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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푸기 Feb 08. 2023

임신부의 삶의 질은 누가 보장?…조용한 무관심이 좋다

유일한 태교는 ‘운동’, 가족 눈치 보면서 수영장 가는 이유는

“조심해라, 집에서 쉬어라, 운동해도 괜찮은 거니?, 운전하지 말고 택시 타.”


언젠가 tvN에 서울대학병원 산부인과 전종관 교수가 출연해서 건넨 말 한마디가 귓가에 맴돌았다.

국내에서 다태아 분만 경험이 많은 전 교수는 다섯 쌍둥이를 분만한 이력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아기들은 모두 건강했다.

평생 임신부와 함께 임신과 분만을 경험한 노교수가 힘주어 말한 이야기는 바로 이 내용이었다.


“우리는 아기 걱정만 해요. 임신부의 삶의 질은 누가 보장해 주죠? 임신부에 안정이 제일 안 좋아요.”


임신부의 삶의 질?


주변에 친한 친구들이 임신하고 출산을 해도 내가 임신부가 되어보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다.

임신을 하면 그저 축하하고, 점차 배가 불러 때가 되어 순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부였다.

대부분 임신과 출산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임신부가 되어 힘든 고충을 나눈 기억은 별로 없다.


임신부가 되어보니 다른 시선들이 나를 향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큰 변화는 ‘배려’다. 가족과 주변 친구들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임신부는 배려를 받는다.

지하철과 버스의 임신부 배려석(실제로 비어있는 것과 별개로)이 대표적이다.

실생활에서는 남편의 적극적인 가사 동참과 함께 시가에서는 명절 패스권(명절에 내려오지 말고 집에서 쉬기)을 얻기도 했다.


그다음은 ‘걱정’이다.

10개월 동안 임신 여정은 걱정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기집 확인, 심장소리, 기형아 선별검사, 정밀 초음파, 규칙적인 태동, 조산, 난산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실제로 임신 전 건강했던 산모가 갑자기 임신성 당뇨와 고혈압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임신이 그렇다.


외형적인 몸의 변화도 크다. 몸의 변화는 곧 삶의 질로 연결된다.

아기가 커질수록 배가 커지고, 모유를 준비하는 유방도 부풀어 몸이 무거워진다. 호르몬 영향으로 피부도 가렵다.

배가 무거워지니 없던 요통이 생기고, 호르몬 변화로 관절이 아프며, 혈액 순환도 원활하지 않아 다리에 ‘쥐’가 나기도 한다.


임신 20주가 지나자 밤에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고, 병원에서 의료용 압박스타킹을 처방받아 이따금씩 신고 있다.

임신 후기(28주 이후)에 접어드니 장시간 걷기도 힘에 부친다. 윗배가 부르면서 소화도 잘 안되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금방 차기 때문.

배도 뭉치기 때문에 걷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다가 30주 넘어선 요통까지 겹쳐 저녁밥을 준비하다가도 중간중간 의자에 앉아 쉬어줘야 하는 지경이 이르렀다.


아기를 품는 10개월 동안 크고 작은 아기의 움직임으로 엄마와 교감하는데, 이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무거운 몸뚱이로 살아가는 건 쉽지 않다.

주수가 바뀔 때마다 기가 막히게 배가 부른 느낌이 든다. 피부가 땅기고, 근육이 팽팽해지는 느낌. 밥을 조금만 먹어도 배가 터질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예전만큼 외출도 못 하고, 마음 한편엔 늘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 주머니도 매달려 있다.


임신부로 가족과 주변인들로부터 받는 배려가 감사한 만큼 감당해야 하는 게 있다.

바로 ‘참견’이다. 주로 걱정하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부터는 장거리 여행도 하지 말고 더 조심해라. 무조건 잘 먹어야 한다. 그래야 아기가 건강하단다.”
“버스 타고 다니는 거 괜찮니? 넘어질까 봐 걱정된다. 웬만하면 버스타지 마라.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오늘 수영가지 말지?! 집에서 쉬는 게 아기에게 더 좋지 않겠어?”
“이제 운전도 절대 하지 마. 괜히 사고라도 나면 어떡해?”
“이거 먹어도 돼? 임신부는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냐?”


나를 위한다고,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지만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듣는 나로서는 유쾌하지만은 않다.

어쩔 땐 나를 위한 이야기를 한다기보다 뱃속의 아기를 위한 말이라는 생각이 앞서기도 한다.

배가 나오고 몸무게가 늘어나면서 장시간 외출은 엄두도 못 내면서 병원을 가는 날과 운동을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집에 머무르게 된다.

어쩌면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임신 후기로 접어들면서 ‘불면증’도 심해졌다. 임신 초기 새벽에 깨어 잠이 안 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후기에 다시 불면의 밤이 찾아왔다.

자는 도중 화장실 신호에 잠을 깨면 다시 잠들기가 매우 어렵다. 어쩔 땐 꼬르륵 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우유를 데워 마실 때도 있다.

침대에서 뒤척거리다가 동이 튼 적도 많다. 이럴 땐 옆 자리에서 쿨쿨 자는 남편이 얄밉게 느껴지기도 한다.


임신부로 9개월 여를 살아보니 임신부는 누구보다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아끼고, 살피면서 지내게 된다. 나의 몸이자, 아기의 집이기 때문이다.

임신 자체가 주는 경이로움, 태어날 아기에 대한 기대 등 행복한 순간이지만 동시에 임신부는 통증을 견디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꼭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임신부에 대한 따뜻한 말 한마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

“하지 마라, 먹지 마라, 조심해라. “ 등의 부정어보다는 ”지금 잘하고 있다, 충분하다, 네가 좋으면(혹은 맛있으면) 됐다. “는 등의 긍정어가 큰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임신부는 세상 누구보다 아기를 걱정하고, 아기를 위하기 때문이다. 임신을 하면서부터 모든 삶의 중심은 아기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제 곧 임신 막달이다. 아기의 머리가 골반기저로 내려오면서 몸은 한층 더 불편해졌다.

거의 매일 불면증에 시달리며 짧은 외출 후에는 반드시 누워서 쉬어줘야 할 만큼 체력이 약해졌다.

아기를 만날 때까지, 출산 이후에도 당분간 삶의 질은 떨어진 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지금 내겐 가족과 주변 지인들의 격려가 더더욱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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