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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머넌트바이올렛 Apr 21. 2022

꿈의 기업 존재할까?

꿈의 기업이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오전 8시 30분, 업무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울리는 벨 소리에 자리에 앉으며 중학생 시절을 생각하게 하는 이곳은 나의 공식적 첫 회사,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인턴으로 근무한 화장품 회사다.


디자이너가 된다면 꼭 일해보고 싶었던 꿈의 직장이었다. 수많은 프레스를 통해 보여준 기업의 이미지는 취준생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을 환상적인 곳이었다. 미래 기업 가치를 높게 평가받았고 여성이 일하기 좋은 기업에 뽑혔으며 높은 워라밸이 있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 디자인이 내 취향이었다. 이곳에서 내가 디자인한 상품을 사람들이 구매하고 사용한다니, 생각만으로도 벅찼다.


나는 마트에 들어가는 상품을 담당하는 팀에 배치되었다. 백화점, 로드숍 등 다른 브랜드의 상품 디자이너들도 같은 층을 사용했는데, 여러 디자인팀이 함께 한다는 것마저도 매력적이었다. 많이 배우고 열심히 해서 결국엔 이곳을 나의 평생직장으로 만들고 말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자리를 찾아 앉고 컴퓨터 전원을 켰다.


입사 후 가장 먼저 한 업무는 리서치였다. 국내는 물론 해외 웹사이트까지 샅샅이 뒤져 디자인 레퍼런스를 모으는 일이었다. 내가 디자인 인턴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 망각되어 갈 때쯤 샘플 제작에 투입되었다. 석고를 풀어 튜브에 채우고 굳기를 기다린 다음 디자인이 인쇄된 필름지를 판박이처럼 긁어 붙이는 작업이었다. 팀장님이 회의에 들어갈 때마다 수정사항을 반영한 샘플을 만들었다. 나는 리서처에서 공순이가 되었다.


디자인이 하고 싶었다. 인턴이라 그런 거라 하기엔 선배들도 사실상 디자인 업무를 거의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디자인은 외주를 주었고 그것을 관리하는 업무가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곳에서의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볼 줄 아는 기획자의 포지션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인턴이 끝나도록 내가 한 디자인은 기존 로고에 Baby를 넣는 것, 그게 다였다.


하루는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늘 같이 가지 않는 선배에 대해 물었더니, 출산 후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점심때마다 유축을 하러 간다고 했다. 유축을 하고 남은 시간에 테이크아웃 샌드위치를 드셨다. 4개월 인턴 기간 동안 백화점 라인 팀장님은 출산을 하고 복직까지 하셨다. 화장실에서 여자 팀장으로 앉아있으려면 육아휴직은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같은 팀 선배는 제품 감리를 위해 공장에 갔다가 진통이 와서 가장 가까운 어떤 병원에서 출산을 했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조금 울고 싶어졌다.


우리 팀 바로 옆에는 로드숍 브랜드 디자인 팀이 있었는데, 울며 사직서를 제출하는 사람이 속출해 팀장님이 매번 회의실에서 위로하며 잡는 게 하루 일과였다. 선배들은 다른 파트보다 디자인 시즌 사이클이 빠르다 보니 야근이 일상인 하드코어 팀이라 칭했고 그렇게 많은 디자이너들이 왔다가 떠났다.


인턴이 끝나갈 즘, 팀장님으로부터 팀 선배의 육아휴직 기간 동안 더 일을 해주지 않겠냐고 제안을 받았다. 그날 밤, 공장에서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선배의 모습이 무한 재생되었고 다음날 제안을 거절했다.


과연 언제부터일까?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인턴의 환상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

더 이상 내가 꿈꾸던 환상적인 곳이 아니게 된 것이.

아마도, 꿈의 기업이 있다고 믿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가 아닐까?


오늘도 근무시간은 끝난 지 한참이지만 업무 종료를 알리는 벨은 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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