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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rene Mar 25. 2020

성장과정과 대화

대화의 원리. 8화

아이들이 대화를 하는 패턴과 방식은 거의 절대적으로 부모의 영향을 받는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분명해진다. 개인적으로는 3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렇게 싫어했던, 날 그렇게 힘들어했던 부모님의 대화 방식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때 얼마나 절망하고 힘들어했는지 모른다. 


그때서야 주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말에 상처를 받았다는 사람들, 사람들이 나를 어려워한다는 얘기들, 본심은 그렇지 않으면서 왜 표현을 그렇게 하냐면서 말투를 조금 바꾸라는 조언들. 지금 돌아보면 그런 피드백을 해준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고맙고 그들에게 또 미안하다. 그들에게 고마운 것은 그런 얘기를 해주는 것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이 해야 하는 말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날 아끼는 마음에 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미안한 것은 그들 또한 나의 대화방식으로 많이 힘들어했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대화 방식이 나의 대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화방식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수정 및 보완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건 성장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각기 다른 부모님을 둔 아이들, 그리고 선생님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친구,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대화방식은 큰 영향을 받는다. 선생님들은 직업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조금은 정제된 대화방식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성향이 대화에 투영되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면 같은 일에 대해서도 크게 언성을 높이며 혼내는 선생님과 눈높이를 맞추기 그 아이가 왜 그랬는지를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선생님을 만난 아이는 그 대화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과정에서의 대화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도 부모와의 대화 얘기는 빠질 수가 없다. 이는 부모와의 대화,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에 따라 세상 속에서 친구와 선생님들과의 대화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항상 혼나기만 하고 특정한 방식을 채택하도록 강요만 받았던 아이들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부모와의 관계가 그렇게 형성된 아이들은 상대가 먼저 인내심을 갖고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친구나 선생님에게 본인의 의견을 말하지 못한다. 이는 그 아이가 부모와의 관계에서 본인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그에 대해 수용받는 느낌을 받았던 경험이나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은 자라면서 점점 위축이 되거나 자신이 못 견딜 정도로 힘들어지면 그에 대한 반발로 과격하게 반응하게 반응하면서 변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반면에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경험을 해 본 아이들은 친구와 선생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성향이 강화된다. 문제는 자신이 표현하는 것을 부모가 항상 다 받아주기만 했던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거나 자신과 다름을 존중할 줄 모른다. 그들은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착각하며 사는데, 이런 아이들의 경우 성장할수록 폭력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변하면서 세상이 본인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경험할 때 일탈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상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할 생각을 할 뿐, 세상에 자신이 무엇을 기여할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경험도 하고, 그걸 부모님이 들어주고 찬찬히 피드백을 하는 경험을 한 아이들은 그 대화 방식이 친구와 선생님과의 관계에서도 유지된다. 그리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 혼나기도 하지만, 그 혼나는 방식이 이성적이고 차분차분했고 잘한 것에 대해서는 균형적으로 칭찬을 받아왔다면 그 아이는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릴 가능성도 매우 적다. 이런 아이들이 보통은 모범생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런 성향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대화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부모님이 아니라면 어린 시절에 가장 접촉을 많이 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대화가 이뤄진 방식이 그 아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맞지만 친구, 선생님과의 경험은 그러한 기본적인 대화 패턴에 변주를 준다. 한없이 위축되었던 아이도 좋은 선생님이나 친구를 만나서 대화하는 방법을 습득해 나갈 수도 있고, 들을 줄 모르던 아이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듣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반면에 부모와의 관계가 건강하게 형성된 아이도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아이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성향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성장과정에서, 특히 어렸을 때 대화가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은 아이들은 경험이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은 적은데 상대가 그럴듯한 얘기를 하면 아이들은 그 영향을 곧바로 받을 수밖에 없다. 본인이 경험한 게 많고 자신의 입장에 확신이 있다면 상대가 뭐라고 하든지 흔들리지 않고, 대화를 통해 취할 것은 취하고 거를 것은 거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아이들이 말싸움을 할 때 '아니야 우리 엄마가 000이라고 말했다고!'라고 하는 것은 사실 그 아이가 자신이 가진 상식에 반하는 사실에 흔들리면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고, 친구와 선생님과의 접점이 부모님과의 접점보다 많아지면서 그들은 부모님보다 친구와 선생님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되었다. 친구가 중요한 것도,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게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난 2학년 2반이었는데, 그때 반장선거에서 떨어지고 나서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그때 담임선생님이셨던 정종임 선생님께서 울고 있는 내 등을 두드리며 괜찮다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달래주셨던 기억이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도 내 안에 따뜻하게 남아있다. 그 위로는 내가 기억하는 인생 최초의 위로였다. 그 기억이 너무 따뜻하게 남아 있어서 20대 때 그 선생님을 찾아서 연락해 봤으나 그 선생님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슬픈 반전이긴 했지만, 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잇다. 


