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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Jan 14. 2020

서비스가 퍼포먼스로 인정받아야 할 때

서비스에 대한 동서양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서울에 한 명품 백화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폐점 시간 즈음, 저 멀리 한 화장품 브랜드에서 웬 여성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그 여성은 맞은편에서 두 손을 모은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직원을 향해 연신 이렇게 외쳤다. '얼른 무릎 꿇으라고! 나 여기 브이아이피야!' 결국 층 담당 대리님이 와서 상황을 중재하고, 그 손님을 백화점 고객 센터로 데리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 지금 거기서 내려왔어. 근데 또 거기로 가라고?' 알고 보니 그 손님을 응대하던 직원은 윗 층 고객센터 직원이었다. 어쩌다 보니 그 여자는 굳이 그 직원을 백화점 1층,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곳으로 데리고 와서 그 소란을 벌이고 있었던 거다.



도대체 그 직원이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길래 무릎을 꿇어라 하는 걸까. 그 여자는 얼마나 특별하길래 타인에게 무릎을 꿇어라 강요한 걸까. 






서비스직에 대한 인식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고객과 직원 사이 상하관계가 존재한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마치 그 손님을 모시는 직원을 아랫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 



내가 승무원이 되겠다 했을 때, 주변 지인들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반대했다. 딱 봐도 적성이 아니란다. 너 같은 성격으로 어떻게 서비스를 하겠냐고. 손님 갑질을 감당할 수 있겠냐고 손사래 쳤다. 성격도 불같고, 아니면 아니다 따지는 성격으론 손님과 싸워 회사에서 잘리기 십상이라는 거다. '으음, 그건 그래…' 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서비스직은 맞지 않다 생각했다. 승무원이 된 지금,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크지만 여전히 '아 나는 서비스직과 맞지 않는 성격이구나'라는 걸 느낀다. 



그렇담, 정말 서비스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아랫사람이 되어 누군가를 모시는 직업'인가? 성격이 나긋나긋해야 하고 항상 웃으며 간 쓸개 다 내줄 것처럼 해야 하는 직업인가? 



얼마 전, 남자 친구에게 서비스에서 사용할 영어 표현을 물어본 적이 있다. (남자 친구는 영국 사람이다.) '양해 부탁드립니다'를 어떻게 영어로 표현해? 영국 사람의 답변이 좀 충격이었다. '우리는 그런 말 안 써.' 내 말을 이해 못했나 싶어서 상황을 들어 설명했다. '만약에, 기내 서비스에 닭 요리 다 떨어졌어. 손님은 닭고기를 먹고 싶어 해. 그럼 내가 아, 우리 닭 요리가 지금 없어요. 양해 부탁드려요. 이렇게 표현하고 싶은데?' 그러자 남자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닭고기가 없는데, 소고기는 어떠세요? 이렇게 해.' 나는 끈질기게 물어봤다.


-I beg your understandinig. 이렇게 쓰면 안 될까?

-너무 최상급 표현이야.

-I seek for your understanding.

-우리는 그런 말 안 써.


문법적으론 말이 되는데, 실제로 원어민들은 그런 용어를 안 쓴다는 거다. 너무 권력관계가 도드러지는 순종적인 표현이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는지 이렇게 말했다. '필리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더라고. 아시아 사람들은 서비스가 너무 손님 중심적이어서 그런 말을 쓰는 것 같아.' 



확실히 동서양의 서비스는 다르다. 동양 문화권에 비행을 가면, 사람들이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항상 해맑게 웃고, 어떤 상황에서도 'sorry'가 자연스럽다. Sir, Madame 같은 존칭을 항상 붙인다. 반면, 유럽권은 조금 콧대(?)가 높다. 확실히 손님과 직원 사이에 어떠한 우위 관계가 덜 느껴진다. (서비스는 사람 대 사람의 교감을 바탕으로 하기에, 단지 느낌으로 나의 생각을 공유하는 한계에 양해를 부탁한다.) 어떤 서비스가 더 낫다기보다, 이렇게 문화권에 따라 서비스를 받을 때 느끼는 차이점이 분명하게 있다는 거다.



