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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뚜 Jul 19. 2023

느린시간, 혼자는

몸도 마음도 고단하던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지친 육체를 조금은 쉬어도 좋겠다고 마음먹고 치료를 시작하고 연차 휴가를 사용합니다.

하늘도 무심한건지 쉬라는 건지 비가 쉼없이 내립니다. 전국이 피해를 입고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불가항력처럼 힘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소식에 가슴이 무너집니다. 남은 가족들에게 감정이 이입되고 앞으로의 슬픔이 느껴져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렇게 남의 불행이 내 일인거 마냥 슬프고 침울하게 뉴스만 찾아보며 집에 쭈그러져 있습니다.


연차 마지막날,

모처럼 긴 장마중의 짧은 휴식이 돌아왔습니다. 비가 그쳤고 햇볕이 쨍쨍입니다. 산에서 목놓아 우는 매미 소리가 여름을 알립니다.

아이는 신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친구들을 모아 1박2일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미련없이 엄마를 버려두고 혼자 신이나 떠나는 아들에게 제발 전화좀 하라고 마지막 잔소리를 남겼습니다. 대답없는 잔소리는 닫힌 문에 부딪혀 돌아옵니다.


혼자 남은 집에서 낯선 해를 보며 미뤄둔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문을 열어 젖혀 환기를 시킵니다.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바람이 반갑고 신선해서 폐 깊숙히 들이 마십니다.

더이상 할일이 없어진 나는 침대 중앙에 웅크려 앉습니다.


생활의 변화로 집을 부동산에 내어놓고 기다리는 마음이 번잡합니다. 환경적으로는 이사를 해야하는데 남편이 예쁘게 셋팅해 꾸며놓은 질서를 무너뜨리려니 자꾸만 못난 내 능력을 탓하게 됩니다.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무릎사이에 얼굴을 기댄채 베란다밖 세상을 봅니다. 참 예쁘기도 하네요. 이런 경치때문에 내가 우겨서 이집으로 이사를 왔고 이런 경치가 좋아 잦은 이사를 하던 우리 식구는 십년을 넘는 시간을 이집에서 지냈습니다.여전히 예쁘고 편안해지는 경치를 보는데 눈물이 납니다.


남편에게 미안해 눈물이 나고 이런 집을 포기하고 멀리 옮겨야하는 나의 능력적인 한계에 가슴이 무너집니다. 아니 사실은 혼자 남아 덩그러니 앉아 있는 침대가 크고 횡량해 결국은 내가 불쌍해지더군요. 그래서 눈물이 나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최근 시작한 치료 덕분에 컨디션도 최상이고 볕 뽀송해 며칠째 풀 가동중이던 제습기에게도 휴식을 주었습니다. 자연 바람에 집이 뽀송해지기 시작했고 산에서 시끄럽게 우는 매미소리마저 정겨운데 그래서 가슴이 살랑거려야 하는데, 혼자는 참 견디기 힘든 시간입니다. 빨리 익숙해져야 할 텐데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게 또 이런 시간인거 같습니다.


청소기를 꺼냅니다. 깨끗하지만 깨끗하지 않은 척 청소를 시작합니다. 아주 천천히. 그런데도 아직 오늘이 지나가려면 14시간이나 남았네요. 시간은 참으로 제멋대로 입니다. 짧다가 길다가 짧다가 길다가..,

한번을 제대로 만족스럽지 않은 사악한 시간이 느리게 흐릅니다.


다시 멍하니 침대에 앉아 베란다밖 세상을 봅니다. 구름이 지나가고 새가 지저귀고 매미가 여전히 울고 있네요. 해가 나타나다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벌떡 일어나 읽히지 않는 책을 폅니다. 수면제용이라도 되면 좋겠는데 오래 묵은 불면증이 도움을 주지 않을거라 난독증 같은 머리를 무시하고 활자에 눈을 붙여 둡니다.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습니다.


혼자의 시간은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적응하는 시간이 오기는 하겠지요? 언젠가는...


혼자서 뭐든 척척해내는 사람들이 쇼프로에서 자주 보입니다. 부럽습니다. 언제가 되어야 나는 혼자서도 잘 견디고, 씩씩하게 삶을 살아나가게 될까요?


어색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혼자는 여전히 불편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멍하니 하늘만 봅니다. 더럽게 새파란 하늘이 짠하고 나타났네요. 예뻐서 환장해야 하는데 미운건 왜 일까요? 저렇게 파란 하늘, 내가 좋아하는 하늘이 오늘따라 참 보기 싫습니다. 책을 펴놓고 하늘에 시선을 두고 멍 때리는 오늘은 지겹게도 시간이 느리게 지나가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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