개인적으로는 그 2학년 2반 시절이 인생에 큰 영향을 줬다. 자폐증이 있는 친구가 같은 반에 있었는데 선생님은 항상 그 친구 말을 존중해 주셨고, 그 친구를 잘 대해주라고 말씀해 주셨고, 그 친구가 수업 중간에 갑자기 문 밖으로 나가면 선생님은 우리에게 가서 그 친구를 데려와서 같이 수업을 들으라고 하셨었다. 그런 기억들이 내 안에 꽤나 강하게,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그때 만약 선생님께서 '야 너는 겨우 반장선거에서 떨어진 거를 갖고 울고 있니?'라면서 핀잔을 줬다면 난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3학년 8반이었을 때 선생님이 나무로 된 회초리가 부러질 정도로 체벌을 하던 기억이 아프게 남아있는 걸 생각해보면 그 말 한마디는 내게 꽤나 큰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선생님들 보다도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같은 반 친구들이다. 아무래도 또래집단에서는 인정을 받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나 같은 경우 4학년 때 당시 6학년에 본인 형이 있어서 '나한테 까불면 우리 형한테 다 죽어~'라고 하며 다니던 아이와 한 번 크게 싸운 이후로 내내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다. 그 아이가 뒤에서 나랑 말하면 다 본인 형한테 말해서 죽여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다닌 것이다. 그 친구의 형은 당시에 소위 말하는 우리 학교 '짱'이었기 때문에 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극소수의 친구들, 원래 알던 친구들과 태권도 학원에서의 친구들 외에는 거의 친구 없이 학교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지옥 같았던 1년이 내게 상처로 남아있지는 않다. 그 아이와 다른 학년이 된 5학년이 되자마자 4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이 내게 쪼르르 와서 미안했다며, 작년엔 정말 그 형이 너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 것이다. 그 상황과 말 한마디를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이는 그 말 한마디가 내 안에 깊게 새겨졌던 상처를 치유해줬기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그런 자잘한 기억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런 대화. 말 한마디가 이렇듯 한 아이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말 한마디, 한 마디는 우리 안에 큰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런 상처와 위로를 번갈아가면서 받으며 성장한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친구, 어떤 선생님을 만나는지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좋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많은 좋은 학교에 보내는 목적은 사실 인맥을 쌓거나 스펙을 쌓기 위함이 아니라 상처가 덜하고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 환경에 아이를 보내서 상처를 덜 받고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여야 한다.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 자란 아이와 만나라고 하는 시초는 사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상처가 많은 아이들은 공격적일 수 있고, 그로 인해 본인의 아이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사실 건강한 자아를 부모를 둔 아이는 어디에 가서도 괜찮을 수 있다. 아니, 그런 아이들은 오히려 상처가 있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사실 스펙이 좋은 부모를 둔 아이들이 몰려 있는 학교는 아이를 오히려 괴물로 만들지도 모른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스펙이 좋은 부모들은 자기중심적인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 아이들은 마찬가지로 그런 경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펙이 좋은 부모들이 모두 자기중심 것도 아니고, 스펙이 좋지 않은 부모들이 모두 이타적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스펙이 좋은 부모들은 힘과 재력으로 자신의 방법과 이치를 강요할 힘을 갖고 있기에 그 영향력이 확실히 더 큰 듯하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교유관계와 선생님과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향이 크고 선생님들을 무시하는 사람들 그런 부모들이 몰려 있는 학교에서 자란 아이들은 오히려 더 자기중심적이 되거나 상처 덩어리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그 말 한마디, 한 마디를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 기억이 우리 기억 저 멀리 어딘가에 있긴 하지만 우리는 보통 일상에 쫓겨서 그 말들을 모두 기억하진 못한다. 하지만 그 말들은 모두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미치고 있다. 성장과정에서, 특히 초등학교 시절의 대화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만약 본인의 특정한 경향성이 왜 그런 지를 모르겠다면, 자신의 과거 경험들을 세세하게 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인간의 기억력은 놀라워서 우리는 그렇게 과거를 찬찬히 돌아보다 보면 내가 상처를 받았거나 위로를 받은 말과 순간들이 떠오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보통 상처 받았거나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본인 탓을 하지 말라고, 그게 본인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는 진심이다. 인간은 성장과정에서 무수한 사람들과 크고 작은 관계를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대화를 하며 그 크고 작은 대화들이 내게 영향을 준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고 받아들일 때야 비로소 우리는 자아가 조금씩 건강해질 수 있다. 내가 받은 상처를 인정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거쳐야 우리는 자아가 건강해질 것이고 우리에게 위로를 준 사람이 기억나야 그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 아닌가? 


이 글 전체에서 물리적으로 [대화] 자체가 언급된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글이 대화에 대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관계에서 두 사람 간의 교류는 거의 대부분 말과 대화를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엄청 오랜 기간 동안 같은 공간에서 지낸 사람이 아닌 이상 우린 누군가를 그 사람이 하는 말로 파악할 수밖에 없지 않나? 


이처럼 그 사소하고 작은 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대에게 큰 영향을 주고받는다. 어린 시절이 특히나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경험이 적은 어린 시절에는 우리가 그 영향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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