 정도로. 그리고 일본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수동적이고 속을 알 수 없는 면이 있다.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르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성적인 욕구는 있고 그걸 어디에도 표현할 수 없으니 그게 밑으로, 밑으로 들어가다 보니 변태적인 영상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남자들 중 상당수는 AV문화에 매우 어렸을 때 노출된다.


그들은 N번방에서 보는 비디오들과 수위가 높은 하드코어 포르노 영상이 큰 차이가 없다고 느꼈을 듯하다. 그런데 그런 영상과 N번방의 영상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그 가장 큰 차이는 포르노나 AV 영상들은 참여자들의 최소한의 동의는 있다는 것이다. 물론 포르노와 AV업계에서도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사전 동의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있고 그런 부분들이 계속 문제가 된다. 그런데 N번방과 텔레그램의 영상들은 그런 영상들보다 더 가혹하고 폭력적이다. 연출되어서 만들어진 영상들을 보던 것을 현실에서 실제로 가학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어떻게 똑같을 수 있나?


이런 문제들이 공론화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포르노나 AV업계에 종사하던 여배우들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고 그들이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업계에 왜 오래 있지 못하고 그들이 어떻게 망가지는지에 대한 다큐는 멀리 가지 않아도 찾아볼 수 있다. Netflix에서. 그들은 큰돈을 보고 왔다가 6개월도 되지 않아서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발적으로 그런 업계에 들어간 사람들도 몸과 마음이 망가진다. 그런데 그걸 강제하고 협박당한 사람들은 어떻겠나?


우리나라에서 성폭력, 특히 디지털 성폭력 관련 분야에 대한 처벌이 관대한 것은 그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비자발적이고 강제적으로 촬영되는 것을 다른 포르노나 AV 영상과 같은 수준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같은가? 그건 단순히 [비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엄청난 폭력인 것이다. 그들의 딸이 자발적으로 그런 영상을 찍으면 그들이 자신의 딸을 혼내고 딸을 바로잡으려고 해야 하지만, 만약 텔레그램에서 일어난 일들이 그들의 딸들에게 일어난다면 그걸 가한 사람을 죽여버리고 싶을 것이다. 이처럼 그 둘의 차이는 명확하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남중, 남고와 여중, 여고를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는 영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남녀를 따로 교육한단 말인가? 남자와 여자가 배워야 하는 게 다른가? 사실 여대도 마찬가지다. 여중고와 여대가 있었던 것은 여성들이 교육에 의해서 차별받았기에 그들만을 위한 교육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최소한 [교육]에 있어서 그런 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여성들이 더 성과를 더 잘 내지 않나?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 성적, 비교, 경쟁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문화가 있다 보니 대부분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스트레스와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그런 스트레스를 풀 방법은 가르쳐주거나 마련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입시를 위해 체육, 미술, 음악 시간을 줄이는 학교들이 있다고 하니 학생들은 대체 어디에서 스트레스를 푼단 말인가? 방과 후 활동이나 교외활동은 사실 스트레스를 풀면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놀랍게도 그 과정을 경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을 모르다 보니 그게 성적인 부분으로 왜곡되어서 구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방향으로, 호르몬 작용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는데 그 강도가 강하다 보니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해지고, 그게 유지되면서 이런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처럼 이런 문제는 단순히 현상의 문제가 아니다. 이 정도 사회문제가 발생하는 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제 남녀가 남녀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지를 고민하고 가르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지금처럼 남중, 남고와 여중, 여고가 있는 환경에서는 사춘기 시절에 남녀공학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성을 제대로 접하거나 이해할 기회가 없다. 그러다 보니 혈기왕성한 사춘기에 이성관계는, 특히 남자들에게는 성적으로만 형성된다. 그러면서 여성은 남자들에게 성적 대상으로 전락하는데, 사춘기에 그렇게 형성된 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경험하지 않고, 이성과 대화해보지 않고 어떻게 이성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이나?  이성을 이해하지 못하니 거절을 밀당으로 이해하고, 싫다는 것을 내숭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 문화의 뿌리는 21세기에도 조선시대처럼 남녀는 성별로 구분해서 학교를 운영하는 데 있다고 난 생각한다.


양형기준을 마련하고 성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뿐 아니라 신상정보까지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범죄는 가해자에게는 순간적인 욕구를 분출시키는 것으로 끝나지만 피해자에게는 그것이 평생 트라우마로 남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이번에 텔레그램에서 문제 되는 수준이 아닌 성폭력과 성추행의 충격으로, 아니 성폭력과 성추행의 수준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스킨십만 있었던 관계의 상처로 이성과 대화하는 것도 힘들게 된 사람들이 있다. '뭘 그걸 갖고 그렇게까지 그러나?'라고 하지 마라. 당신의 동생이, 누나가, 어머니가, 딸이 당해도 그렇게 말할 것인가?  (이런 비유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유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내로남불을 넘어서 무감각한 괴물이 된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얘기하지 않으면 감을 못잡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괴물'이라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남자들은 본인에게 군생활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만 생각해보면 사실 그러한 폭력과 추행이 여성에게 얼마나 큰 트라우마가 될 수 있을지는 최소한 상상은 할 수 있어야 한다. 난 전역한 지 16년이 지난 지금도 힘든 일이 있으면 재입대하는 꿈을 꾼다. 군생활을 강제로 2년 한 후유증도 그 정도인데, 자신의 신체와 마음을 짓밟힌 사람의 마음은 최소한 그보다 수십 배는 더할 것이다. 그걸 생각할 수 있다면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대할 수 있나?


하지만 거기에 멈춰서는 안 된다. 근본적인 변화도 일어나야 한다. 이 문제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 없이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일이다. 지금도 인터넷 어딘가에서는 비슷한 거래와 행위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이걸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성적인 것은 중독성이 엄청나게 강하기 때문이다. 그 영상을 다운로드한 사람들은 뉴스에서 이 난리가 나고 있어도 골방에서 몰래 그 영상들을 주기적으로 볼 것이고, 사태가 잠잠해지면 새로운 영상을 찾아 경로를 뒤질 것이다. 발본색원을 하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어디선가 또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모두가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성범죄는 살인과 마찬가지다. 아니, 살인보다 더 잔인할지도 모른다. 살해당한 사람은 의식이 사라지기라도 하지 성범죄의 피해자는 그 상처를 계속 안고 살아야 하니까.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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