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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폭풍속 부푼돛 Feb 08. 2023

코스모스, 칼세이건

나로 떠나는 대항해, Epic Voyage

나의 꿈은 천문학자였다. 아마도 중학년 시절이었을 것이다. 문제집을 사러 서점에 들르면 나의 몸은 어느새 잡지 코너로 방향을 향했다. 서가에 꽂혀있는 수많은 잡지들 중 붉은 계열 커버의 '뉴턴'지를 선택했다. '뉴턴'지의 커버는 비닐광택으로 반질반질한 게 손으로 만지작 거리면 꽤나 기분이 좋았다. 또한 속지는 오색찬란한 그래픽과 함께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나 풀컬러로 프린트된 속지의 까슬까슬한 촉감과 그 특유의 종이 냄새는 30년이 지난 지금잊히지가 않는다.  속지에 그려진 성운, 행성, 은하들의 모습을 보며 이마에 여드름 꽃이 만발한 사춘기 소년은 그렇게 우주의 꿈을 그렸. 하지만 어느 날 내 머릿속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우주의 환상은 유리창 깨지듯 와장창 깨졌다.

"천문학자?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 하네. 천문학과 나와서 뭐 하려고 그래? 그런데 나오면 취업도 안되고 밥벌이도 못하고 평생 후회한다."

친척 어른 중 한 분의 말씀은 나의 마음에 비수처럼 꽂혔다. 남의 소리 신경 안 쓰고 마이웨이를 외칠만한 다부짐이 부족한 나는 그대로 조금은 허망하게 천문학자의 꿈을 접었다. 우주의 시작을 곰곰이 생각하던 우유부단한 20세기 소년의 철학은 꿈을 포기하면서 같이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30년 뒤 여전히 우유부단한 21세기 아재는 천문학자라는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코스모스라는 책을 통해 나만의 철학을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뼛속까지 과학자인 칼세이건에게도 감사한다.

그런데 잠시, 이 책은 과학책아니었던가? 웬 철학? 난 왜 과학책을 통해 철학이 생각이 난 것일까? 코스모스를 다 읽고 한 권의 책을 소환했다. 생각을 더듬으며 책꽂이에서 한 권의 책을 집게와 엄지로 꾹 잡았다.


소피의 세계


소피의 세계는 철학 입문서로 유명한 철학책이. 소피의 세계 서두에는 두 가지의 질문과 함께 책이 시작된다. 그중 하나는


너는 누구니?


철학 대한 책을 한 번쯤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낯이 익은 질문이다. 내가 무엇인지에 대한 되돌아봄은 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기본이 되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이 책은 철학책이니까 당연하지. 첫 번째 질문에 이은 두 번째 질문.


세계는 어디에서 생겨났지?

세계가 어디에서 생겨났냐고? 이게 뭔 소리람? 철학책이랑 무슨 상관이래? 내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마당에 세계가 어디서 생겨났냐니? 책을 읽을 당시 그냥 무심코 넘겨버렸던 거 같다. 두 번째 질문이 이렇게 기억의 저편에서 가물가물 해질 무렵, 코스모스라는 책이 두 번째 질문마저 소환을  것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코스모스는 과연 '과학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과학이 핵심주제어 임에는 틀림없다.  전체를 아우르는 저자의 관점도 매우 '우주적'이다.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과학의 역사나 우주와 관련한 다양한 정보가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나 별들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지구라는 행성의 존재와 그곳에서 탄생하는 생명체들. 그야말로 과학 종합 선물 세트이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이런 우주적 관점은 결국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대장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주탐험이야말로 인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위대한 장정인 것이다. p.631



어느 날 아침, 잠에서 덜 깬 둘째 딸이 뜬금없이 나에게 물어봤다.

"아빠, 엄마의 엄마의...(무한대) 엄마는 누구야?"

"글쎄? 엄마의 엄마(무한대)는 조상님이겠지. 그 조상님들의 엄마의 엄마는 결국 아담과 하와가 아닐까?"

"그러면 아담과 하와는 어떻게 생겨났어?"

"하느님이 만든 거 아닐까?"

"그러면 하느님은 엄마가 없어? 어떻게 생겨났을까?"

딸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종교를 가진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코스모스를 완독한 나에게는 전형적인 현문우답이 아닐 수 없었. 딸에게는 흔히 알고 있는 종교적인 내용으로 대답을 했다.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어린 딸이 충분히 이해하기 쉬운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코스모스에 나오는 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내용의 답변이 필요한 듯했다. 뭐 그렇다고 마지막 질문에는 결국 답변을 못했을 거지만...

9살의 아이도 나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나의 역사, 서사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이다. 이런 호기심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철학의 첫 번째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호기심의 첫 번째 발걸음은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우주가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통해 ''라는 존재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이 한 인간의 철학의 첫 번째 발걸음이자 한 인류의 첫 번째 우주 대장정의 첫 번째 발걸음이다.  




