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BYD–배터리에서 전기차로의 성장 드라마

배터리에서 전기차 제국으로

by 최성호

BYD라는 이름을 가장 강하게 실감한 건 우연히 타게 된 고급 사양 전기 택시에서였다. 차량 문을 닫는 순간부터 바깥의 소음은 차단되었고, 내부 인테리어는 생각보다 훨씬 세련되었다. 운전 인터페이스는 직관적이면서도 고급스러웠고, 차가 출발하자마자 느껴진 승차감은 놀라울 정도였다. 흔들림은 최소화되어 있었고, 미끄러지듯 달리는 안정감은 독일차나 일본차 못지않았다.


중국에 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거리 풍경이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내연기관차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지만, 이제는 다르다. 택시 승강장에 줄지어 서 있는 전기차, 조용히 다가오는 버스, 주차장에서 충전 케이블을 꽂아둔 SUV까지. 이 변화의 중심에는 늘 BYD가 있다.


한때 한국에서는 BYD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다. ‘중국산 자동차는 믿기 어렵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의 일상에서 BYD는 단순한 브랜드를 넘어 전기차의 대명사처럼 자리 잡았다. “BYD가 보급형 전기차를 이끌어간다”는 말은 이제 과장이 아니다. 중국 현지에서 마주치는 속도와 보급력은,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작은 배터리 회사의 시작

BYD의 출발은 자동차가 아니었다. 1995년, 선전의 허름한 사무실. 왕촨푸라는 무명의 재료공학자가 중고 책상 하나와 소박한 직원 몇 명을 두고 회사를 세웠다. 이름은 BYD(Build Your Dreams), 곧 “꿈을 현실로 만들자”는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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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촨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래는 배터리에 달려 있다.”

BYD의 초기 전략은 거창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 소니와 산요가 장악한 충전지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 배터리를 분해해 구조를 하나하나 분석했고, 값비싼 자동화 대신 인력을 활용한 수작업 조립 방식을 채택했다. 당시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한 이 방식은 단기간에 생산 효율을 크게 끌어올렸다.이 전략은 통했다. BYD는 곧 노키아, 모토로라 같은 글로벌 휴대폰 제조사에 배터리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배터리라는 작은 분야에서 출발했지만, BYD는 이미 “중국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있었다.


자동차 산업으로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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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촨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휴대폰 배터리로 얻은 경험과 자본은 그에게 더 큰 확신을 주었다. 배터리는 단순히 전자기기를 넘어, 머지않아 자동차 산업의 심장이 될 것이라는 통찰이었다.


2003년, BYD는 파산 직전의 국영 자동차업체 친촨자동차(秦川汽车)를 인수했다. 자동차 경험이 전무했던 BYD가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자 업계에서는 “무모하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러나 왕촨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BYD가 처음 내놓은 내연기관차는 일본차를 모방한 듯한 디자인으로 비판을 받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달랐다. 가격은 저렴했고 품질은 기대 이상으로 안정적이었다. 소비자들은 빠르게 반응했다.


2005년, BYD의 승용차 F3가 출시되자 판매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누적 판매량 100만 대를 돌파하며, BYD는 단순한 배터리 회사가 아니라 자동차 제조사로서도 자리를 잡았다. “BYD가 자동차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중국 소비자들이 몸소 확인한 순간이었다.


세계의 주목을 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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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D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한 것은 2008년이었다. 바로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가 BYD 지분 10%를 약 2억 3천만 달러에 인수한 사건이다.


이 투자는 단순한 자금 유입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당시 글로벌 시장에서 BYD라는 이름은 생소했고, 중국산 자동차는 여전히 불신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버핏의 투자는 BYD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놓았다. “BYD는 단순한 로컬 자동차 업체가 아니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술 기업이다.”


투자의 배경에는 버핏의 오랜 파트너 찰리 멍거의 확신이 있었다. 멍거는 왕촨푸를 직접 만난 뒤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토머스 에디슨의 발명 정신과 잭 웰치의 실행력을 모두 갖춘 인물이다. 배터리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면 전해액도 마실 사람이다.”


물론 실제로 마신 것은 아니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파고드는 집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었다.버핏의 투자는 BYD를 국제 자본 시장에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고, 글로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했다. BYD의 성장 서사가 단숨에 세계 무대에 던져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