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많지만, 궁금한 건 더 많아!

07_상담 장면을 연구로 이어가기 위해 시도하고 또 시도하다

by 로지

모르는 게 많지만, 궁금한 건 더 많아!

07_상담 장면을 연구로 이어가기 위해 시도하고 또 시도하다




첫 학기부터 기대가 좌절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때는 금방 다른 것에 눈길을 돌릴 수 있을 만큼 에너지가 있었다. 신체적 에너지라기보다, 아마도 심리적 에너지일 것이다. 상황이나 교육자, 박사 학생들에게 느낀 아쉬움은 그들과 거리를 두고, 나만의 공부 시간을 갖거나 연구실에서 진짜 '동료'라고 여겨지는 학생과 교류하면서 회복하곤 했다.


지금 돌아보면 박사 과정 중에 나에게 꾸준하게 영감을 주고, 귀감이 되어 준 동료가 있었다. 바로 석사 학생 J였다. 첫 학기 수업으로 들었던 사회심리학 세미나부터 우리는 여러 얘길 나누곤 했다. 그는 거의 항상 연구실에 나오곤 했다. 그는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도 하면서, 대학원에서 주어지는 학업과 관련 없는 잡다한 일부터, 수업 과제는 물론 그 외 상담 관련 공부도 꾸준하게 해가는 사람이었다. 그 당시 J는 상담(수련)을 시작하기 전이어서 어떤 이론을 기반으로 상담을 할지, 어떤 것들을 준비하고 싶은지, 앞으로 쌓고 싶은 전문성은 무엇인지 등을 자주 얘기하곤 했다. 누가 먼저 질문할 것 없이 우리는 자연스럽게 각자가 가진 목표와 포부, 그리고 이를 위한 노력의 과정, 가장 크게는 각자 심리상담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얘기하곤 했다. 그 시간이 나에겐 유일한 학구적 숨통을 트이게 하는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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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기억:

하루는 J가 엄청 몰두하며 연구실에서 뭔가를 공부하고 있었다. 평상시 차분했던 그였기에, 궁금했다. 물어보니, 심리검사를 준비하고 실시 후 그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수업이라고 했다. 그는 심리상담에 더 진심이지만, 심리검사 역시 잘하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로는 심리검사를 좋아하는 것이 하나였고, 다른 하나는 상담심리사도 임상심리사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심리검사에 전문성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임상심리학이라는 상담 심리학과 항상 같이 논의되는 전공에선 은근하게 상담 전공을 낮춰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선 임상과 상담이 분리되지 않아서 의아하게 여겨질 수 있는 지점이지만, 임상심리학 전공자는 보통 병원에서 수련을 시작하고 병원에서 근무하기에(그 역시 다수가 아니지만), 처우는 보장이 되는 대신 엄청난 위계와 살인적인 업무량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임상심리사 자격증은 국가자격증으로 올라와 있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차별성이 대학원 학생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대다수는 전공차가 아닌, 개인차임에도 '좀 더 유능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임상 전공을 가더라'라는 말이 자주 들리곤 한다.

J 역시 수업을 들으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던 거 같다. 그는 좌절하거나 투덜대지 않았고, 그 에너지를 자신의 성장에 쏟았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고심하고 그 방향으로 힘차게 걸어갔다. 그때 그가 눈을 반짝이며 학구열을 더 불태우며, 심리검사 공부와 전문성에 진심을 쌓아가는 그 모습이 나에게 깊은 귀감이 되었다. 5년도 훨씬 더 지난 그때 그 순간이 너무도 생생하다.






말했듯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첫 번째는 '태도'이다. 지금도 여전히 주변에 여러 사람들은 오해하곤 한다. 내가 어떤 높은 평가 기준을 가지고 칼같이 재단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도 영감을 받거나, 깊게 실망하는 지점은 '진정성 있는 태도'이다.


심리치료를 공부하고 실천한다는 전문가라면, 당연히 갖출 수밖에 없는 태도.



그 태도를 갖추지 않거나, 혹은 갖추려고도 노력하지 않거나 등한시하는 전공자와 거리를 두려는 것뿐이다. 그건 나를 지키고, 나의 동기와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 노력은 대학원에서도 매우 중요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도 지치지 않고 전문성을 갈고닦는 것에, 내담자를 위하는, 상담자로서 성장하는 것에 튼튼한 중심을 세울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며 다시 깨닫는다. J는 다른 석사 학생들과 달랐다. 그 이후로, 그와 같은 학생은 석사, 박사 과정을 통틀어 그 대학원에선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석사 학생들이라고 박사 학생들에게 실망했던 모습이 없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있다면 더 많이, 더 많은 것들에서 있기도 했다.


