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말띠아이의 말말말
기차로 여행 중, 기차 창문에 비치는 사람을 그리고 있던 아이. 의자까지 전부 다 그리길래 기차 그림책을 보여주며
"창문에는 사람 몸통만 보여. 의자는 가려서 안보여." 라고 말했다.
아이가 대답했다.
"엄마. 기차는 기차 운전하는 사람 마음대로 가는 거고, 그림은 그림 그리는 사람 마음대로 그리는거야."
4세, 어느날의 대화
굉장히 열려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아이가 하고싶은 것을 마음껏 하게 해주고, 이야기도 잘 들어주는 엄마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와 했던 이야기들을 쭉 다시 보다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였구나' 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움직이게 놔두는게 아니라, 내가 정한 틀 안에서, 그 안에서만 자유롭기를 원했다. 한계가 있는 자유.
보라색으로 사람얼굴을 칠하는 아이를 보며 "사람 얼굴이 왜 보라색이야?" 라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아이니까,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대답할거라고 예상했다. "응, 이 사람은 포도를 먹어서 얼굴이 보라색이 됐어." 이런 류의 답이랄까. 아이의 대답은 간결했다. "내가 보라색으로 칠했으니까 보라색이지."
'아이답다' 라는 것에 갇혀있었다. 아이답게 크길 바랐다. 도대체 그게 뭔데? 정작 아이가 아이다울때 가장 많은 제지를 하는 것은 나였음에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는 엄마의 의도와는 아랑곳 없이 본인이 하고픈 것들을 끝까지 관철하며 잘 컸다. 착각 속에 빠져 사는 엄마에게 한번씩 팩트를 날리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또 얼마나 많은 부딪힘이 있었는지. 부딪힘이라기 보다 일방적인 나의 강요였음을 이제야 깨닫고 있지만.
"오래 생각한거야? 뒷감당도 할 수 있어?"
"이렇게 해보는게 낫지 않을까? 왜 꼭 다른 길로 가야해?"
"엄마가 해보니까 이게 낫더라. 그러니까 너도 그렇게 해봐."
내가 너무도 듣기 싫어했던 말들을 고스란히 아이에게 하고 있던 나를 깨달았던 날, 아이가 왜 그걸 이제야 알았냐고 나에게 말하던 날. 그때부터 아이의 생각을, 행동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어떤 평가도 없이. 잔소리도 없이.
그림은 그림그리는 사람 마음대로.
사람 얼굴 색도 칠하는 사람 마음대로.
그랬던 아이는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내 인생은 내 마음대로. 그리고 말한다.
"엄마, 난 내가 제일 잘한 선택이 대학안가고 지금 하고 있는걸 선택한거라고 생각해. 행복해"
그래, 그거면 된거지. 뭐가 더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