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엔터테인먼트로 VR 대중화를 조준하다
지난 주 페이스북의 개발자 행사 F8 2018에서 쏟아진 다양한 소식 가운데 가상 현실이 일부를 차지했다. 물론 그 일부 중에서도 가상 많은 관심을 끈 것은 뭐니뭐니해도 199달러 짜리 보급형 가상 현실 헤드셋인 오큘러스 고(Oculus Go)였지만, 대중화를 위한 하드웨어를 포함해 가상 현실에 대한 방향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페이스북의 움직임은 매우 흥미롭다.
그런데 대중화를 겨냥한 오큘러스 고의 의미와 가격에 상당히 가려져 있기는 해도 이번 F8 2018에서 페이스북 가상 현실의 이야기는 끝이 아니다. 무엇보다 페이스북의 사고가 듬뿍 담긴 가상 현실의 방향성에 대해선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즉, 페이스북의 사회적 관계를 가상 현실에 좀더 쉽게 적용하고 함께 즐기도록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인수한 순간부터 이 같은 의도를 숨긴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본격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대중적 VR 플랫폼을 설명한 것은 이번 F8이 처음일 것이다.
오큘러스 고를 소개한 이후 곧바로 오큘러스 고를 위한 오큘러스 TV(Oculus TV), 오큘러스 룸(Oculus Room), 오큘러스 베뉴(Oculus Venue) 등 3개의 플랫폼이 발표됐다. 종전 앱을 업그레이드한 오큘러스 룸을 빼면 두 가지는 새롭게 추가됐다. 물론 이 플랫폼은 모두 앱 형태로 오큘러스 고와 기어 VR 같은 오큘러스 모바일 플랫폼에서 실행되지만, 실제로 앱보다 다른 서비스를 위한 플랫폼에 기반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오큘러스 TV는 마치 거실 앞에서 TV를 보는 것처럼 가상 현실 공간에서 TV를 보는 플랫폼이다. 이용자는 가상 공간에 최대 180인치 크기의 화면에서 오큘러스 TV나 영화 콘텐츠를 띄울 수 있고 컨트롤러를 마치 TV 리모컨처럼 다루며 채널을 바꿀 수도 있다. 물론 오큘러스가 직접 TV 서비스를 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OTT 플랫폼의 영상을 띄워서 볼 수 있는데, ESPN과 넷플릭스, 훌루, 쇼타임, 레드불 TV, 플루토가 오큘러스 TV에 참여하기로 했다. 또한 여름부터 친구를 초대해 함께 TV를 시청하는 기능도 추가한다.
오큘러스 TV가 동영상을 함께 보는 시청 공간이라면 오큘러스 룸은 놀이 공간이다. 물론 오큘러스 룸에서도 페이스북의 인기 동영상을 함께 볼 수 있지만, 친구들과 익숙한 보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이 보드 게임도 페이스북보다 제휴를 맺은 하스브로의 보글, 모노폴리, 트리비알 퍼수트 같은 잘 알려진 보드 게임들로 채워진다.
오큘러스 베뉴는 생중계 서비스다. 실제 콘서트 장이나 스포츠가 열리는 경기장에 있는 것처럼 가상 공간 안에서 중계되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오큘러스 베뉴에서는 나홀로 감상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응원할 수 있다. 오큘러스 베뉴도 기존 중계 서비스를 결합하는 플랫폼이다. AEG, 라이언스게이트, MLB닷컴, NBA, 넥스트VR 등 이미 VR 중계 서비스를 하거나 준비 중인 곳이 참여한다.
오큘러스 고와 함께 내놓은 세 가지 서비스는 사실 하나로 연결되는 서비스는 아니다. 각각 따로 실행해야 한다. 하지만 세 플랫폼의 공통점은 있다. 모두 이용자 혼자 즐기는 용도로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모든 플랫폼이 이용자를 포함한 다른 사람과 함께 즐기도록 설계되어 있다. 일을 위한 목적을 위해 만나는 게 아니라 가볍게 공간에서 만나서 즐기는 소셜 엔터테인먼트를 강화한 것이다.
사실 오큘러스의 세 플랫폼이 아니라도 알트스페이스VR이나 레크 룸(Rec Room)처럼 소셜 엔터테인먼트를 목적으로 나온 서비스들도 제법 있다. 심지어 <스타트렉VR : 브릿지 크루>처럼 여러 사람이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게임도 있으므로 페이스북만 특별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앞서 나온 소셜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나 콘텐츠는 이미 맺어진 관계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페이스북처럼 이미 관계가 형성된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않고 그 공간에서 무작위로 만나 즐기므로 언어나 콘텐츠의 숙련도에 따라 적응력에 상당한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이에 비하면 오큘러스의 세 플랫폼은 이미 갖춰진 페이스북의 관계가 쉽게 적용된다. 이미 오큘러스 리프트나 기어 VR을 경험했던 이들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만 연동하면 친구 중에 누가 접속해 있는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새로운 오큘러스 플랫폼들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누군가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인 셈이다.
이러한 관계망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VR 플랫폼에 콘텐츠 사업자가 참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여러 사람이 함께 콘텐츠를 공유하는 측면에서 기존 모바일의 콘텐츠 전략과 달라질 부분이 하나 있다. 보통 모바일에서 홀로 이용하는 것을 감안했던 서비스들은 이제 공유를 고려한 서비스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유를 통해 재미를 경험하는 소셜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에 초대한 친구들에게 콘텐츠를 볼 수 없어 소외되면 VR 플랫폼에 대해 흥미를 잃을 위험성도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고민하고 내놓은 해결책은 이번 F8의 키노트 만으로는 찾아보긴 어려웠다. 어쩌면 가상 현실에서 개인의 서비스 가입 여부마다 시청 여부를 가를 수는 있겠지만, 가상 공간에 있는 집에 놀러온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요금을 낸 OTT 콘텐츠에도 이같은 규칙을 적용할 때 어떤 반응과 결과로 나타날 지 무척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이번 F8 2018에서 이러한 관계망에 기반한 소셜 엔터테인먼트로 페이스북이 추구하는 가상 현실의 방향성을 좀더 명확히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튿날 진행했던 키노트에서 차세대 PC VR 헤드셋의 프로토타입과 기술을 공개하며 지속적으로 가상 현실 부문의 진화를 이끌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지만, 적어도 페이스북의 관계망을 PC나 모바일에 가둬두지 않고 새로운 관점으로 확장하려는 꾸준한 시도와 적용 속도만큼은 그야말로 경이롭다. 새로운 시도가 성공할지 실패할지 단정지을 수는 없어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VR 플랫폼 경쟁자 대열에서 페이스북은 너무 빠르게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