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전혀 새롭고 낯선 곳에서 한때 익숙했던 느낌들이 하나 하나 꿰어져 들어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행을 하고 나면 지난 추억들과 방금 끝난 여행에서의 새로운 느낌들이 서로 어루어져 알록 달록 진주 목걸이로 化한채 주렁 주렁 목에 걸리는 것이다.
제대로 포장된 도로가 타운을 이어 주기 전까지 철도는 산업의 동맥이었고 작은 마을들의 이어주는 실핏줄이었다. 내가 지금 살고있는 캐나다의 타운 역시 그러한 시대를 지나왔고 그래서 내가 호텔을 인수했을때의 주소는 Railway Avenue 였다. 캐나다의 대부분의 중소 타운에는 이러한 철로를 중심으로 비지니스가 들어서고 주민들의 주거시설들이 들어섰기 때문에 어느 마을에서나 중심이 되는 거리의 이름은 주로 레일웨이 스트리트 였다. 그리고 지금 내가 운영하고 있는 호텔 앞 역에는 캐나다 횡단 열차가 지난다. 오른쪽으로 가면 밴쿠버, 왼쪽으로 가면 토론토 까지 가는 열차를 탈수 있다. 기차 타기를 워낙 좋아하지만 호텔 비지니스는 날 쉽게 놔주질 않는다. 언젠가는 캐나다 횡단 열차와 미대륙 횡단 열차를 타고 여행할 날이 오겠지만..
다른 나라와 많이 달랐던 인도 여행 중, 가장 남달랐던 것은 인도 대륙을 가로 지르는 1박 2일간의 대륙 횡단 열차 여행이었다. 처음 보는 인도 대륙의 거대한 스케일과 그 지질학적 프로파일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기회였을 뿐 아니라, 어린 시절 혹은 학창 시절 한국에서 경험해 왔던 열차 여행의 느낌과 당시 지나던 간이역들에서의 추억어린 풍경들을 떠올리게 하는 또 다른 차원의 시간 여행이기도 했다. 또한 26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더구나 鐵路 라는 지극히 단순하고 제한된 일차원 線上만을 오갈 수 있는 입장이었지만 난 인도 대륙과 그 땅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즐겁고 행복한, 그리고 바쁠것도 없는 파파라쵸였다. 인도의 땅, 인도의 하늘, 그리고 인도의 사람들은 내가 지나갔는지 조차 모른다. 그 아름다웠던 노을, 상쾌하게 줄지어 자라고 있었던 시원한 야자수들, 떠가던 구름들, 척박한 밭을 열심히 갈고 있었던 소들과 농부들, 그리고 이름모를 종달새들, 내게 카레 도시락을 팔았던 왈라.. 그 누구도 내가 누구였는지, 언제 지나쳤는지, 얼마나 자신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즐거워했는지 그 아무도 모른다. 빠르게 지나는 열차에 앉아 기다란 줌 렌즈를 통해 그들 가까이에 다가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며.. 인도에 대한 나의 짝사랑으로 시작했던 짧은 여행과 이 후에 간직하게 된 긴 추억은 블로그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 확장됨으로서 결코 짝사랑 만으로 끝나게 되지는 않은 것 같다.
난 열차란 말만 들어도 설레는데, 더우기 특급열차라 하면 가슴이 뛰는 정도가 된다. 시베리아 특급, 오리엔탈 특급, 첸나이 특급.. 아님 요하네스버그에서 출발한다는 아프리카 사파리 특급!! 특급열차가 주는 이미지는 낭만적이면서도 미스테리하고 몇날 며칠 지루할것 같지만 사실은 아쉽기만 할 것 같다. 영화와 소설 속에서 자주 접해온 일차원을 달리는 특별한 시공간의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연속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번 첸나이 특급의 열차는 불행히도 객차간 통행이 차단되어 있어서 클래스가 다른 객차에 몸을 실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는 없었다. 대신 객차의 이음 부분에 설치된 편한 의자 겸 간이침대 덕분에 인도를 동서남북의 대각선으로 가로 지르는 인도의 열차 여정 중 가장 긴 트레일 중 하나인 뭄바이-첸나이 노선을 지루할 틈 없이 즐기며, 마치 로드무비라도 보는 듯 인도 대륙의 거대한 호흡을 기나긴 롱 샷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She looked like a Goddess in Greek & Roman Mythology. She might be on her way back home from school in that afternoon. She was smiling.. even. I tried my 200 mm telescopic lens from distance while my express train was running very fast.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며, 그들은 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대륙에 살고 있는 지 가끔은 더 느낄 것 이며 전혀 만만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자신과 자신들의 동료,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흐믓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길면 긴것이고 짧으면 짧다고 할 인도의 열차 여행에 대한 글을 쓰면서 몇년전 난 내가 바라보며 놀라고, 즐거워하며 또 행복해 했던 그 대상들에 대한 깊은 감사를 드린다. 좋았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녹이 잔뜩 슬었지만 중후한 색조로 길게 늘어서 있는 탱크로리 열차들 앞에서 터번등을 둘러 쓰고 일하고 있는 작업자들을 보며, 작렬하는 태양아래 피라미드를 쌓아 올리던 고대 이짚트 사람들 생각이 나기도 했는데..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공사 구간을 지난 첸나이 익스프레스는 속도를 올리며 건기의 대륙을 달리고 또 달렸다.