예를 들면, 수업에 제시간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 수업을 위해 읽어와야 하는 기본 과제도 하지 않는 사람, 질문 하나 하지 않는 사람, 자신이 무엇을 배우는지, 배우게 될 지에 관심조차 없는 사람, 그룹 및 단체로 하는 일에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람, 잔머리만 굴리며 성적만 잘 받으면 된다며 대충 공부하는 사람, 아주 기본이 되는 작은 형식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 등.


하지만 나는 그들을 나의 경험으로 보고 평가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며 노력했다. 그리고 그들과 대화를 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을 때도 그 지점을 주의하고 또 주의했다. 그들의 경험은 그들의 경험대로 보려고 노력했다. 완벽하지 않았을지라도 부단히 노력했다.



*소소한 기억:

첫 학기가 시작하기에 앞서, 상담전공 단톡에 공지가 하나 올라왔다. '상담 전공 발표'같은 타이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상담 전공 학생들이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상담 전공 논문이나 저서를 정리해서 발표하는 자리라고 했다. 나는 "그런 자리라면 빠질 수 없지! 나도 가서 같이 공부하고 영감을 주고받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장 그 공지를 올린 석사 학생 Y에게 개인톡을 하여 그날 나도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Y의 반응은 석연치 않았다. 나한테 "그런데 선생님은 왜 참여하시려는 건가요?"라고 날 선 반응이 돌아왔다. 참 의아했다. 같은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공부하는 모임에 참여하는 것에 무슨 목적이 필요한가? 당연히 학습이지! 그렇게 답을 했음에도 Y는 모임 당일에도 또다시 나의 의중을 물었다. 나는 역시나 똑같이 답했다.

하지만, 그날 그 모임에 참여하고 왜 Y 가 그렇게 경계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 모임의 타이틀은 '상담 전공 발표'였으나, 실상은 석사 학생들이 저 학기부터 고학기가 참여해서 해당 학기 1학기가 상담 관련 자료를 번역 및 정리해서 발제하면, 2학기는 그에 대해서 아주 세밀하게, 장평 자간까지 까다롭게 피드백을 하는 그런 소위 '까이는' 자리였다. 그리고 3학기 이상부턴 자리를 채워 앉아서 그들도 지나왔을 수직적 피드백 시간을 지켜보는 자리였다. 조금이라도 1, 2학기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이를 '선배처럼' 피드백을 하곤 했다. 아직도 그 당시 1학기로 들어온 학생 하나가 발표를 하면서 목소리까지 덜덜 떨면서 발표를 꾸역꾸역 이어나가던 모습이 생생하다.

이런 상황이니 석사 고학기보다도 높은 위계에 위치한 박사 학생의 존재가 얼마나 불편했겠나. (내가 있던 대학원은 위계가 강한 학교였다.) 그래서 그렇게 '와도 별거 없다. 도대체 왜 오는 거냐'는 메시지가 담긴 간접 표현을 나에게 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내 존재 그 자체가 석사 학생들 모두에게 부담이 되었겠구나.." 하는 마음에 미안하면서도 이러한 분위기에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상황을 겪고 난 뒤였기에, 나는 박사 학생은 물론, 석사 학생들도 기본적으로 연구나 공부에 대해 동기가 높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역시나 석사 학생들도 모두가 그렇진 못했다. 오히려 내가 기대했던, 자신이 하는 공부에 관심을 갖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학습하는 학생은 역시나 소수였다. 너무도 소수였다.


너무도 소수였다.







각 심리학 전공에는 전공마다 세미나라고 부르는 수업이 열린다. 유일하게 '연구' 관련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약간의 시간이었다.


상담 전공 역시 그러했는데, 상담 전공엔 교수가 2명(H와 C)이었기에 매 학기 돌아가며 세미나 수업을 열었다. 나의 지도 교수 H는 매우 인지적 선호도가 높은 사람이었기에, 매 세미나의 교재로 '논문'을 바탕으로 했다. 원로 교수 C는 심리상담 저서 하나를 정해두고 이를 발제하는 형식으로 세미나를 진행했다. 커리큘럼만 봐도 두 교수의 성격이나 관심사가 극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나에게 상당히 장점으로 다가왔다. 나는 다양한 교육자의 지도를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연구를 하기 위해 박사과정에 들어왔기 때문에, 교수 H의 세미나를 더 기대했다. 그리고 나의 지도 교수이기도 했으니 내적 친밀감이 더 있었다.



