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2 서울을 찾아서 - 3

by Peter Shin Toronto

* 2012 서울 방문의 마지막 글을 이제야 올린다.

서울을 여행하면서 어디서든 접하게 되는 길거리 음식들은 정말 반가웠다. 사실 내게 이러한 음식들은 먹거리라기보다는 추억거리였다.

이제 내게 주어지는 즐거움과 행복감은 앞으로 펼쳐질 새로움에 대한 긴장 어린 희망에서 보다는 과거로의 여행을 통한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한 재발견과 재해석, 그리고 재정의 되는 것들에서 비롯될 것이다. 게임을 이기진 못했지만 왜 졌는지를 따져보면서 복기 그 자체의 오묘한 즐거움에 빠졌달까. I loved it actually though it was not always pleasant.

돌만큼 딱딱하게 굳은 북어를 빨래 방망이로 두드려 펴면 그 황금색 속살이 금세 드러나곤 했고 북북 뜯어내 살짝 구워 고추장에 찍어 먹던 맛은 독보적 식감과 맛이었다. 이러한 이미지들을 대할라 치면 카메라를 든 내 팔은 저절로 들어 올려지고 내 눈은 뷰파인더 속을 헤매곤 한다. 얼마나 다정스러운지.

한잔 할 때면 언제나 가곡 '명태'를 불러 제치곤 했던 대학 선배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만든 이들의 솜씨와 정성이 가득 담겨있는 각종 반찬들은 그 다양함에 입을 다물지 못하게도 했다.

오랜만에 찾은 강남역 사거리의 다이내믹스는 여전했다. 거대하면서도 쿨하게 지어진 대기업의 사옥 군이 인상적이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진정 큰 기업이기를 바라 보지만, 따뜻한 자본주의를 떠올리기엔 저곳엔 금속성의 차가움과 물셀틈 없음만 가득해 보였다.

대전 항공우주연구원에 근무하는 절친 이박사와 함께 즐거운 2박 3일을 보내고 상경하는 날, 승훈은 굳이 기차표까지 끊어 내게 쥐어 주었고, 연구단지 게스트 하우스로 새벽에 날 데리러 와 대전역까지 바래다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친구와 나누는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의 우정은 우리 옛날 세대가 아니면 잘 모를 거다. 얼마나 속 깊은 따뜻함이 함께 하는 건지.

KTX는 싱겁게도 불과 한 시간여 만에 대전에서 서울로 내달렸다. 한강대교를 지날 때 여의도의 모습은 언제나 봐도 아련했다. 서슬 파랬던 젊은 시절 10 여 년을 넘게 살아온 여의도에서의 삶이 깊었었다.

거대 도시 한복판에 이런 '옛날"이 버티고 있음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서울의 자존심이다.

홍콩의 팀사 쵸이를 떠올리게 하는 남대문 시장 뒤편의 정겨운 모습도 좋았다.

서울 방문 중 동생의 차 안에서 살짝 바라본 경복궁. 광화문 대로에서 우회전을 하자마자 삼청동으로 오르는 경복궁 옆길로 다시 좌회전을 하는 짧은 시간 동안에 바라본 근정전 주변이었지만 아름답고 서사적인 궁궐의 모습은 고스란히 그 존재감과 역사 감을 들어내고 있었다.

학교와 집이 세상의 전부였던 초등학교(aka 국민학교) 시절, 일 년에 한두 번 정도의 수학여행 나들이는 주로 경복궁이었다. 서울의 북쪽 끄트머리 미아리에서 다운타운 중심의 이곳 경복궁까지는 얼마나 멀고 먼 신나는 장정이었던지.

궁궐로 출근하는 고관대작이나 관련 신하들을 제외하고 경복궁이 창궐된 이후의 민초들은 이조 시대의 흥망성쇠를 이렇게 오늘의 나처럼 밖에서만 바라보며 스쳤을 것인데, 신비롭기까지 한 유려한 곡선미의 기와지붕과 보일 듯 말 듯 적당한 높이의 담장 너머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그 모든 정쟁적, 당파적 사건 사고들이 다 끝나고 나서야, 그것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나 알려지곤 했을 것이다.

궁궐의 건축미학적 완성도에 비해 죽고 죽임을 거듭하며 수백 년을 거쳐 내려온 조선 왕조사는 그리 아름다울 것이 없었을 테니 밖에서 바라보는 궁궐의 모습은 만감이 교차되는 것이었겠다. 관광객 입장에서 유쾌한 심정으로만 바라보는 지금의 나와는 결코 같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의 건축가 조병수가 오랜 세월, 대지에 뿌리 박혀있는 나무를 형상화하여 지었다 한다.

