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1, 30명을 향하여~
작년에는 그랬다. 아이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나 딴에는 잘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뭔가를 빼앗기고 있는 느낌이 많았다.
담임의 역할이 그렇다.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다르다.
다행히도 우리 반에는 2년 연속 여자아이가 2명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아이들 속에는 많은 변수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해에는 지난해와 분명히 다르다. 지난해의 일을 말해보고 싶다.
일단, 신입생으로 들어온 아이들에게 나는 절대적인 가이드임에 분명하다.
학급에 배치되어 온 아이들은 어리둥절할 것임이 분명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식당이 어디인지. 교과목 선생님이 이름이 뭔지. 어떤 분이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 등등
아이들은 내 기분을 살핀다.
내가 인상 쓰는 일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더욱 조심한다.
중학교가 더 이상 아니라는 사실.
겁을 먹은 건지 아님 원래 내성적인 성격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아이들.
중학교에서 보았을 법한 활발한 놀이는 더 이상 안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 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지난해만 해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메르스가 한참 훑고 지나가서 임시휴업을 했다.
그런데 우리 반 애가 나오면 안 되는데 기특한 마음에 학교에 나왔다.
공부한다는 명분을 내세워서~!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공부는 무슨~

그 아이는 그렇게 더운 날 교실에서 공부하다가 농구장으로 향해서 농구를 했다.
그러다가 농구공으로 근처에 있던 어떤 차 앞 유리를 깨뜨렸다.
그리고는 달아났다.
휴업이 끝난 후 그 차 주인인 우리 학교 선생님이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확인을 한 결과 그 학생으로 판명 났다.

이렇듯, 아이들은 언제 무엇을 할지 모른다.
하지만, 기특한 일들도 얼마든지 있다.
아이들이 좋은 습관을 가지도록 분위기를 잡아주는 일들이다.
그 당시에 썼던 글을 또 싣는다.
정직함 가르치기(1)
교사의 본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정직성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난해에 맡은 학생들을 이끌고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아이는 정직하지 않다. 어떤 아이는 지속적인 관심을 필요로 한다. 어떤 아이는 너무 외로워한다. 물론 60명도 안 되는 아이들을 두 개 반으로 나눈 터라 아무리 섞는다고 해도 거기서 거기다. 성적순으로 반이 구성되기는 하지만 계속 수업을 해왔고 관찰을 해왔다.
새 학기 들어서 있었던 일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학생들의 용의 복장에 변화가 심했다. 그래도 기준은 교복이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동복상의(‘마이’라고 불린다)가 어른들 정장 외투처럼 생겨서 그 위에 두터운 오리털 패딩을 덧입으면 자세도 어색해지고 기분이 불편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동복 상의를 소중히 여기려는 자세보다는 그보다 더 비싼 오리털 패딩에 몸을 맡긴다. 작년부터 계속 강조해와서 그런지 대부분의 우리 반 아이들은 교칙에 맞게 입고 다닌다. 하지만, 한 아이가 계속 말썽을 부린다. 동복 상의는 가방에 넣고 다른 옷을 대신 걸치고 다니다. 수업시간이든 언제든 상관없이 그렇게 행동한다. 그래서 그 옷을 압수했다.
문제는 그 학생이 교무실에 놓았던 옷을 내 허락도 없이 가져가서 입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보았을 때다. 그것도 두 번 연속으로 그렇게 했다. 정말 실망감을 느꼈지만 다시 타이르려고 부드럽게 설명했다. 정직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이번에는 그 옷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보관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느꼈다. 그만큼 ‘정직’이 무엇인지 모르는 시대가 되어버렸고 ‘정직하게 행동하기’의 의미를 모르는 아이들이 요즘 아이들이다. 자신의 이익에 가까우면 정직해지고 자신이 불이익을 받을 상황이면 어떻게 해서라도 거짓말로 넘어가려고 한다.
최근에 학생인권이다 해서 학생들에게 너무 많은 자유를 주어왔다. 이 점이 우리 교육의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난 생각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단점과 장점을 점검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을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학생들에게 주어진 어떤 것도 정직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점검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학교 환경은 각종 ‘법’과 ‘규정’들로 분열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절한 예는 아닌 것 같지만, 미국 같은 선진국은 도로에 있는 경찰이 현장 재판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고 심지어는 총살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현장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우리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가 교육의 사명을 가지고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도록 그냥 지켜봐 줄 수는 없는 것인가. 정치인들과 기득권층들의 전유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생님들이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마련해 놓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 ‘정직함’을 가르칠 수 없다.
정직함 가르치기(2)
교사는 학생들에게 사표(師表)가 되어야 한다. 만약에 교사가 그런 상황을 보고 외면한다면 그것을 지켜본 학생은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게 되고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먼저 번에는 교복 상의를 입지 않았던 학생에 대해서 말하였고 이번에는 핸드폰을 숨긴 학생들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아이를 예뻐하면 수염을 잡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이제 만으로 16~18 정도 된다. 그 아이들의 행동을 보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 그 학생들의 손에는 대부분 핸드폰(스마트폰)이 들려있다. 아마 한 학급에서 핸드폰이 없는 학생은 2~3명뿐이다. 우리 반도 그렇다.
새 학기 첫날에 우리 반 아이들에게 말했다. 핸드폰을 아침마다 걷겠고 종례시간에 나눠주겠노라고. 마침 뉴스에도 학생들의 건강에 핸드폰 사용이 치명적인 악영향이 있다는 것과 남학생들의 신체에는 더 안 좋다는 소식이 있었다. 아이들이 동의했고 핸드폰 수거를 실시했다. 작년에도 했던 터라 학생들에게는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수업시간에 더욱 집중하자는 것과 핸드폰으로 인해 생기는 sns 상의 비행을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며칠 후 계단에서 우리 반 학생이 핸드폰을 친구와 사용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래서 물어보았더니 핸드폰을 제출하지 않았고 그런 아이들이 우리 반에 많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핸드폰 수거용 가방을 확인해 보았더니 그 말이 사실인 듯했다. 학기초라서 정신이 없었기에 매일 확인을 못했지만 담당 학생이 매일 관리를 하기 때문에 분실 위험은 없다. 물론, 담임선생님이 매일 꼼꼼히 확인을 한다고 해서 학생들의 마음이 정직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특별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핸드폰을 제출하지 않은 학생 중에 한 명을 점심시간에 우연히 보게 되었고 그 학생에게 핸드폰 미제출 학생에게서 핸드폰을 받아올 것을 시켰다. 일종의 미션을 주는 방법이었다. 그런 후 종례시간에 모두 있는 자리에서 미제출 학생의 손을 들게 했다. 일부 학생들은 핸드폰 제출이 번거로워서 집에서 안 가져오는 학생들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오늘 제출하지 않은 학생들은 다음부터는 제출하기로 모두 앞에서 약속했다.
우리 아이들은 착하다. 무엇이든지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면 말귀를 알아듣는다. 왜냐하면 무엇이든 강제적으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아이들은 정직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행복도 보장되어야 하며 내가 정직하게 하면 다른 사람도 정직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일은 지나간 일이니까 잊어버리자고.
학생의 인권을 위해서 어떻게 하자는 말은 많다. 하지만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서 정직성을 불어넣자는 말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이 교육계의 위기다. 교육이 정치와 경제의 논리로 휘말려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우리 아이들은 소중한 청소년 시기에 인생을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회주의자가 되도록 하는 세상의 풍파에 흔들리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