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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푸기 Nov 29. 2022

드디어 난임 병원을 졸업하다.. 임신 확인 후 9주까지

저 정말 병원에 안 와도 되는 건가요?… 죽음의 입덧도 시작

“쿵쾅쿵쾅… 엄마 나 여기 잘 있어요! 걱정 말아요.”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하는 날이다. 힘차게 뛰고 있는 아기 심장소리도 들었다. 그런데, 병원에 가는 길에 속옷에 무언가 왈칵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출근하다가 시험관 시술 이후 집에서 쉬고 있는데 오랜만에 출근길 만원 지하철을 타서 그런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갈색 혈이 묻어 있었다.

순간 너무 걱정됐다. 착상혈이라고 하기엔 시기가 너무 늦는데, 아기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싶어서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초음파를 기다렸다.


“별일 없었나요?” “교수님, 저 방금 갈색 혈이 살짝 묻어 나왔어요. 괜찮을까요?” “아, 그거 나올 수도 있어요. 초음파로 확인해 볼게요.”


초음파상으로는 자궁이 깨끗하다고 했다. 염려했던 것과 달리 아기도 잘 있었고, 자궁 내 피고임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 날 단태아가 확정됐다. 배아 2개 중 1개만 착상이 된 것.


“일단 주사는 다음 주까지만 맞는 걸로 하고, 그다음 주에 자가면역주사를 처방해 줄게요. 이후엔 병원에 안 와도 돼요. 차병원 졸업하는 거예요.”


임신 9주까지만 확인하고 이후엔 차병원 진료는 끝난다.

앞으로 다닐 병원으로 전원 해서 그곳에서 각종 검사를 받고, 아기를 낳으면 되는 것이다. 배에 마지막 주사를 놓은 날, 유난히 떨렸다.

이 주사가 뱃속의 아기를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아서 주사를 안 맞아도 괜찮을지 괜한 걱정이 됐기 때문. 이쯤 되면 태반이 형성되어서 아기가 스스로 호르몬을 생성할 수 있다고 한다.

주사기를 꺼내 배를 찌르고 난 뒤 섭섭함과 시원함이 밀려왔다.


내 경우 피검사에서 갑상선 수치가 조금 높다고 해서(정상 범주에 있지만 임신 기준에서 높은 편) 호르몬 약을 꾸준히 먹었고, 소위 NK Cell 수치가 높다고 해서 자가면역 링거도 두 번 맞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약도 주사 처방도 더 많았지만, 아기만 잘 자란다면 그깟 주사와 약이 문제랴…


임신 9주, 난임 병원 마지막 방문…


이날도 아기 심장은 쿵쾅쿵쾅 열일(?)하고 있었다. 입체 초음파로 확인한 아기는 동그랗게 팔과 다리가 생기는 중이었다.

이 시기는 흔히 말하는 ‘젤리곰’ 형태로 보인다. 정말 젤리곰처럼 짧은 팔과 다리, 머리, 몸통 이등신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아기가 팔과 다리를 마치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요리조리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 짧은 몸뚱이(?)로 자궁 안에서 휘젓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귀여움이었다. 이 젤리곰이 정말 내 아기란 말인가…


집에 돌아와 재택근무하고 있는 남편에게 젤리곰 아기를 흉내 내며 이렇게 움직이더라고 전했더니, 남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초음파를 같이 봤다면 너무 감동적인 순간이었을 거라고 울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임신의 기쁨과 함께 죽음의 입덧도 찾아왔다.

입덧의 흔한 증상인 멀미하는 느낌이거나 울렁거리는 건 덜했지만 체한 느낌의 답답함이 매우 고통스러웠다. 물만 먹어도 속이 꽉 막힌 느낌…

누군가 내 멱살을 부여잡고 있는 느낌 말이다. 탄산수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 와중에 상큼한 맛이 당겨서 냉면도 많이 먹고, 과일도 챙겨 먹었다.


뒤늦게 구세주를 발견했다. 바로 ‘분다버그 자몽맛.’

인터넷에서 입덧 완화 음료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주문했는데, 얼음컵에 타서 마시면 상큼, 달달, 씁쓸, 시원함이 답답한 속을 달래주었다.

많은 임신부들이 분다버그로 입덧을 달래고 있어 나름 이 바닥(?)에서는 유명템이었다. 분다버그 자몽맛 역시 내 입덧을 달래주는 ‘효자템’으로 등극해 식탁 밑에 쟁여두고 생각날 때마다 마시고 있다.


비록 음식을 먹고 난 뒤 내 멱살을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은 들었지만, 다행히 토로 이어지진 않았다.

누군가는 울렁거림이 극심해서 토하고, 물만 먹어도 게워낸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는 소화가 더딜 뿐 토하고 싶을 정도의 울렁거림은 없었다. 그래서 입덧 약도 처방받지 않았다.


“뭐지? 오늘 점심을 많이 먹었는데도 속이 괜찮네? 더부룩해진 느낌이 덜한데?”


어느 순간부터 체한 것 같은 느낌이 덜했다. 입덧이 완화된 이유를 찾아보니 ‘호르몬 약’인 것 같았다.

그 시기쯤 아침, 저녁으로 복용했던 프로기노바를 끊었기 때문. 인터넷의 난임 카페에서 가끔 프로기노바 부작용 사례가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변비와 체한 느낌이었다.

나 역시 임신 초기 호르몬 변화로 인한 극심한 변비와 체기를 달고 살았는데 호르몬 약이 증상을 악화시킨 것 아닐까 싶었다. 어찌 됐든 약을 끊고 입덧이 좋아졌다. 덕분에 컨디션도 한결 나아졌다.


임신 11주 차에 전원 할 병원에 방문하고, 곧 임신 안정기에 돌입한다.

그동안 조심한다고 주로 집에서만 생활했는데 서서히 바깥 활동도 하고, 가벼운 운동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설렌다.

안정이 최우선이지만, 북한산 둘레길 산책도 하면서 계절의 바뀜도 느끼고 디카페인 커피도 마시고 싶다. 임신 초기 요가와 못 만났던 친구들과 만나는 등 서서히 나의 일상을 회복해야지.


수개월간 나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주사와 약을 끊었다.

병원에서 주사 처방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배에 첫 주사를 놓던 날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어느 쪽으로 찔러야 덜 아플까, 속도는 어떻게 조절해야 할까 숱한 고민도 많았다.

정해진 시기에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배 주사로 하루를 시작했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 마무리는 주사와 함께 했다. 덕분에(?) 배 군데군데 피멍이 들기도 했다.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동시에 이걸 견뎌내야 아기를 품을 수 있다는 비장함도 생겼던 시간이었다.


그랬던 주사와 약을 동시에 끊으니 왠지 모를 불안함이 몰려왔다. 무엇보다 주사 없이도 아기가 잘 자랄지 무척 걱정됐다.

하지만 하루의 시작과 끝에 함께 했던 주사와 약이 없으니 몸과 마음은 매우 홀가분했다. 약을 끊으면서 휴대폰에 설정된 알림도 모두 삭제했다. 이제부터는 나와 아기를 믿는 시간!


“교수님 덕분에 무사히 임신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난임 병원을 나서자마자 앞으로 전원 할 서울대병원에 초진 예약을 했다. 2주 뒤엔 서울대병원에 가서 목 투명대 검사 등 1차 기형아 검사를 하게 된다. 벌써부터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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