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을 공부하던 때에 유난히 좋아하던 로즈 베이스가 있었다. 추가 블렌딩 없이 향수로 만들고 싶을 만큼 화려하게 피어나는 장미를 충분히 표현했다고 느껴졌다. 드러내놓고 표현하진 않았지만 존재 자체로 ‘주인공’이라는 느낌이 드는 향이었다.
같은 날 맡았던 향 중에는 클로브 베이스도 있었다. ‘정향’이라는 향신료의 향인데 개인적으로는 낯선 이름이었지만 요리를 좋아하시는 분들 중에는 이미 익숙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처음 시향했을 때의 충격이란! 고급 향수에도 활용되지만 단일 향을 맡을 기회는 없었기 때문에 부푼 마음을 안고 숨을 들이켰으나 느껴지는 것은 치과, 그것도 고통의 치료가 끝난 후 입 안에서 느껴지던 바로 그 치과의 향이었다. 장미가 주인공이라면 클로브는 혼자만의 세계를 구축해 고독을 즐기는 조연 같았다.
사실 후각 훈련을 하다 보면 언제나 좋은 향만 맡을 수는 없다. 생각보다 자주 활용 자체를 고민하게 되는 향을 만나기도 한다. 내게는 클로브도 사용을 주저하게 되는 향이었다. 그에 반해 그 날의 로즈 베이스는 어서 사용해보고 싶어서 손 끝이 빨라졌다. 이 주인공을 가장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조합을 찾고 싶어 근질근질했다.
그런데 몇 번의 조합을 시도해도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분명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답답한 마음에 계속 향료병만 들여다보다 문득 클로브에 손이 갔다. 많이는 무서우니까 딱 한 방울만, 클로브 특유의 향취가 자기주장을 하지 않도록 조심히. 그리고 다시 시향. 찾았다. 몇 번의 수정은 더 필요하겠지만 희망이 보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완성된 향은 로즈 베이스보다도 더 장미 같은 화사하고 풍성한 향이었다.
영원한 주인공도, 영원한 조연도 없다. 그 자체로 완벽해보였던 로즈 베이스도 결국 다른 향과 섞였을 때에야 장미로 피어날 수 있었다. 모든 향이 적절한 자리에서 제 몫의 역할을 할 때에야 비로소 하나의 향이 탄생한다. 아, 그렇구나. 지금의 존재감이 약해도, 혹은 꺼려지는 것 같아도 결국 나만 할 수 있는 역할이란 분명히 존재하는 거구나. 이러니 어떻게 향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