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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약사 Jan 08. 2023

아들이 뇌에 이상이 생긴 걸까요?




누군가에게 ‘갑자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갑자기’인 것은 아니다. 


상황을 인식해 나갈 때 

우리는 특정한 사실들을 연결해 나가게 된다. 

그 특정한 사실이란 

자기 필요에 맞게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마음에는 민감한 단서들이, 

다른 이의 마음에는 

전혀 자극을 주지 못하고 그냥 스쳐간다. 

그렇게 각자 만들어내는 맥락이 다르므로, 


결과적으로도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가지게 된다.

그럴 때 나의 이야기에 속하지 못한 

상대방의 파편은 사뭇 이해되기 어려운 것이다. 

갑작스럽게 느껴지고 당혹감을 주기도 한다. 

그것이 소중한 사람의 안위와 관련되어 있을 땐 

더더욱 그렇다.




“이 약이 무슨 약들인가요?”


조금 불안한 듯 보이는 

60대 부부가 처방전을 보며 묻는다. 


이런 경우 나의 머릿속에는 

몇 가지 생각이 동시에 스친다. 


일차적으로 병원과의 관계이다. 

의사의 처방에 대한 불신으로 묻는 것이라면, 

병원과 상조하는 약국에 고용된 

나의 역할이 있다. 


어떻게 의사의 처방을 존중하며 

오해를 사지 않도록 중재할지, 

환자분들이 불쾌한 상태는 아닌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다음은 그 처방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내가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다. 

대략적인 처방 매뉴얼들이 있기는 하지만, 

의사 개인의 수련 과정에 따라 

과감성을 보이거나 

경험적인 비전형 처방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복약의 과정에서 

표현이 섬세하지 못할 경우, 

오해가 생겨 

꼭 필요한 약을 

환자가 거부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이분들은 대체 무슨 일을 경험하셨기에, 

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난 후에도 

아직 혼란스러워하고 계실까. 


긴장한 채로 찬찬히 처방전을 훑어본다. 


혈액순환제와 소염제, 신경안정제, 위장약. 

처방만으로는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나는 더욱 미궁 속으로 빠진다. 

모를 땐, 물으면 된다.


“무슨 일 때문에 진료를 보셨어요?”


여전히 불안한 표정을 하고 

병원에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신다. 


다소 초조해하는 자신들의 감정 보따리를 

풀어헤쳐 꺼내어 놓는 것. 

그분들이 경험한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직접 설명을 시도한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아니, 밥을 먹다가 

애가 갑자기 말을 못 하고 

팔에 힘이 빠지면서 쓰러졌어. 

그래서 내가 업고 왔는데…”


“세상에, 너무 놀라셨겠어요.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하고 있어요?”


“병원에서 링거 맞고 누워있는데, 

뇌에 이상이 생긴 건가요? 

갑자기 말이 안 나오는 것처럼 말을 못 하더라고요 “


“식사 중이셨어요? 

혹시 어떤 대화 중이셨는지 기억나세요?”


“그냥 평상시랑 똑같았지, 뭐 별다를 게 없었어.”


“그게… 아버님 입장에서는 

일상적인 대화이실 수도 있긴 한데요… 

혹시 아드님 입장에서 

부담을 느낄 만한 주제는 없었을까요?”


“아…“


뭔가 짚이시는 게 있나 보다. 

대체로 이렇게 순간적인 

마비나 발작 등의 반응을 보이시는 분들은 

마음이 섬세하고 여린 

로맨티스트 성향으로 

WPI 검사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느끼는 감정에 

강하게 사로잡히는 특성이 있다. 


자기 마음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고 

감정이 자기 안에서 맴도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의 어려움보다 

훨씬 두렵게 받아들이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내가 인테리어를 하는데, 

그걸 좀 맡아서 해보라고 내가 불렀는데, 

그게 그 애한테는 좀 부담이 됐을 수는 있겠네…”


“네.. 아드님은 아마, 

싫다 소리도 잘 못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꾹꾹 참고, 

기대대로 해내려 하고, 

착하고, 예민하고 그런 분일 텐데…“


“맞아요, 얘가 너무 착해. 

어머 어떻게 알았지. 

너무너무 착하고, 

진짜 하라는 건 다 하고.. ”


아들의 고운 심성에 

평소 감동하고 계시던 어머님께서 바로 거드셨다.


“요즘 아드님 생활은 좀 어떠셨어요, 

유난히 좀 피곤해하거나 그러진 않던가요?”


“말도 못 해, 

회사도 너무 힘들어서 이직한다고 한동안 그러고… 

또 손주가 이제 5개월이라 힘들지, 힘들어…”


“아이고… 

회사에서도 뭔가 지금 편안하지 않아서… 

사람 때문인지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옮기려던 중이셨고, 

때려치우고 싶은데 가장이 됐고… 

애도 어리니까 속 시원히 그러지도 못하고… 

또 애가 어리면 잠도 잘 못 주무실 테고… 

30대 초반이 힘들어요, 힘들어. 

일도 완전히 자리 잡기 전이고 

가정도 새로 꾸리고… 

그런데 그런 와중에 

부모님 말씀을 또 잘 듣고 싶으니까. 

그런데 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말하면서 살짝 아버님 눈치를 보게 된다. 

이 상황을 같이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이었지, 

아버님을 책망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함께 밥을 먹다가 

이상 증상으로 눈앞에서 쓰러져버린, 

다 키운 아들을 업고 

병원을 와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은 또 오죽 두렵고 걱정되실까.


