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살갗 속으로 파고들 때 그 아릿한 통증. 구슬져 맺힌 핏방울을 닦아내던 손길. 모든 첫 감각이 그렇듯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다. 나를 작업한 남자는 체격이 건장했고 중저음에 콧수염이 있었다. 쓸데없는 사담을 나누려 하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좀 긴장되나요? 마음 편히 생각해요. 금방 끝날 테니까. 수염 있는 과묵한 남자는 뭘 해도 잘한다는 미신적인 믿음이 있어서 그를 처음 보고 나는 내심 안도했다. 벽부터 베드까지 온통 검던 작업실. 공기에는 수술실에서 날 법한 알코올과 라텍스 냄새가 미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얇은 라텍스 글로브는 남자의 손 모양과 부피를 뱀처럼 휘감으며 남김없이 달라붙었다. 속옷, 풀어도 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는 돌이킬 수 없다.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럼 시작할게요. 편하게 있어요. 글로브 너머로 느껴지는 손의 무게가 날개뼈 근처를 지그시 눌렀다. 손길에는 반드시 그 주인의 정서가 깃드는데 그는 손가락 끝을 먼저 살며시 가져다 대고는 크레셴도로 힘을 가했다. 자신이 위압적으로 느껴질까 신경 쓰는 것 같았다. 할로겐 라이트 아래에서 나는 그에게 모든 걸 맡긴 채 눈을 감았다.
작업이 끝났다. 그의 손과 내 몸 사이에 흐르던 맹렬한 전류가 끊기자 둘 다 동시에 깊은숨을 내쉬었다. 왼쪽 날개뼈와 늑골 사이, 단 하나의 선만으로 범고래 한 마리가 새겨졌다. 눈부신 포물선을 그리며 수평선 너머로 뛰어오르던 영화 속 장면 하나로 어릴 적 나를 한눈에 사로잡았던 그 고래. 눈 위에 커다란 흰 반점이 신비하고도 무시무시한 위엄을 내뿜는 녀석에게 푹 빠져 저 고래는 뭐라고 부르냐고 물었다. 아빠는 저건 범고래고 바다에서도 가장 크고 총명해서 상어들도 꼼짝을 못 한다고 설명해줬다. 저렇게 크고 똑똑하면 넓고 시커먼 바다에 살아도 외롭지 않을까. 나는 범고래로 태어나 대서양을 누비는 상상을 하며 잠들곤 했다. 세월이 지나 제아무리 대단한 인간도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뭐로든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깨끗이 버렸지만 그래도 고래는 가지고 싶었다.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를 살에 새기면 덜 외로울 것 같았다. 바늘을 받아들인 피부는 갓 태어난 아이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실처럼 가는 선으로 끊기지 않고, 가까이 오지 않으면 형체를 알아보지 못하게. 최대한 추상적이고 약간은 낙서 같기를 원했던 그대로였다. 예쁘게 잘 나왔네요. 과묵한 남자가 라텍스 글로브를 벗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신원도, 무엇도 모르는 그가 내 또 다른 창조주처럼 느껴졌다. 사는 게 안 풀리면 또 올게요. 그땐 등에 칼자루라도 새기죠.
출근을 하면서 그날을 생각합니다. 낙타가 고래였고, 고래가 낙타였다는 시절을 생각합니다. 그들 중 누군가가 바다로 걸어 들어갔던 그날을. … 당신께 묻습니다. 왜 바다로 간 건지. 왜 지층은 아직 침묵인지. 화석도 남기지 않은 날들을 도대체 누가 믿어 줄건지. 알갱이 속에 갇힌 수천만 년을 왜 말해 주지 않는지.
허연, <수천만 년전>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수 년 전이었다. 그나마 편한 사이로 지내던 회사 선배는 주말에는 부업 삼아 타투이스트로 일했다. 주로 평택 미군기지로 출장을 간다고 했다. 재미교포인 그의 몸에도 문신이 많아서 중요한 미팅이 있을 때면 항상 긴 소매를 입었다. 퇴사하던 날, 선릉역 근처 인테리어가 조악한 실내포차에서 술을 마시며 그에게 물었다. 선배한테 문신 받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이야? 주로 미군이지. 군인 중에 사연 있는 애들이 많아. 나처럼 이름이랑 생년월일만 쥐고 입양됐다가 뭐라도 알고 싶어서 온 경우도 있고. 굴곡 많은 인생들이랄까.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잔을 비웠다. 주로 뭘 새겨? 다양해. 레터링으로 좌우명을 새기는 사람도 있고. 돌아가신 엄마 얼굴, 검이나 맹수일 때도 있고. 나는 말없이 그의 얘기를 들었다. 이 일을 해보니까 말이야. 덮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 그러니까 감당할 게 유난히 무거운 사람들이 문신을 해. 요즘은 물론 가볍게 하는 경우도 많지만 내가 본 바로는 그래. 삶을 견디기 위해서 새로운 피부를 입듯이. 그는 계속 문신을 ‘입는다(wear)’는 동사를 사용했다. 선배는 뭘 감당하고 있기에 그렇게 많은 갑옷이 필요하냐고, 나는 속으로 물었다. 입 밖으로 꺼내기에는 그의 눈이 어쩐지 쓸쓸해 보여서.
