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올 때, 사람들은 역할을 입고 있다. 팀장, 막내, 누군가의 배우자. 그 옷들은 몸에 딱 맞지 않는다. 구겨진 채로 몸에 붙어 있다. 어깨가 처지고, 시선이 바닥을 향한다. 나갈 때는 얼굴만 남아 있다. 옷은 그대로인데 표정이 다르다.
카운터는 사람을 나란히 앉힌다. 마주 보지 않으니까 솔직해진다. 테이블은 심문실처럼 눈을 마주치게 하지만, 카운터는 옆구리를 열어둔다. 그 틈으로 말이 새어 나온다. 흘러나온다는 표현이 더 맞다. 억지로 꺼내는 게 아니라, 그냥 흘러나온다.
집은 혼자를 확인하는 곳이고, 회사는 남이 되는 곳이다. 바는 그 사이 어딘가, 이름표를 벗어놓을 수 있는 선반 같은 것. 여기서는 명함을 꺼낼 일이 없다. 꺼낼 수 없다는 게 아니라, 꺼내도 소용없다는 걸 모두가 안다. 직함은 문 앞에서 멈춘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질문 카드 한 장에 웃음이 터진다. 안주 한 점에 대화가 시작된다. "요즘 너무 지쳐요." 처음 본 사람한테 그런 말이 나온다. 신기하지만, 이 구조가 그걸 가능하게 만든다. 건너편에 바텐더가 있고, 옆에 누군가 있고, 그 사이에 술잔이 있다. 사람은 결국 말을 해야 풀린다.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생각은 점점 단단해져서 돌이 된다.
집에서는 안 되냐고 물을 수 있다. 안 된다. 집은 쉬는 곳이지만, 동시에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곳이다. 소파에 앉으면 알람 소리가 들린다. 아직 울리지 않았는데도. 냉장고 문을 열면 내일 챙겨야 할 도시락이 보이고, 침대에 누우면 다림질해둔 셔츠가 눈에 들어온다. 집은 오늘을 품지 못한다. 무엇보다 집에는 받아줄 사람이 없다.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가벼워진다. 누군가 받아주기만 해도. 고개를 끄덕이기만 해도.
바는 그 틈새에 있다. 유능하지 않아도 되고, 밝지 않아도 되고,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혼자 웅크리고 있진 않게 된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대화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야기는 저절로 시작된다. 시작되게 놔둔다.
한 손님이 나가면서 말했다. "여기 오면 진짜 '나'로 돌아오는 기분이에요." 나는 생각했다. 돌아온 게 아니라 도착한 거라고. 하루 종일 남의 기대에 맞춰 살다가, 낯선 사람과 나눈 한마디에 비로소 자기 자신한테 도착한 거라고. 출발점이 아니라 도착점. 그게 제3의 공간이다.
빌딩 숲 사이에 그런 장소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직함도 연봉도 필요 없이, 그저 '나'이기만 하면 되는 곳. 역할의 옷을 벗어놓고, 얼굴만으로 앉을 수 있는 카운터. 나는 그걸 만들고 싶었다. 하루 끝에 사람들이 자기 얼굴을 되찾아가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