“그런데 아마 잘 모르셨을 게 당연해요. 

표현을 잘 안 하셨을 거라서…”


“맞아요. 말을 잘 안 해, 애가.”


아마도 싫은 내색을 했거나 

적극적으로 저항을 표현했다면, 

아버님은 기억하셨을 테고, 

'갑자기'라고 느껴질 

이런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섬세하고 수용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순종적인 면이 있을 

아들의 이미지를 그려본다. 


아버지의 제안이 

너무나 부담스럽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거절하거나 저항하기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 두 마음이 격렬하게 대립하다가 

모든 것을 차단하고 

사라져버리고 싶었을지 모른다.


이 상황을 ‘평상시와 같았다’라든가 

‘갑자기’라고 표현하시는 아버님이 

평소에 이런 아들의 심정을 

세밀하게 헤아려 주기는 어려우셨을 것 같았다. 

그 때문에 두 분의 마음이 

서로 잘 통하는 관계는 아니었을 거라 짐작해 본다. 


얌전한 태도로 듣고 있었을 아들에게, 

어쩌면 긴장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아버지였을 수도 있다. 


이것은 아버님이 반듯하고 훌륭하신 분이라거나, 

다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좋은 사람일 수 있다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제각각 평행 우주를 돌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같은 반찬을 두고 함께 밥을 먹고, 

말을 주고받고 있지만, 

서로가 경험하는 내면의 풍경은 완전히 다르다. 




흔히 팔다리에 이상이 생기는 것과 비교해서 

머리를 다치는 것에 대해서 

더 큰 두려움을 갖는다. 


뇌가 우리의 정신과 신체를 

모두 관장하는 기관이라는 인식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머리에 손상이 생기고 

지능에 문제가 생겨서 

사고력과 판단력이 저하된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동등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공포감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기관인 

뇌를 작용하게 하는 것은 어떤 힘일까.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들은 

근육이나 혈관과 마찬가지로 

물질적 범주에 속할 뿐이다. 


우리의 맨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 

현상이라는 것에는 다르지 않다. 


뇌의 문제, 신체의 문제로 이해를 하게 되면, 

뇌파를 측정하고, CT를 찍고, 

각종 첨단 의학 장비들에 몸을 맡겨 

평균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났는지를 확인하면, 

그 자체로 우리는 

어떤 답을 얻은 것과 같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검사를 한다고 해도, 

이렇다 할 것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며 

성대 기관과 팔 근육이라는 

신체의 문제였던 것이, 

그대로 뇌라는 또 다른 신체의 문제로 

치환될 뿐이다. 

물리적 손상 가능성만 염두에 두는 것이다.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견딜 때, 

믿고 있던 사실과 다른 현상을 목격해야 할 때, 

수용되지 못한 마음의 충격이 

한순간 몸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말을 잇지 못하기도 하고, 

먹은 것이 얹히기도 하고, 

귀에서 소리가 나기도 하며, 

순간 눈앞의 세상이 핑 돌아 쓰러지기도 한다.


이것이 꼭 신체의 손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너무나 가슴이 아플 때면 눈물을 쏟아지고, 

깜짝 놀랐을 때에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거나, 

너무 흐뭇해서 웃음이 절로 나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단지, 마음이 눈에 보이지 않기에, 

우리는 결국 

신체로 표현되는 것을 통해서야 

겨우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이 드러나기까지 

그 사람의 마음 안에서 

어떤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에, 

타인의 반응은 

때때로 ‘갑자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의 평소 믿음, 

그동안의 패턴을 파악하기 전에는 

더더욱 그렇다. 


서로를 곁에 가깝게 두고, 

자주 얼굴을 보는 관계로 지내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어쨌든, 이 약은 뭐냐 하면요…”


서로의 앞에 놓쳐진 종이 한 장을 두고서, 

나는 조금 머슥해진다. 


그래도 아는 만큼, 

그리고 필요해 보이는 만큼 

전달을 하기 시작했다. 


이 약들은 

신체로 표현된 증상이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보완책이 될 수는 있지만, 

아들이 겪는 마음속 곤경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뇌는 아무 문제없어요. 

뇌의 질병, 

정신병 같은 문제가 아니에요. 

당분간 뭐 하라고 하지 마시고, 

부담 느끼지 않게, 

조금 편안하게 해 주세요.”


어머님의 눈에 살짝 눈물이 고인다.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어지신 모양이다. 




두 개의 다른 마음이 

한 식탁에서 식사했듯이, 

이 상황에도 

두 개의 다른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하나는, 

뇌에 갑작스러운 이상이 생긴 것 같은 아들이 

부모님 댁에서 식사하다가 

갑자기 말을 못 하게 되고 

몸에 힘이 빠지며 의식을 잃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민하고 여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 

급격한 삶의 변화와 

기대되는 역할 속에서 

부담을 느끼며 힘겨워하다가 

잠시 자기 말과 행동을 멈추게 된 이야기.




약국을 나가시는 길에 

다시 한번 뒤돌아보며 물으신다. 


“그런데 정말 뇌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겠죠...?”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이 

약이 아니라 

확신이라면 좋으련만, 

아직은 여기까지다. 


이 이야기를 읽는 당신은 

둘 중에 어떤 이야기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가. 

어떤 이야기를 믿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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