우리 회사에선,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Service)를 'Performance'로 표현한다. 승무원들의 업무 태도를 관리하는 사람을 'Performance Manager'라고 부른다. 우리의 '퍼포먼스'를 담당한다는 거다. 서비스는 타인에게 어떤 것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수동적이고, 어떻게 보면 상하관계를 내포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두 주체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받는 입장에서 생기는 상하관계가 느껴진다. 반면, 퍼포먼스(Performance)는 제공하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 어떠한 행위를 보여주는 능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관객과 무대 위 예술가처럼, 각자 다른 주체이면서 상호작용을 하지만 둘 사이에 어떤 상하관계의 권력 구조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서비스를 단순히 제공하는 사람이 'server'라면, 서비스라는 행위를 하는 사람은 'performer'다. 후자의 단어에서 어떤 전문적인 느낌을 받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서비스가 퍼포먼스로 인식이 된다면, 고객과 직원 사이에서 느끼는 상하관계가 완화되지 않을까. 내가 받지 못한 서비스는 당연히 받아야 되는 서비스가 아닐 수 있다. 무대 위 예술가는 관객을 위해 최선을 다해 공연한다. 만족하지 못했다면, 얼마든지 공연에 대한 혹평을 남겨라. 하지만, 그 예술가를 향해 공연 도중 돌을 던지는 행위는 저급한 시민의식이라 할 수 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승무원이 되리라 다짐한 것은, 분명 세계 어느 곳에선 서비스업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한국에서 팽배하는 소위 말하는 갑질의 희생양이 아닐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어서였다. 물론, 여러 나라를 다니며 다양한 종류의 '갑'을 만나긴 한다. 그래도 아직까진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어라는 소리는 들어보진 못했다. (웃음) 



단, 여전히 그런 생각은 한다. 나는 소위 말하는 '서비스직에 적합한 성격'은 아니구나…' 고객과 문제가 생겼을 때 나도 사람이고 감정이란 게 있어 억울하고 화가 난다. 속에서 천불이 부글부글 끓고 표정관리도 안된다. 근데 이게 어디 나뿐일까? 우리는 다 같은 감정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 그럼 내가 직업을 잘 못 선택했나' 생각하기 보다도, 아직 내 감정을 다스리고 사람을 다루는 스킬을 쌓아야 한다 결론을 내렸다. 



몇십 년 경력의 수퍼바이저들이 고객의 컴플레인을 멋지게 담당하는 모습에선, 상하관계에서 나오는 복종의 느낌이 전혀 없다. 그 사람들도 같은 사람인데, 화난 표정 없이 차분하게 응대한다. 손님에게 여러 선택권을 제시하고, 그마저도 싫으면 어쩔 수 없다 정중히 말한다. 고객은 끊임없이 불만을 토하지만, 어느 정도 까진 고객의 입장을 생각해 안타까움을 표시할 뿐, 그 이상은 보여주지 않는다. 원래 타고난 성격이 그렇다기보다, 수년간 쌓은 퍼포먼스의 기술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카르타로 오는 비행기에서 CSD가 나에게 물었다. 왜 우리 회사의 승무원 직급에서 최상위 수퍼바이저(CSD)와 하위 수퍼바이저(CS)로 또 나뉘는지를 말이다. 그 이유는, 손님을 다루는 경험의 차이에서 나온다 설명해줬다. 일반 승무원에서 수퍼바이저급 승무원이 되기 위해선 그만큼의 서비스 경력이 필요하기에, 중간에 한 단계를 또 거치면서 경력을 쌓는 거라고 한다. 그만큼, 서비스는 사람을 많이 상대한 경험을 쌓으며 배우고 또 배운다고. 아직은 어리숙한 초보 승무원에게 너무나도 고마운 조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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