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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May 24. 2021

교만이 고개를 숙였다

겸손이 들어 있는 말들


반에서 읽기를 잘해 상을 받은 꼬마가 집에 돌아와 하녀에게 으스대며 말했다.

"아줌마는 나만큼 책을 잘 읽을 수 있어? 이 책 읽어 봐."

마음씨 고운 그녀는 책을 받아 들고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빌리야, 나는 책을 읽을 줄 모른단다."

그러자 공작새만큼이나 교만해진 어린 친구는 거실로 달려가 큰소리로 외쳤다.

"아빠, 난 여덟 살 밖에 안되는데도 상까지 받았는데 아줌마는 책도 읽을 줄 몰라요. 어떤 기분인지 궁금해요."

아버지는 말없이 책장에서 두툼한 책을 꺼내 아이에게 주면서 말했다.

"아마 이런 기분일 게다."

스페인어로 된 그 책을 빌리는 한 줄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 후 아이는 그 교훈을 잊지 않았다. 그는 우쭐한 기분이 들 때면 언제나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보곤 한다.

'넌 스페인어를 읽지 못한 것을 잊지 말아라.'

(프랭크 미할릭, '느낌이 있는 이야기' 중)




교만은 겸손보다 위험하다.


개보다 고양이가 로드킬을 많이 당하는 이유는, 빛에 반응하는 동공의 구조적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고양이는 자동차보다 자신이 빠르다는 자만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만은 겸손보다 위험한 것이다. 나의 생각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겸손, 내가 아는 지식은 보잘것 없는 일부분일 뿐이라는 인식, '내가 아니면 안 돼.'가 아니라 '내가 없으면 더 잘 돼.'일 수도 있다는 반성을 해본다. 교만한 사람은 쉬운 일을 어렵게 만들고, 겸손한 사람은 어려운 일을 쉽게 만든다. 겸손은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자신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에겐 우호적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법정스님이 말했다. 아무리 어둡고 험난한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고갯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고. 나 홀로 개척자가 되어 이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세상의 모든 길에는 앞서 지나간 이가 반드시 있다. 길이란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으로 만드는 증빙서류 같은 거다. 앞서 간 이가 없으면 태어나지 않는 흔적이다. 심지어 풀숲을 헤치고 나 스스로 만들며 가는 길조차도, 잠시 발길이 끊겨 숨겨진 길일수 있다. 진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가서는 안 되는 길 뿐이다. 그러므로 나만 힘들고 험한 길을 가는 거라고 불평하지도, 나 홀로 어려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거라고 자만하지도 말자. 고민 끝에 자세를 낮추어 지나갔을 선배를 떠올리며,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자. 실제로 나 없으면 사무실이 안 돌아갈 것 같았지만, 더 잘 돌아가 놀랐던 경험 있지 않은가.



자만심은 그릇 밖으로 넘치는 쓸모없는 물이다.


가장 자존심이 강한 꽃, 수선화가 피었다. 보통은 무리 지어 피는데, 홀로 핀 교만한 녀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자존심이란 촛불의 심지와 같은 거라고 했다. 적당하면 주변을 환하게 비추지만, 심지가 너무 높으면 그을음이 생기다 촛불이 꺼지고 만다. 관계 속에서 불협화음이 생기고, 그을음처럼 속이 타는 일이 생긴다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자. 겸손을 망각하고 자존심을 높이지 않았는지, 나의 부끄러움을 찾기보다 자랑거리를 먼저 찾지 않았는지, 혹시 나의 장점으로 남의 단점을 드러내게 하지 않았는지를. 김은주 작가는 자신감이 겸손이라는 그릇 안에 담겨 있는 물이라면, 그릇 밖으로 흘러넘치는 물은 자만심이라고 했다. 지금 우월감과 공명심으로 물이 넘쳐흐르고 있지 않은지. 목마른 사람의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는 물은 쓸모가 없다.



겸손은 미안한 마음, 교만은 서운한 마음이다.


그동안 내가 해준 게 얼만데, 그렇게 희생했으면 되었지, 왜 나만 이렇게 빡센거야. 쟤들은 놀고 있는데. 윗사람들은 생각도 없나 봐, 쓸데없는 일만 하래. 아무래도 너무 열심히 일해줬나 봐. 그럼 뭐해? 알아주지도 않는데. 앞으로 내가 열심히 하나 봐라. 이런 말들은 모두 섭섭하다는 표현이다. 자기를 알아달라는 우회적 표현이다. 결국... 교만에 빠졌다는 뜻이다. 조정민 목사의 말에 따르면, 겸손은 늘 과분한 대접을 받는다고 여기는 마음이고, 교만은 미흡한 대접을 받는다고 여기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처음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겸손했던 그 처음의 마음을 회복하자. 요즘 들어 '겸손'에 대하여 소홀하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나의 판단이 옳은 것이고 정의로운 것이라 고집부리지 않았는지. 산 높은 곳에 있다고 기슭을 오르는 이에게 시야가 좁다 비난하지 않았는지. 더 많은 삶의 양을 내세우며, 번뜩이는 젊은 지혜를 덮으려 하지 않았는지.



머리를 덜 숙이기보다 더 숙인 편이 낫다.


어떤 경우라도 교만하면 손해가 따른다. 비 오는 날 우산을 맹신하고 함부로 걸으면 바지가 젖는다. 비록 우산을 가졌더라도 비 앞에서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걸어야 옷이 젖지 않는 법이다. 영국 속담에, 머리를 너무 높이 들지 말라, 모든 입구는 낮은 법이다, 라는 말이 있다. 특히 지금 막 입구 앞에 도착한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다. 하긴 낮은 자세로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머리를 치켜드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그러더라도 우리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개 숙인 낮은 마음을 인생의 출구까지 품고 살자는 말이다. 하나 더 얘기하자면, 고개를 숙일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무조건 숙이는 편이 낫다, 내 경험상 그랬다. 욕심을 버리고 자세를 낮추면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평온한 바다가 될 수 있다.

 

아, 그리고 나도 스페인어로 된 책을 읽을 줄 모른다.




Epilogue

옷걸이의 본분


본분을 다하고 있는 옷걸이


세탁소에 갓 들어온 옷걸이에게, 헌 옷걸이가 한마디 하였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길 바란다."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지요?"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정채봉,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중)

,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나의 것이 아니었구나. 짙은 양복 걸치고 으스댈 것도, 때 묻은 운동복차림을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어떤 옷을 입더라도 옷걸이의 본분을 잃지 말자. 기저귀로 시작해서 수의 한 벌로 돌아가는 인생에서, 늘 옷걸이의 마음을 품고 살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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