*소소한 기억:

H의 세미나에서였다. 모든 석/박 학생들은 각자가 더 관심이 가는 주제(여성주의, 수치심, 정서 등)를 골라서 박사와 석사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그룹 과제를 하게 된다. 3~4명으로 이뤄진 각 조는 하나의 메인 논문을 고르고, 참고문헌 중 2개의 서브 논문을 골라서 3개의 논문을 통합해서 발표한다. 발표는 3개의 논문을 하나씩 상세하게 발제하는 것이었다. 서론, 본론, 결론의 내용을 상세하게 그리고 통합적인 관점에서 정리해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이를 하기 위해서는 연구를 보는 이해력, 사고력, 통찰력 등이 요구됐다. 그리고 항상 교수 H는 '해당 논문이 심리치료에 주는 의의'를 추가적으로 발표하게 했다. 나는 이 점이 참 좋았다. 왜냐하면 그냥 논문을 골라다가 발제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심리상담에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야 상담 전공 논문일 테니까.

하지만 커리큘럼이 목표하는 것과는 별개로 실상은 너무 보잘것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학생의 대다수가 연구에 관심이 없었고, 과제이기에 꾸역꾸역 어쩔 수 없이 논문을 골라서 발표한다는 것이 매번 느껴졌다. 연구와 논문이 중심이 되어야 함에도, 누가 누가 더 ppt를 잘 만들고, 정리를 잘하냐, 누가 발표를 잘하냐가 목표였다. 학생 각자가 주제를 선택했지만, 주제에 막연히 관심만 높았지 그 주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것 같지 않은 내용만 이어졌다. 그리고 모두들 자신의 발표만 중요했지, 다른 조의 발표는 듣지 않았다. 교수가 생각해 보라니까 생각하는 것이었고, 상담적 의의를 말해보라고 하니까 짜내서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상담의 실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얘기들만 가득해졌다. 그리고 역시나 학생들은 질문이 없고, 그렇기에 토의는 당연히 없었다.

교수가 매 발표마다 학생들에게 연구마다 명시한 조작적 정의나 선행연구의 맥락에 대해 질문하고, 유의 수준이나 연구 방법론에 대한 한 두 마디 "이러한 연구인가? 딱히 별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혼잣말 같은 피드백이 전부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상담에 대한 의의에 참 거기서 거기다. 모두 참 뻔한 얘기죠? 아니다 또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겠죠?"라는 말이 항상 따라붙었다. 마치 1인 극을 보는 것 같았다. 교수의 피드백을 듣고 있으면 너무도 헷갈렸다. 그렇다는 말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H 만의 피드백 스타일이었는데, 뭔가 즉시적으로 떠오른 말을 뱉어내고는 "아, 딱히 큰 의미는 없어요. 다 거기서 거기죠"라며 자신의 피드백을 철회하곤 했다. 뭔가를 정확하게 배우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학생 입장에선, "저게 무슨 의미지? 그게 중요하다는 건가? 아닌가? 그냥 혼잣말인가?" 하는 의문이 항상 가득했다. 교수가 하는 피드백치곤 명확하지도 않고, 너무 얕았다. 뭔가를 배웠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지도교수 H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대학원에서 열리는 어떠한 수업에서도 상담 연구를 위한 '진짜' 학습이, 배움이 없었다.


그나마 운 좋게 1학기 때 들었던, 사회심리학 세미나에서 담당 교수가 훨씬 더 도움이 컸다. 한국 학술지가 아니라, 국제 학술지(영어논문)를 기반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던 덕도 컸다. 한국의 연구들은 해외에 비하면 너무도 한정적이고, 했던 설계만 계속 울어먹는 식이 많다. 참신하기보단 해외에서 진행된 연구 중에서도 양적 연구와 척도를 가져와서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상담(임상) 연구가 그렇다.