코스모스에서 우주의 시작은 빅뱅이라는 대폭발로 시작되었다고 얘기한다. 우주의 시작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과학은 여기까지가 한계이다. 빅뱅 이전의 시간과 장소에 대해서는 해명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빅뱅 이전 상태는 어떠한 상태인가?'

이 질문은 이 책을 지은 저자나,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들이나, 이 지구에 사는  모두가 풀고 싶어 하는 숙제일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관점을 넓혀서 이해해 보려 한들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저자도 빅뱅 이전의 상태에 대해 여러 가지 추정들을 제시한다. 재미있는 점은 뼛속까지 과학자인 저자는 신화와 종교를 예를 들며 빅뱅이전의 상태를 상상만 할 뿐이라는 점이다. 결국 인류와 과학의 유한성을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대목에서 과학을 통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인류의 오만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그저 우주의 한낱 먼지로 변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인간이라는 생명은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신화나 종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종교 중 힌두교에 대해서는 빼놓을 수가 없다. 코스모스에서 유일하게 언급하는 종교가 힌두교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주의 시작에 대한 궁금증을 힌두교 경전 논리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이런저런 책에서 힌두교가 계속 눈에 뜨이니 반갑지 그지없다. 얼마 <바가바드 기타>읽었다). 빅뱅 우주 팽창의 원인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힌두교는 여기에 '우주 수축'을 덧붙인다. 대폭발은 우주 수축의 결과이기도 하다. 빅뱅이라는 대폭발을 점으로 우주의 팽창과 수축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점이 힌두교의 핵심이다. 이 진동의 단위가 어마어마하다. 힌두교 식 하루가 86억 4000만 년이라 하니 우주적 관점을 능가하는 힌두교적 관점의 플렉스라 할만하다. 이것이 혹시라도 사실이라면 지금 우리 우주는 팽창 중이지만 언젠가 수축하는 그 시점이 온다면 그 순간은 과연 어떤 순간일까? 저자도 우주가 수축이 된다면 우주가 팽창하는  현시대에서 적용되는 모든 과학적 이론은 아무 쓸모가 없어진다고 얘기한다. 우주의 수축이 시작되는 순간은 빅뱅을 능가하는 에너지의 변환이 요구되는 대격변 또는 대혼란의 시점이 되지 않을까?  마음대로 '빅리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상상해 보니 참으로 흥미롭다.




저자는 우주의 시작과 끝을 얘기하면서 우주의 구조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기발한 제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계층구조'이다. 저명한 천문학자가 한 권의 책을 통해 아주 자신 있게 내놓은 의견이라 이론적 배경이 있는지는 정확히 수는 없지만 매우 흥미로운 이론이다. 내가 이해한 계층구조란 우주가 계층적으로 존재한다는 개념이다. 이 논리로 따져보면 결국은 우주는 닫힌 구조이다. 이런 우주는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위인 소립자에도 존재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당연히 차원이 다른 세계이다. 소립자 세계의 우주는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크기의 단위는 아니다. 그저 소립자 세계의 우주가 존재하고 우리 우주와 똑같은 구조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도 자각하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 인류가 우주의 끝을 찾기 위해 노력하듯 그 누군가도 그들의 우주에 대해 궁금해하고 대장정을 시작했을 수 있다. 지금의 우리 인류처럼 말이다. 바꿔 말하면 지금 우리 인류가 사는 세계도 어떤 물질의 소립자안의 세계일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인류가 거주하는 소립자는 '누군가'의 세계에서 인지할 수 없을 정도의 미세한 물질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인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인류가 결국 우주의 끝을 찾는다면 소립자의 끝을 찾는 셈이고 그 너머마저 정복한다면 그때는 계층의 차원을 넘어 그 누군가와 조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소피의 세계>에서 주인공 소피와 힐데가 거울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는 것 처럼 말이다. 


<소피의 세계>는 주인공 녀 소피와 또 다른 계층의 소녀 힐데와의 비현실적인 환경을 설정하여 철학에 대해 논하고 있다. 소피는 시나브로 자신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리고 그 소설을 읽는 힐데와 조우하는 장면은 마치 우주의 끝이 소립자의 표면임을 자각하는 인류가 소립자를 쳐다보고 있는 누군가와 조우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책 속에 갇힌 소설 속의 존재, 소립자에 갇힌 미물의 존재라는 자각은 코스모스의 마지막장에 나오는 한 문장을 떠오르게 한다.


인류는 우주 한구석에 박힌 미물이었으나 이제 스스로를 인식할 줄 아는 존재로 이만큼 성장했다.
p.682


자각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우주는 어떻시작했을까?'라는 반환점을 지난다. 그리고 우리 인류가 우주 어느 곳에 있고 대하고도 광활한 우주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게 해주는 대장정의 과정이다.


인류의 대항해(Epic Voyage)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p.325

인류는 우주탐험이란 대항해를 시작하였다. 이제는 나라는 우주에서 대항해를 시작할 시간이다. 우주만큼 거대하고도 광활한 세계에서 그 누군가와 조우하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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