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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묵묵히 널 버티고만 있었어

의자

by 라이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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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존재가 있다.

말도 없고, 눈도 없고, 대답도 안 하지만

항상 내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주는 존재.


바로,

의자다.


사람들은 앉을 때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털썩 앉고, 팔꿈치도 기대고,

고개 숙이고 고민하고,

온종일 그 위에다 자신의 인생을 올려놓는다.

물건도, 감정도, 오늘도.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얘도 힘들진 않을까?"

“내가 머리를 몇 시간이고 떨궈놨는데 말이야…”

“그날은 나도 몰랐는데,

내 정수리 냄새가 좀 과했을 거야… 미안.”


한 자리에 조용히 있는다고

그 존재가 아무 감정도 없으란 법은 없는데,

너무 당연하게 곁에 있어서,

그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도 자주 잊는다.


인제 와서 보니,

내가 피곤해서 앉는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그 의자가 나 대신

피곤한 나를 버텨주고 있었던 거다.


글을 쓰거나,

컴퓨터를 하거나,

그냥 인생이 복잡해서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있는 날이면

그 의자는 묵묵히 나를 받쳐준다.

팔꿈치, 등, 머리까지 다.

심지어 가끔은 나의 ‘한숨’도 같이 얹어놨다.


기댈 곳 없는 밤엔,

조용히 돌아앉은 채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조용히 울기도 했다.

그때도 의자는 소리 없이 나를 받아줬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의자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제 낡았구나’ 생각했지만

가만히 듣다 보면 그 소리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나도 좀 쉬고 싶어.”


그제야 깨닫는다.


“아, 내가 네게 너무 많이 올려놨구나…”


사람 관계도 그렇다.

무게는 서로 나눠야 하는데,

가끔은 너무 익숙하다는 이유로

의자처럼, 아무 말 없이 버텨주는 사람에게

모든 걸 얹어두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은 말없이 나를 버텨준 너에게

살며시 말해보고 싶어진다.


고마워.

네가 있었기에

나는 매일,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어.


다음엔 너도

내 팔꿈치가 아닌 햇살을 좀 받았으면 좋겠다.

내 하루에 기댄 것처럼

너도 누군가에게 가볍게 기대어 쉴 수 있기를.


그 의자에게도,

누군가의 따뜻한 등받이가 되어줄

의자 전용 스파 같은 이벤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괜히 혼자 상상해본다.


아무 말 없는 너에게,

오늘은 내가 먼저 말을 건네본다.


“괜찮아? 내가 많이 무거웠지?”

“이제는, 내가 너를 좀 안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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