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의 비밀

겁 많은 인턴 (3)

by 김끈기

엄마를 너무 보고 싶었던 나머지 동료들에게 정서적으로 기대기 시작했다. 같이 사는 룸메 언니나 다른 팀에 근무하는 언니들, 교회 집사님, 심지어 팀 내 책임님에게까지.

모두 타지에 나와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나의 마음과 사정을 잘 이해해 주셨다. 혼자 있는 외로움이나 서러움,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 등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지만 그 마음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었고 내가 외로울 때마다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민폐를 끼치기는 싫었다.

와중에 룸메 언니는 한국에 채용되어 미국을 떠났고, 숙소는 나만이 사는 공간이 되었다. 그래도 둘이 있을 때에는 밤에 이야기 나누고 수다 떨면서 외로운 줄 몰랐는데 이제는 이 공간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나도 더 열심히 지원해야지 다짐하면서 미국 이곳저곳 여행도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회사 일도 열심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 대기업에서 면접 합격 메일을 받았다. 와우, 이제 탈출할 수 있겠구나 싶으면서도 내가 떠나면 유일한 한국인인 우리 책임님은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 타지에서 일하며 여러 역경을 뚫고 계신데 그나마 책임님을 잘 도와드리는 내가 떠난다면 슬퍼하실 것 같았다.

그래도 가야지. 대기업이기도 하고 한국이기도 하니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고민을 한국 본사에서 미국 지사로 출장 와있는 선임에게 얘기했다. 내 가장 큰 실수이기도 한.

그는 내가 합격했다는 그 회사를 언급하며 회사 문화가 경직되어 있다, 남초 회사다 그래서 여자는 못 버틴다, 높은 직급에 여자가 있는 경우를 못 봤다 등 온갖 말로 내가 이곳 미국 지사에 남기를 회유했다. 매일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심지어는 개인 문자로도 계속 미국에 남으라고 이야기했다. 책임님까지 들먹이며 내가 떠나면 책임님이 너무 슬퍼하실 것이라는 얘기도 하더라.


아, 내가 왜 그랬을까. 괜히 이야기해서 고민만 늘었다. 이상한 헛소리에 넘어가서 그 회사에 못 갈 것 같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일은 내가 내 발등을 찍은 일로 기억된다. 뭐, 내가 미국에 남고 싶은 마음도 일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결정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말에 넘어간 내가 한심스러웠다. 이거 가스라이팅 당한 건가.


그때부터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마음은 한없이 우울해지고 한국을 갈 수 있는 기회를 날렸다는 생각에 더 슬퍼졌다. 책임님은 내 마음상태를 아셨는지 1년만 더 미국에서 일해보자고 하셨다. 책임님이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는 알지만, 내 마음이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내 사수인 선임은 나와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고 그러지, 한국어만큼 영어로 내 마음을 잘 표현하지도 못하지, 심지어 나 빼고 선임이 다른 팀원에게 나눠주는 귤이 정말 얄미웠다.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과 일들에 지친 나는 미국이 싫다기보다는 회사가 싫었던 것 같다. 제대로 팀원으로서 인정해 주는 건지도 모르겠고 받는 업무들은 모두 새롭게 만들어진 일이라 이전 히스토리도 없고 맨 땅에 헤딩처럼 임해야 했다.

공황장애가 심해져 회사에서 쓰러지는 일이 있기도 했다. 다들 걱정해 주고 걱정 끼쳐드려 너무 죄송한 마음이었다. 왜 나는 내 마음 하나 간수하지 못할까 하며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고등학생 때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우울증도 심해져 회사에서 업무 하다가 웃고 있는 선임의 모습에 화가 치밀어 내 손을 쥐어뜯는 자해를 하기까지 이르렀다. 손에는 빨간 손톱자국이 선명했고 나는 구역질이 나 화장실로 뛰어갔다. 한계에 이르렀구나 싶었다. 왜냐하면 집에 있는 칼이 무서웠기 때문에.


정신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매일 눈물이 났고 하면 안 되는 생각들이 계속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스스로 제어할 수가 없고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도 걱정하셔서 내가 내 상황을 말했을 땐 돌아오라는 말뿐이었다. 지금 미국을 떠나면 후회하겠지 싶으면서도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력했다.


상처가 난 내 손을 보신 책임님은 이제 붙잡지 않을 테니 가도 좋다고 하셨다.

작가의 이전글살아있음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