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행 기어 S의 자리 채우는 갤럭시 워치의 암시
삼성의 차기 스마트워치에 기어 S4는 더 이상 없다. 확실히 갤럭시 워치(Galaxy Watch)다. 상표명을 등록했을 당시 두 가지 모두 존재할 지 안할 지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앞으로 존재하는 것은 갤럭시 워치 뿐, 기어 S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삼성 스마트워치의 대명사였던 기어 S는 이제 되살아 날 수 없는 관속에 들어간 셈. 삼성은 갤럭시 워치를 내놓고 기어 S 시리즈의 관뚜껑을 닫아 버릴 채비를 거의 마친 상황이다.
기어 S는 삼성 스마트워치의 대명사였지만, 알고 보면 복잡했던 삼성 웨어러블 브랜드의잘못된 희생양이 됐다. 스마트워치를 위해 기어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하고도 삼성의 웨어러블 브랜드로 확장한 탓에 스마트워치의 이미지를 굳히지 못한 탓이다. 어쩌면 기어 S를 땅속 깊이 묻고 갤럭시 워치라는 새로운 이름을 쓰는 편이 스마트워치의 속성을 살리는 데 훨씬 도움이 될 듯하다.
그런데 갤럭시 워치로 이름을 바꾸는 것은 단순히 이름만 바뀌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삼성 모바일과 웨어러블 브랜드의 전략적 변화의 시작일 수도 있어서다. 특히 '갤럭시'가 갖는 의미를 알고 있는 이들은 빠른 눈치로 '왜 갤럭시를 썼는가'에 의문을 표한다. 갤럭시는 삼성의 안드로이드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지금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갤럭시 워치의 운영체제는 여전히 타이젠이다. 구글의 웨어 OS는 아니다. 많은 이들은 삼성이 갤럭시 워치라는 새로운 스마트워치의 이름을 등록하는 순간 운영체제까지 바꾸는 것이 아니냐고 추측했지만, 일단 이번 발표에는 타이젠 운영체제가 들어간다.
(참고로 몇 가지 제원을 언급하자면 1.3인치 디스플레이에 46mm 모델 한 가지와 1.2인치 디스플레이의 42mm 모델 두 가지를 출시할 것이다. 또한 모든 모델의 시계줄 폭은 22mm이고, 시계 바닥면에 심박 센서를 포함한 4개 이상의 센서가 있다. 기본 디자인은 기어 S3와 비슷하나 화면 주위에 있는 다이얼의 톱니가 기어 S3보다 훨씬 많고, 다이얼 자체도 넓다. 갤럭시 워치는 갤럭시 노트9과 함께 발표될 예정이다)
물론 운영체제를 바꿀 수도 있다.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바꿀 수 없는 이유가 더 크다. 웨어 OS로 바꾼다는 것은 그냥 운영체제 변경이 아니라 삼성 스마트워치 생태계의 전환을 의미한다. 즉, 지금까지 타이젠 중심으로 구축한 생태계를 포기한다는 의미다. 삼성이 유일하게 구글이나 다른 플랫폼에 종속하지 않는 것이 스마트워치를 비롯한 타이젠 제품 생태계였다. 웨어 OS로 간다면 삼성은 종속성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어떤 이유라도 웨어 OS로 갈아타는 결단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문제는 갤럭시 워치라는 이름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 점이다. '이게 뭐 어쨌다고?'라고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알다시피 갤럭시는 삼성의 안드로이드 제품 브랜드다. 삼성은 안드로이드 이외의 제품에 갤럭시를 쓰지 않았다. 잠깐 선보였던 타이젠이나 윈도폰도 갤럭시를 피했다. 심지어 기어 시리즈의 첫 조상인 갤럭시 기어 역시 첫 발표 때 안드로이드 젤리빈을 탑재하고 나왔으나 타이젠으로 운영체제를 전환한 순간 갤럭시를 떼어냈다. 때문에 이러한 브랜드 성격을 알고 있는 이들은 갤럭시 워치라는 이름이 등록된 순간 운영체제의 변경까지 예상했던 것이다.
이처럼 갤럭시라는 브랜드에 대한 혼선을 없애기 위해 애쓴 삼성이었기에 운영체제 변경 없이 갤럭시 워치를 등록한 것은 이제 그런 노력을 내려 놓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 흥미롭다. 타이젠 OS를 고수한 채 나오는 갤럭시 워치는 갤럭시를 더 이상 구글 계열만을 위한 브랜드로 삼지 않을 것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어서다.
이 말을 달리 풀어보면 지금까지 삼성은 안드로이드만을 위한 브랜드를 유지했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안드로이드 생태계의 중심에 있던 구글을 의식하고 초창기 안드로이드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을 것이고 이 전략은 어느 정도 먹혀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다고 보긴 힘들다. 많은 시간을 보낸 지금 안드로이드 생태계에 삼성이 아니어도 안드로이드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많아진 때문이다.
이 상황은 자연스럽게 '갤럭시 브랜드를 안드로이드 생태계에서 유지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삼성 입장에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쉽게 찾았을 것이다. '그럴 이유가 없다'고 말이다.
때문에 갤럭시 워치라는 이름은 예사롭지 않다. 운영체제에 상관 없이 삼성의 모든 모바일 및 웨어러블 제품을 갤럭시라는 하나의 브랜드로 통합하겠다는 의지라면 앞으로 모든 제품에 대한 브랜드 전략을 바꾼다는 이야기다. 특히 웨어러블에 특화된 기어 브랜드의 생존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야기라서다. 삼성의 웨어러블 사업의 가장 큰 축이 되는 스마트워치였던 기어 S 시리즈까지 이름을 바꾼 마당에 다른 제품군들 역시 변화는 피할 길이 없을 듯하다.
지금까지 기어 S를 제외하고 기어 브랜드로 나온 제품들은 기어 VR, 기어 핏, 기어 아이콘 X 등이다. 일단 기어 VR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최근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삼성의 기어 VR 팀은 더 이상 스마트폰을 꽂는 기어 VR을 개발하지 않고 있으며 향후 계획도 없는 상황이어서 기어 S 시리즈와 함께 관속에 묻힐 것으로 보인다. 기어 핏 시리즈와 기어 아이콘 X 시리즈는 계속 나올 듯하지만, 그렇다고 이 제품들이 기어라는 이름을 계속 쓸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삼성 내부적으로 이미 출시된 제품을 제외하고 '기어'라는 이름을 되도록 쓰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이 제품들이 계속 '기어'라는 이름으로 유지될 수 있을 지 불투명한 것이다.
실제로 삼성이 기어 전체를 없앨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모바일과 웨어러블 제품을 갤럭시로 통합하는 첫 실행이 갤럭시 워치라면 앞으로 삼성 모바일 브랜드는 단순해지는 한편, 구글에 대한 저항은 상대적으로 강해질 수도 있다. 물론 스마트폰은 여전히 안드로이드를 채택할 것이다. 단지 갤럭시 워치를 비롯해 다른 웨어러블 제품 모두 웨어 OS를 채택할 가능성이 낮아지는 만큼 갤럭시는 더 이상 구글과 안드로이드를 고려한 브랜드가 아니라 철저하게 삼성 중심적 브랜드로 이미지를 조정하는 것이라 그렇다. 어쩌면 구글과 안드로이드 생태계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할 만큼 삼성의 다급함도 갤럭시 워치라는 이름에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