작업은 손끝의 정교함을 필요로 한다.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면서 표피와 진피 사이에 정확한 깊이로 바늘을 찔러넣어야 피부를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고른 색이 나온다고 했다. 나는 문신 자체보다 그것이 주고자 하는 것,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외피를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갔다. 욕망에 영속의 윤곽을 부여하는 일. 욕망은 결핍과 동의어라 누군가 희구하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보이는 건 그의 빈 공간이다. 지하철에서 한쪽 팔이나 다리를 덮을 만큼 크고 위압적인 문신을 한 사람을 보면 곁눈질하지 않으려 부러 바닥에 시선을 고정했지만, 어떤 물음들이 자막처럼 스쳐가곤 했다. 무엇을 채우고 싶었나요. 외피를 얻으니 그게 뭐든 견딜 만 한가요.
내게 문신은 상처로 상처에 맞서는 일처럼 느껴졌다. 아름답거나 무서운, 면류관이거나 화염 같은 상처로 질펀하고 지저분한 생의 흔적을 덮는 일. 신기하게도 그건 내가 읽고 쓰는 이유와 닮았다. 나는 부서진 사람들의 내면을 다루는 이야기에만 끌렸다. 속한 세계에 쉽게 섞이지 못하고 다르게 살려 한다는 이유로 나를 별종 취급하며 기대 이하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던 가족으로부터, 거의 평생에 걸쳐 속을 시끄럽게 만든 스스로의 기질로부터 나를 견디게 해준 건 그런 이야기 속에서 빛나던 문장들이었다. 내 일부를 가져가고 대변하는 작가들 – 미시마 유키오, 오에 겐자부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전혜린, 허연 – 의 문장은 살갗을 파고들어 바늘로 콕콕 찌르는 상처를 냈다. 나를 이해하는 영혼만이 낼 수 있는 정확한 깊이의 상처였다. 너무 얕게 들어와 금방 지워지거나 너무 깊이 파고들어 속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찬란한 문양만을 남기는. 형체 없는 마음의 과녁을 명중당했을 때의 통증은 금세 황홀함이 된다는 것도 그들을 통해 알았다. 그런 문장들은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내 안에 새겨졌다. 해묵은 슬픔에 입히는 아름다운 외피였다.
낯선 집 대문에 새겨져 있는 문장(紋章)이 내가 오래전 쓴 문장(文章) 같아 보여 한참 바라보다가 그 집에서 죽어야 할 것 같았다.
강정,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문신과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문장의 세계에서는 그 주인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걸지도 모르겠다. 글에는 아무리 덧입어도 가려지지 않는 여린 살내음이 있다. 문장이 말하는 믿음, 행간에 스민 본심. 쓰인 말과 차마 쓰지 못한 말 사이에 드러나는 속살. 때로는 글만 보고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것 같은 건 거기 새겨진 상처의 무늬가 나와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운 좋게 그런 글을 만나면 반갑다 못해 눈물겨웠다. 세상 끝에 글을 쓴 사람과 나 둘만 서 있는 것 같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글을 읽었다. 배우면서, 때로는 가르치면서, 모임을 하면서. 나이도, 정확한 직업도 모르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떠올린 건 이상하게도 그들의 우는 얼굴이었다. 하루만큼 닳은 채 집으로 돌아와 분칠을 벗겨내고 완전히 혼자가 됐을 때 우는 얼굴. 누구는 툭 건드린 도미노처럼 무너졌고, 누구는 입술을 깨물다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 얼굴들은 속수무책으로 마음의 장벽을 부수고 들어왔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이 내가 느낀 어둠을 보다 유려하게 말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면, 함께 쓰는 사람들은 밀린 빨래처럼 너절한 일상을 견뎌낼 때 거기 있어 주었다. 텅 빈 눈으로 누구를 위한건지도 모를 화장을 하는 아침에,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불면증 치료제를 삼키면서 다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새벽에, 샤워기를 틀어놓고 그 아래서 겨우 울 수 있을 때, 그들의 얼굴을 닮은 문장들이 되살아나 나를 하루만큼 더 살게 했다.
처음 문신을 하면서 앞으로 몇 개가 더 필요할지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나는 삶을 벌처럼 느껴왔고 갇힌 사람들이 그렇듯 견뎌야 할 이유를 어떻게든 스스로 공급해야 했다. 믿음이든, 환상이든 자꾸 보면서 지금에 나를 붙잡아 둘 무언가를. 몸의 부분들을 다 채우면 그때는 견딜 수 있을 만큼 견딘 거라고 믿기로 했다. 부질없는 몸부림은 그만두자고. 몸에 뭘 잔뜩 새길 운명은 아니었는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함께 쓰는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 내 곁에는 한 번 더 써보지 않겠느냐고, 조금 더 살아보지 않겠느냐고 묻는 대신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월이 봉합하지 못한 상처 틈새로 빛이 들어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한번은 꼭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의 문장이 삶이 나를 거꾸러뜨릴 때마다 꺼내보는 문신이라고. 등에 칼을 새길 필요는 아무래도 없을 것 같다고. 이제 내게 남은 건 그런 문장을 써나갈 일뿐이다. 그리고 그건 일생에 걸쳐 사랑하는 일과 같은 말로 들린다.
나 진짜 열심히 사랑할거야 더 많이 더 오래 성실하게 엉망진창이어도 꼭 살아 있자 우리
박은지, <여름 상설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