그 수업에서 연구를 설계한다는 것의 의미와 설계 시에 고려해야 할 것들을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아 저런 요인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설계의 그 부분이 중요한 지점이구나" 하는 학습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수업의 기말 과제가 자신의 연구를 설계하는 것이기에, 실제로 한 학기 내내 배웠던 내용을 기반으로 연구를 설계해 볼 수 있는 연습이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지도 교수 H가 진행한, 상담심리학 세미나와 심리치료 수업에서는 실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연습이 전혀 되지 않았다. 이를 위한 학습이 충분하지 않았다. 첫 번째로는 ppt 발제 식으로만 진행되었기 때문이었고, 학습자 간 토의나 상호작용이 전혀 없었다. 그저 자기 발제만 하는데 바빴지, 발표하는 내용에서 어떤 내용이 중요하고, 다른 팀의 발제에서 어떤 것을 깨닫거나 느꼈는지를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는 그저 남의 논문 요약 발표 딱 그 수준이었다.

그리고 심리치료 수업이 더 가관이었다. 3개월 한 학기 내내 심리치료의 각 이론에 대해서 발제 및 공부를 하고 토의를 한다. 그리고선 석사 학생은 기말 과제로 그 이론 중 하나를 선택해서 자신의 가상 상담 사례에 적용하여 발표하는 것이었고, 박사 학생은(그 당시 나 혼자였다) 자신의 상담 연구를 설계해서 그 계획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


갑자기 심리치료 이론 수업에서 한 학기 내내, 연구와 전혀 관련 없는 내용을 배우고 갑자기 연구 발표라니?? 그때도 참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지금도 떠올리니 더욱 그렇다. 교수 H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생각을 했기에 수업 내용과 과제가 이렇게도 불일치한 걸까? 정말 학생에게 연구적 역량을 키워주는 학습을 고민은 한 걸까?


또 하나, 이러한 과제 때문에 이 수업을 듣는 박사 학생이 없었구나. 왜냐하면 여기 대학원 박사 과정 학생들은 연구를 끔찍이도 기피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경험이 되었다.






학습에서 깨달음은 정말 중요하다. 이는 자신이 갖고 있던 지식이나 경험을 되돌아보았을 때, 모르던 부분을 새롭게 알게 되었을 때, 그다음에 무엇이 더 궁금해지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감은 학습뿐 아니라, 연구에도 정말 중요하다. 연구를 설계할 때 어떠한 학구적 맥락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내가 하고자 하는 연구의 필요성과 연구문제는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낼 거라 예상하고, 그 결과가 심리치료에선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다음 후속 연구는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 등을 학습자(예비 연구자)가 궁금해하고 그 답을 찾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상담심리학(임상심리학) 연구라면, 어떤 대상에게 어떤 치료적 개입이나 영향이, 어떤 과정이나 메커니즘을 통해서, 어떤 반응이나 치유적 변화, 유의한 결과로 이어지는 건지, 이를 개인적인 영역을 기반으로 사회적인 영역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심리치료라는 한 개인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살펴봄으로써, 그 과정과 결과가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수많은 심리치료와 정신건강 영역에 함의를 가져야 한다. 이를 고찰하고 학습하고 실행할 수 있는 교육을 대학원과 교수는 제공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학습자인, 나에겐 그 과정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 과정을 조금은 수월하게, 혹은 다양하게 깊이 있게 고찰하고 실천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했다. 이를 조력해 줄 교육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석사 및 박사 과정 10년을 통틀어도 그런 경험은 너무도 빈약했고, 너무도 미흡했다.


나의 학구적 동기와 궁금증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탐구심에서 계속될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았다. 내 안에는 계속해서 물음표만 쌓여갔다. 누구도 답해주지 않고, 혹은 스스로 답할 수 있도록 허용조차 되지 않았던 질문들. 대학원이라는 최고 고등 교육 기관에서 조차, 그 질문에 답이 되어 주지 못했다.




이 갈증은 그다음 과정으로 나를 이끌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박사과정 2학기쯤이었던 것 같다.

교수 H는 계획 중인 연구 3개와 자신이 수주해 온 연구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함께 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조금의 빛을 보는 듯했다. 나의 수많은 질문들을 답해볼 수 있는.



이후 약 4개월 뒤, 3개 연구는 끝 마쳤지만,

들어갔던 H의 프로젝트는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고, 환멸을 느끼며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 H에게, 연구자로서 교육자로서 가장 큰 실망을 했고, 신뢰는 선명하게 금이 가고 부서지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사용된 이니셜 또한 실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구조적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