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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파파 Oct 21. 2020

글 쓰는 체대생

운동에 미친 자, 훈련사의 길을 글로 담다

나는 체대생이다.

아니, 7살 때 운동을 시작해 체대를 졸업한 사람이다.

문학에 관심이 생기게 된 계기들을 쓰기 전에 잠깐 내 과거들을 얘기해봐야겠다.


1997년도쯤이었던가?

부모님께 받은 용돈으로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좋아하는 비디오를 두 편씩 빌려보곤 했다.

전대물이란 비디오는 거의 다 빌려 보았고, 자연스럽게 나의 꿈은 히어로가 되는 거였다.


부모님을 졸라 처음 태권도 체육관을 갔을 때 기억이 선명하다.

새하얀 도복에 하얀 띠를 매고 있으니 비디오에 나오는 히어로가 된 기분이었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7살에 시작한 태권도는 10년이 넘게 이어졌고, 선수를 준비하다 무릎을 다쳐 1년 동안 재활을 받게 되었다.

재활이 끝난 후 다시 시작한 내 운동량과 몸 상태는 처참했다.


선천적으로 좋지 않은 몸에 노력이란 두 글자로 끌어올린 운동신경은 1년 만에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

약한 골반 힘, 남들보다 살짝 굽은 등으로 인해 1자로 찢어지지 않는 다리는 내 평생의 업이었다.

10년이 넘게 비닐봉지를 발에 끼우고 마찰을 최소화 한 뒤 억지로 찢은 다리가 무색할 만큼 1년의 재활 기간은 아주 긴 시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노력으로 만든 골반 힘이 두 다리를 버텨준 다는 거였다.

결국 난 10년이 넘게 준비한 태권도를 버리고 용무도를 택하게 되었다.


용무도란 태권도, 유도, 합기도, 씨름 등을 합친 주먹 타격을 제외한 MMA스포츠라고 생각해도 좋다.

1년 동안 용무도 대회를 준비하고 시합을 나가게 되었다.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와 시합하는 경험도 얻었다.

가능성을 본 나는 대회 준비가 아닌 입시 운동을 시작해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목표하는 대학이 생겼고, 매일 4시간씩 잠을 자며 정시 준비를 했다.

운동을 병행해 피로가 누적되어 정강이에 피로골절까지 왔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 해 용인대 경호학과에 진학하게 다.

(진학 후 월례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남들보다 상식이 많이 부족했다.

입시부에 들어가고, 입시를 위한 공부만 했으며 기본적인 상식도, 이슈도 몰랐다.

대학 시험의 대부분은 논술형이다.

그 말은 내 생각과 답안을 적절히 조합해 풀어써야 한다는 것이다.

머릿속에 든 건 운동뿐이던 내가 논리적인 내용을 쓰는 것은 말도 안 되었고,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다.

주변에서도 운동만 했던 사람이라 아는 게 없단 식으로 손가락질 했다.

화가 났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자존감이 떨어졌다.


대학에서도 시범 준비로 인해 이렇다 할 내용도 없이 1년이 지나 군대를 갔다.

군대에서 남는 시간에 책을 읽기 시작했고, 부족한 상식을 채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읽기만 한 거 같다.

태권도를 했던 경험과 입시 때 준비한 영어실력으로 운이 좋게 파병을 다녀왔는데, 그때에도 다른 병사들과 책을 돌려가며 읽었다.


전역을 하고 연애를 시작했다.

그 친구는 국문과를 재학 중이었고, 이때 내 어휘력이 부족한 게 아니란 걸 알았다.

그 친구는 계속 글을 쓰고 있었고, 나도 그 친구의 글을 좋아했다.

나 역시 어디에 게재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선입견이 있었다고 했다.

체대생인 나를 보고 문학과 거리가 멀거라면서 다름의 매력을 느꼈으나, 글을 쓰는 것을 보고 국문과 학생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실력을 가졌다며 놀랐다고 했다.

(너무 내 자랑 같지만 사실이다...)

하기야 나도 그 친구에게 부족해 보이고 싶지 않아 맞춤법을 열심히 검색했던 기억이 있다.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마찰이 생긴 우리는 결국 헤어지게 됐다.

그 친구 덕에 글 쓰는 재미를 알았고, 표현의 다양성을 배웠다.

참 고마운 친구였다.


결국 무식해 보이지 않으려 책을 읽고, 글을 쓴 게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생이 그런 거 같다.

끝인 줄 알았는데 문을 열고, 또 끝인 줄 알았는데 다시 문을 열게 되니, 과적으로 모든 것이 연결된다.

나 역시 운동만 알았고, 비슷하지만 훈련사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느낀 것들을 글로 쓰고 있다.

훈련사라는 직업이 글을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

관찰을 토대로 문제 행동을 교정하는 것이기에 글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나는 많은 문을 열어왔기에 이것 역시 시도해보려 한다.

꿈은 언제나 변할 수 있지만 내 글 하나로 인해 많은 반려견들이 보호자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게 지금의 꿈과 가장 가까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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