인도 여행 중 스믈여섯 시간의 첸나이 익스프레스 기차 여정 중 마주치게 되었던 멀쩡하게 잘 생기고 감수성도 깊을 것 같은, 그리고 감청색 셔츠 역시 깨끗하게 차려 입은 이청년은, 광이 눈부시게 번쩍거리는 스테인리스 받침판위에 이것 저것 정성스럽게 포장된 스낵을 놓고선 이제 막 객실안으로 들어설 차례였다. 그런데 고작 몇 루피 정도일 저 스낵 봉다리 몇십개를 팔기 위해 그가 들인 정성들은 부조리할 정도로 극진했던 것이다.
이승에서의 삶이 고단할수록 저승에 대한 극단적 판타지를 부추기는 것은 위로와 구원이라기 보다는 착취가 아닌가. 더군다나 그 종교적 부추킴의 주체측은 무소불위의 권력과 금력 속에 이승의 온갖 달콤함을 다 맛보고 있는 터에.. 부조리의 극치는 가장 찾기 힘들어야 할 곳에서 오히려 가장 손쉽게 찾아지는 자기증명적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한다.
열차는 다시 서행을 거듭했고, 그러면서 거대한 모래 江이 나타났다. 철교를 지나는 열차 밖으로 얼굴을 내 밀자 바싹하게 구워진 파삭 파삭한 열기가 얼굴에 부딪혀 화끈거렸다.
일년에 한두차례 큰 물이 지나갈 뿐 언제나 모래의 강이 흐르는 듯 강 한가운데엔 아담한 야자수들이 뻣뻣한 가지를 나부끼며 서 있었는 데 그 주변엔 놀랍게도 몇개의 묘 자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강 한 가운데의 무덤들이라니.. 생과 사에 대한 이미지가 곱고 뜨거운 살색 모래색으로 채색되면서 스쳤다. 인도의 사람들은 갠지즈 강에서 몸을 씻으며 영혼을 정화하는 것을 평생 원으로 살아간다. 이생의 삶을 다하고 깨끗하게 불태워져 그 재가 영생의 강 갠지즈에 뿌려지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강가 까지는 너무나 먼길이다. 그래서 강이 범람할 정도의 큰 물이 들어 무덤이 들리우고 관이 떠 내려간다면 모든 강의 어머니 갠지즈 까지 닿을지도 모르는 인도의 깊은 내륙의 돈없고 순박한 사람들은 이곳에 묘를 썼을지 모르겠다.
얼마 후 첸나이에서 뭄바이 메일(Mumbai Mail) 이라는 열차를 타고 되돌아 가면서 다시 만나게 되었던 이 강엔 마침 雨期라 쏟아져 내리고 있던 많은 물이 흐르고 있었고, 마을 주민들은 고기 잡이에 여념이 없었다.
나라가 잘 살고 못살고를 떠나 젊은이들은 어디서나 유쾌하고 과장된 몸짓으로 여행자들을 즐겁게 한다.
한켠에서 기차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며 동시에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본다. 불현듯 밀려오던 잊혀졌던 삶의 편린들 역시 열차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다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간다.
이젠 특별한 관광 열차를 제외하고는 기차 이음칸의 출입문을 열고 앉아 바깥을 감상하는 기회는 한국에서나 캐나다, 혹은 여타 선진국들에서 사라졌지만 이곳에서는 아직도 그러한 추억거리들이 허용되고 있었다. 허용된다기 보다는 완전한 방치라고 봐야 할텐데, 안전 불감증이라고 보이기 보다는 오히려 낭만적이고도 개방적인 열차 운영에 찬사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교차해 지나는 열차의 이음칸에 앉아 자신들의 미래를 바라보는 듯한 자세를 취했던 이 두 젊은이의 이미지는 인도 여행의 많은 이미지 중 강렬한 이미지 중 하나로 남아있게 된다. 분위기가 꼭 '내일을 향해 쏴라' 에서의 두 주인공 같기도 하다. 인도판 보니 & 클라이드.
첸나이 특급이 어둠속으로 속도를 더해 가면서 바라본 우리 지구 한켠의 아름다운 석양이다. 이러한 석양의 아름다움에 빠질 수 있는 우리 눈의 분광 능력을 가질 수 있게 해준 조물주에 섬세함에 다시 감사하게 된다. 아름다움을 인지하고 그 안에서 위로받을 수 있는 능력이 다른 생물들에게 있는 지 모르겠다. 또 그러한 미적 감수성이 한 생물종으로서의 생존능력을 얼마나 증대시키는 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를 계속 확장 시켜왔고 아름다움에 빠져있는 우리의 상태를 행복하다고 여겨왔다. 신적 존재가 아닌 이상 이러한 형이상학적이고 복합적이며 순간적인 자연현상을 행복감이라는 지극히 개인적 상태로 어떻게 연관시킬 수 있단 말인가. 첸나이 특급이 석양속으로 그 속도를 더해감에 따라 얼굴에 부딪는 열대야의 따뜻한 바람도 더 세차졌고 그에 따라 가속적으로 빠져드는 행복감은 어느새 극치에 다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