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행복한 삶에 필요한가?

친구는 행복한 삶에 필요한가

by 철학하는 도롱뇽

1. 인간은 왜 무엇인가를 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모든 기예와 모든 탐구, 그리고 모든 행위와 선택은 어떤 선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선을 모든 것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여기서 말하는 ‘선(善)’은 고대 그리스어 "아가톤(agathon)"을 번역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단어가 단순히 도덕적인 의미만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선한 인간’, ‘선한 행위’처럼 도덕적 의미로도 사용하지만 ‘좋은 책상’, ‘좋은 도구’처럼 비도덕적인 대상에도 이 표현을 사용한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선’이란 무언가가 지향하는 목적, 또는 그것이 잘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어떤 목적을 향한다. 공부를 하는 이유는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이고 좋은 성적을 얻는 이유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이며 좋은 직장을 얻는 이유는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를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은 구조가 된다.

공부 → 좋은 직장 → 풍요로운 삶 → …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이 연쇄는 어디에서 끝나는가? 만약 어떤 목적이 계속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기만 하다면 우리의 삶은 끝없는 수단의 사슬 속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행위가 궁극적으로 향하는 최종 목적, 즉 그 자체로 추구되는 어떤 것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철학에서는 이런 가치를 "본래적 가치(intrinsic value)"라고 부른다. 그것은 다른 어떤 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2. 인간 삶의 최고선, 행복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위에도 분명히 위계질서가 있다고 보았다. 어떤 목적은 다른 목적의 수단이 되고

또 다른 목적은 그보다 더 상위의 목적이 된다. 그리고 이 위계의 가장 위에 더 이상 다른 것의 수단이 되지 않는 목적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최고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최고선을 "행복(eudaimonia)"이라고 보았다. 흥미로운 점은 “행복이 최고의 선이다”라는 사실 자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에게 행복은 부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 행복은 쾌락일 수 있으며, 어떤 사람에게 행복은 명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통속적인 정의들이 불완전하다고 본다. 그는 인간의 고유한 기능을 가장 잘 발휘하는 삶, 즉 덕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성에 따라 사유하는 삶, 다시 말해 "관조적 삶(the contemplative life)"을 가장 높은 형태의 행복으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떤 조건을 가져야 할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해야 한다

완전해야 한다

자족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자족성(self-sufficiency)"이다.

자족적이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상태를 의미한다. 행복이 자족적이라면 다른 어떤 것이 추가되지 않아도 이미 완전한 삶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새로운 질문이 등장한다. 행복한 사람에게 친구는 필요한가?


3. 행복한 사람에게 친구는 필요한가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행복한 사람은 이미 자족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면 친구는 필요 없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설령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해도 혼자서 사는 삶을 선택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답은 간단하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을 폴리스적 존재라고 표현한다. 즉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족적 삶’을 고립된 개인의 삶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족적인 삶이란 부모, 자식, 배우자, 친구, 시민들과 함께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성상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4. 친구는 또 다른 나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친구란 단순한 인간관계가 아니다. 그는 친구를 “또 다른 자기 자신”이라고 표현한다.

진정한 친구란 덕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된다. 그래서 유덕한 사람에게 유덕한 친구의 존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 친구의 행동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친구의 삶과 행동을 통해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다. 친구는 일종의 거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인간에게 ‘함께 산다’는 것은 단순히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말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삶을 함께 성찰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삶 속에서 인간의 사회적 본성이 완성된다. 그리고 그 완성을 가져다주는 것이 바로 필리아(philia), 즉 우정이다.


5. 행복과 우정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결론은 분명하다.

행복한 삶은 덕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다. 그리고 그런 삶은 혼자서 완성될 수 없다. 유덕한 사람들 사이의 우정, 서로의 삶을 함께 바라보고 생각을 나누는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인간의 삶은 더 깊어지고 더 충만해진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행복한 삶에도 친구는 필요하다.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행복한 삶에 친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친구가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의 행복은 완성된다.


원문 보기: https://blog.naver.com/philo_salam/224184839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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