건물 모양의 다양함은 가까이 다가가 볼 수록 더 했는데, 거대한 규모임에도 주변을 압도하지 않으면서 부드러움과 친근함으로 같이 하는 고목의 느낌이 났다.

강 차장과 서초동 가로수 길을 걷다 찾아 들어간 타카야. 아사히(Asahi)를 마시고 싶다는 내 제안에 Alec이 제대로 된 일본식 주점을 찾은 거다.

아사히가 얼마나 신선한지 건강한 효모가 발생시키는 기포가 잔이 비워질 때까지 계속 올라왔다. 내가 살고 있는 토론토의 아이리쉬 펍 도라 키오(Dora Keogh)에서의 기네스가 생각났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묘하다. 많은 사람들을 사귀는 스타일이 아닌 나로서는 알렉 강 차장과의 인연은 신기하기만 하다. 국제 방송교류 재단의 미디어사업센터 강문승 차장. 족히 5년은 넘었을 Online 상의 친구였는데 블로그에 올리는 내 사진들과 글을 통해 알게 된 그와 이번 한국 방문에서 직접 만나게 된것이다.

얼마나 진지하게 저 이쁜 것들을 고르던지, 난 경건한 마음으로 옷깃까지 여며가며 그의 곁을 지나야 했다.

엄동설한의 서울 종로의 한 복판. 삭풍이 몰아치는 그 인사동 골목에서 진지함을 넘어 심각하게 연필을 고르는 커플이 있었다. 몸을 굽혀 다양한 연필을 집어보고 다시 내려놓는 동작은 내가 그들을 발견한 10여 미터 전쯤부터 그들 바로 앞을 지나가는 동안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이들 외국인 커플의 행동이 그 이쁜 연필들 보다 더 어여뻐 보였다. 이러한 선물 고르기, 즉 그들이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고르고 고르는 집었다 놓았다의 과정 속에서 이 연필을 선물로 받을 이들의 면면과 성격, 그 관계의 유쾌함이 떠 오를 것이고, 선물을 받으며 즐거워할 모습도 떠오를 것이고.. 난 도대체 왜 이러한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을까.

매번 공항 면세점에서 충동적으로 집어 들거나, 시간이 없을 경우 그저 기내 잡지에서 열거된 선물들을 고르기에 급급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사실 난 선물의 대상, 가족 구성원들이나 회사의 동료나 친구들을 염두에 두었다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 지극히 전형적 의미의 물건들을 좋은 선물이라고 집어 들었을 뿐이었던 거다. 난 내가 생각하기에 저리 사소한 선물을 고르기 위해 엄동설한에 장갑을 벗고, 바람을 맞아가며 한참 동안이나 고르고 골라 전달될 그 작지만 큰 선물에 대한 가치를 전혀 생각해 보지 않고 살아왔던 거다. 아마도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살아왔던 것 결과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서울의 내 작업실이었던 살롱드팩토리의 새 식구 냥이는 따스한 곳을 좋아한다. 뜨거운 노트북 키보드 위의 고양이.

출국 전 마지막 만남을 기념하며 아키 김우성 사장의 식사 초대가 있었다. 건강한 만찬이었으며, 비즈니스 관련 예기치 않았던 대화도 이어졌었다.

푸드 스타일리스트이면서 패션디자인 및 리빙 컨설팅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dining R의 오너인 R 양의 탁월함은 그녀가 준비한 식단과 차, 그리고 그윽하면서도 쿨 한 이 공간에서 그 면모가 여실히 나타났다. 그녀의 모토는 the simpler, the better.

출국 하루 전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다시 들어선 홍대 앞. 수많은 젊은이들이 파도처럼 오가는 곳에서 아무도 없는 너른 잔디 정원의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라도 앉아 있는 듯 편안한 자세로 talk 에 열중인 청춘이 있었다. 젊음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설렌다. 우리 모두가 역시 이러한 아름다운 인생의 계절을 지나왔기에.

신관웅의 빅 밴드 연주로 듣는 성숙하고 부드러운 Feel So Good. 좋았다.

보고 싶었던 얼굴들인 TK, 희진, 인호, 수원.. 다들 hp 시절의 얼굴과 열정이 그대로인 것 같았다. 그 옛날 팀 동료 관계로 돌아간 유쾌하고 상쾌한 회동이었다. thanks guys.

Back home.


Ci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