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POP MART의 컬처 혁명

작은 상자 속의 거대한 반전

by 최성호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하기 전에 조카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형형색색의 작은 상자들, 그리고 그 위에 적힌 낯선 이름 ‘POP MART’.처음엔 그냥 요즘 유행하는 장난감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선물을 준후 조카들이 포장을 뜯는 순간,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건 라부부야! 숲의 친구래!

“이건 한정판이야, 나 이거 진짜 갖고 싶었어!”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 작은 인형 하나에 진심 어린 감정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이미 POP MART의 세계관과 캐릭터 이야기에 몰입해 있었다. 인형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감정이 연결되는 매개체가 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중국은 ‘싸고 빨리 만드는 나라’로 불려왔다. 하지만 POP MART의 등장은 그 인식을 조금 바꿔놓았다. 값싼 모방품이 아닌, 감성과 스토리로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브랜드가 등장한 것이다.POP MART는 분명 중국이 문화와 감성의 언어로도 세상과 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첫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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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MART의 창업자 왕닝(Grant Wang)은 2010년, 베이징의 한 쇼핑몰 구석에서 작은 점포를 열었다. 당시 그는 단순한 유행 액세서리와 소품을 판매했지만, 매출은 신통치 않았다. 중국 젊은층의 취향은 빠르게 바뀌었고, 소비자들은 금세 다른 트렌드로 이동했다.


그 전환점은 2014년, 일본 출장 중 우연히 발견한 ‘소니엔젤(Sonny Angel)’ 피규어였다.

상자 안에 어떤 인형이 들어 있는지 모르는 ‘블라인드 박스(Blind Box)’ 방식은 단순한 포장이 아니었다. 소비자는 상품이 아니라, “무엇이 나올까” 하는 기대와 설렘을 사고 있었다.


왕닝은 귀국하자마자 POP MART 매장에 이 방식을 도입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젊은 소비자들이 몰려들었고, SNS에는 “오늘은 뭐가 나왔을까?”라는 글이 넘쳐났다.

하지만 곧 한계가 드러났다. 소니엔젤의 IP(지적재산권)은 일본 회사의 것이었고, POP MART는 단순한 유통사에 불과했다. 아무리 팔아도 진짜 가치는 남의 손에 있었다.그때 왕닝은 깨달았다.


“남의 밭에 씨를 뿌려서는 결실을 거둘 수 없다.”


그는 과감히 방향을 틀었다.

남의 캐릭터를 빌려 파는 대신,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단이었다.

이 선택이 POP MART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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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그는 홍콩의 아티스트 케니 왕(Kenny Wong)과 손잡고,도도하고 개성 넘치는 소녀 캐릭터 ‘몰리(Molly)’를 독점으로 확보했다.몰리는 기존의 귀엽고 순한 피규어들과 달랐다.약간은 삐딱하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표정.그 안에는 중국 젊은 세대의 자의식과 태도가 담겨 있었다.


몰리가 등장하자 소비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사람들은 상자를 열기 전의 설렘, 열었을 때의 기대와 실망, 그리고 다시 도전하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느꼈다.POP MART는 이 감정의 흐름을 철저히 분석했고, ‘감정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냈다.그때부터 POP MART는 더 이상 단순한 잡화점이 아니었다.


몰리의 성공 이후 POP MART는 새로운 캐릭터를 끊임없이 탄생시켰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존재가 바로 라부부(Labubu)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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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부부는 어딘가 엉뚱하고 장난기 가득하지만,

동시에 쓸쓸함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표정을 하고 있다.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인간적이고, 어딘가 투박하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캐릭터다.


이 ‘불완전함의 미학’은 서구의 완벽한 히어로나 일본의 정교한 캐릭터와 다르다.

그 안에는 중국 젊은 세대의 새로운 감정 코드가 담겨 있다.

POP MART는 이런 감성을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라 경험과 세계관의 형태로 상품화했다.


POP MART의 성공은 단순히 장난감의 성공이 아니다.

그것은 중국식 감성이 세계 시장에서도 공감을 얻을 수 있음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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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닝의 말이 그 의미를 가장 잘 요약한다.

“우리는 장난감을 만드는 회사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열정과 행복을 전하는 회사입니다.”

POP MART는 ‘속도와 인내, 감성과 데이터, 예술과 산업이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증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