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차 캐릭터의 코로나시대 수술, 입원기
제 양 눈은 모두 백내장 수술을 해서 인공수정체가 들어가 있습니다.
한쪽은 2012년, 한쪽은 2020년
양쪽다 다촛점렌즈로 수술했죠.
(그림 그리는 일을 하다보니)
그러다 작년(벌써 작년이라는 말을 쓰다니!!!)10월경
자고 일어났는데 한쪽눈앞이 아래 사진처럼 보이는 거예요.
2022년의 마지막 그림.
이거 그리고 한시간 있다 눈 날아감. -_-;;
그리고 있을때는 몰랐죠.
물론 몇 초 걸리지않아 금방 시력이 돌아와 안도했는데
수술한 눈에 문제가 생긴게 분명하니 놀라 안과진료를 보았습니다.
일단 당시 사진상으로는 렌즈가 문제없이 눈중심에
있으니 지켜보자는 말씀을 해주셔서 돌아왔습니다…만
그 날부터 어마어마한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안보이는 그런 순간이 계속 생각나서요.
선생님 말씀 들어보고 검색해보니
수술한 수정체는 원래 평생 가는데
몇몇 상황에 의해 위치가 살짝 틀어지거나
완전히 탈구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특별히 다른 치료법은 없고
약하게 틀어진 경우 처음 저처럼 저절로 다시 위치를 잡으면 문제가 없고
중심에서 약간 틀어져도 안경으로 커버하는데
완전히 탈구된다면 수술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재수술은 망막에 관한 것이라
망막전문의에게 받아야 하는 수술이더라고요.
저는백내장 발병 자체도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인한 것이고
눈에 관한것들은 예후가 좋을수가 없어서 최대한 조심하며
완전 탈구되는 것만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첫 증상이 있은후 두달이 지나가는 시점까지도
괜찮길래 마음을 놓는 순간,
12월 27일경 수정체가 완전히 탈구되어 시력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병원으로 가 진료 받고
수정체 완전 탈구 진단을 받았습니다.
넵.이제 수술적 방법밖에는 없었어요.
한쪽눈이 앞보이니
선생님께서 최대한 빨리 수술일정을 잡아주셨습니다.
12월 30일 입원
12월 31일 수술
1월 1일 경과보고
1월 2일 (진료후 큰 문제없으면) 퇴원
저는 예전 백내장 수술 생각해서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전신마취에 최소 3박4일을 입원해야 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일단 그전에 잡아놓은 작업일정을 한번 체크해보고
협업하는 분들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다 좋은 분들이라 제가 일정에 피해를 주는 상황이었지만 다들 이해해 주셨어요.
눈수술후 한동안은 아예 그림작업은 못할테니 경건한 마음으로 (?) 작업컴을 정리해 놓고
수술전 이틀 남은 시간 필요한 업무들을 다 처리했습니다.
두 눈으로 생활하다 한 눈으로 생활을 하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입원전 코로나 검사를 해서 음성확인을 받아야 하니
선별진료소 가서 코로나 검사를 미리 받았고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이틀동안 저나 바깥양반이나 집밖에 나가지 못했어요.
—입원전날—
입원전 보라요정님(바깥양반) 인터넷으로 필요한 것들을 미리 사 가방을 싸주었습니다.
수술 첫 경험치 쪼렙인 저는 저는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을거 같다 하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했지만
입원후 역시 바깥양반의 선택이 옳았음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말은 무조건 들으셔야 합니다. -0-
입원당일, 바깥양반이 운전해서 병원도착.
입원수속하는 곳까지는 같이 가고
병동으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 앞에서 안녕! 헤어졌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입원은 당연하게도 혼자밖에 안됩니다.간병, 병문안 다 안됩니다.
2인실을 선택했지만
입원하는 분이 없어서
3박4일 내내 혼자 썻어요.
병원은 저보다 형님이셨습니…아 누나일수도!! 1962년생.
바깥양반이 챙겨준 물품들은
3박4일 입원내내 요긴한 아이템들로 쓰였고
오히려 눈도 보이지 않으면서 챙겨간 다이어리나 아이패드는 단 한번도 꺼내보지 않…
(당연한거 아녀 이 바보야!!!)
중증의 아토피를 겪었고 지금도 겪는 중이라
주사맞기가 힘이 듭니다.
혈관도 잘 안보이고 해서..-0-
혈관 찾느라 두방씩! 흑흑
-수술당일-
수술은 오전 9시
새벽에 일어나 수액을 맞기 시작한 후
9시가 되어 수술실에 올라갔습니다.
수술전 마취약을 넣는데
“약 들어갈때 좀 뻐근해요”
말을 들음과 동시에 기절. -_-;;
깨어나니 단발 기억들은 침대를 옮기고 다시 병실로 내려오는 짧은 기억들인데
어찌나 어지러운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습니다.
(짧은 기억들 속에서 제가 했던 말들은 ‘선생님 어지러워요~어지뤙워유어오 기절)
정말로 극강의 어지러움이라
저녁으로 나온 죽 조금 먹고 전부다 토한 후
주사한대 맞고 뻗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병원에서 할 수 있는게 거의 없었습니다.
눈 수술이다 보니
뭘 볼수도 없고.
심심한 하루종일 오로지 생각만 했어요.
곧 연재시작할 원고 내용들,
이런저런 작업들.
바깥양반 생각,
가족들 생각
이틀내내 오로지 생각만 하다 온 것 같습니다.
-참!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들의 크록스는
너무나 다양하고 개성넘쳤습니다.
크록스는 의사샘과 간호사선생님들에게
습훼셜에디션을 만들어 드려라!!!
-퇴 원-
전신마취, 3박4일입원, 인공수정체탈구로 유리체절제술,막제거술,안구내레이저술,수정제교환술.인공수정체공막고정술을 받았고
처음 진료받은 날, 수정체 탈구된 날 등등 검사비용까지 다 합치면 5백만원 좀 넘는데,
당일 퇴원에 99만원, 그 전 검사비까지 다 합하면 120만원 조금 안되게 낸 것 같습니다.
돈벌기 시작하고 평생 내온 우리나라 건강보험!
이렇게 돌아옵니다!
바깥양반이 절 데리러 오는 동안
저는 꿀맛같은 아아를 한 잔 마셨습니다.
-복 귀-
3박 4일만에 만난 노랑둥이 아들은 처음처럼 그렇게
배 위에 올라와주었습니다.
3박4일만에 눈에 뭔가 차고 빈손으로 돌아온것이 못마땅한지 하루종일 옆에 착 붙어서 잔소리잔소리를….-0-
—마무으리—
저는 올해로 21년차 캐릭터입니다.
20년동안 매년 마지막날과 첫날 하던게 컴에 새로운 작업폴더를 만들며
올해 그림농사도 잘 지어서 내년에도 계속 그림그리게 해주세요 기도하는 일인데
올해는 마지막날 눈수술을 하면서 20년동안 해온 의식을(?)치루지 못했습니다.
타자는 칠수 있을 정도라 글 정도는 작성하고 힘이 되어준 채널들에 글도 올리고
그림은 수술후 일주일뒤 수술해준 선생님께 진료를 보고 선생님 말씀을 들은뒤 열흘뒤부터 다시 그릴 계획입니다.
세상은 늘 계획대로 되지 않아요.
.2022년이 시작될때 그 해의 마지막 날 수술하게 될줄 누가 알았을까요?
저는 이제 어떤일이 일어나면 그냥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속상하고 아프고 힘든 것은 그저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음 걸음, 다음장으로 갑니다.
그러면 어느새 그 사건으로부터 멀어집니다.
그건 해결과는 달라요.도망도 아닙니다.
그냥저냥 걸어서 저만큼 가버리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받아들일거는 다 받아들이고 마음쓸것도 다 쓰면서 어찌되었던 앞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 덕에 지금에 왔고 그 덕에 살아남은것 같아요.
1월16일부터 새로운 만화 연재를 시작합니다.
봄에는 좋아하는 곳과 콜라보작업이 있고
열세번째(어떤 의미로 다시 첫 책) 책은 조금 더 다듬어 출간할 거예요.
그리고 올해의 끝에는 다시 북콘서트라고 뻥을 치고 공연을 할 계획입니다.
그냥 가고 그냥 합니다.
고민은 길게하지 않고 걱정은 어느만큼 한 뒤 슬그머니 놓아줍니다.
그러면 올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것 같아요.
안녕 2022.
안녕 2023.
사건이 발생하고 4일만큼 걸어간 날.
베리습훼샬땡스 - 보라요정님(바깥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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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2023년 다들 건강하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