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이체
결혼하고 나서, 눈물이라는 감정은
웬만해선 서로 꺼내지 않게 되었다.
살다 보면,
서운할 때도 있고,
기운 빠질 때도 있고,
말없이 하루가 지나가는 날도 있지만
그걸 일일이 감정으로 부딪치기엔
우린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나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그녀를 울리지 않았다.”
소리 지른 적도 없고,
밖에서 마음 흔들린 적도 없고,
뒤에서 상처 주는 말도 삼켰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지.
이상하게도 그녀는 매달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 때문에 울먹이곤 한다.
그녀를 시시때때로 울리는 그 무언가란,
바로 은행 알림 문자이다.
매달 25일,
자동이체가 줄줄이 빠져나가는 그날이면
우린 말없이 서로의 눈을 피한다.
공과금, 교육비, 보험료.
그 중간중간엔 ‘노후’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적금과,
어느새 혼자 부쩍 커버린 아이의 학원비도 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조용히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며 주방 쪽으로 사라진다.
나는 괜히 TV 채널을 돌리거나,
방 안에 들어가 불을 꺼두곤 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기분.
그 무거운 공기가 은행 앱 알림처럼 정확히 찾아온다.
예전엔 몰랐다.
사랑은 서로의 감정을 지키는 일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생활은 수치를 견디는 일이라는 걸
살다 보니 알게 되었다.
데이트하던 시절엔
한 끼 식사에 4만 원을 써도 눈 하나 깜짝 안 했는데,
이제는 마트에서 3만 원이 나오면
“뭐가 이렇게 비싸” 하고 서로 눈을 맞춘다.
나는 아직도 그녀를 울리지 않기 위해
말을 아낀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가장 큰 울림은,
늘 통장 알림에서 터진다.
한 번은 그녀가
혼잣말처럼 이런 말을 했다.
“요즘엔 돈 쓸 때마다 눈물이 나.”
그 말은 농담이었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안다.
그녀가 울지 않은 게 아니라,
울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라는 걸.
자동이체가 빠져나갈 때마다
자기 몫을 줄여왔고,
내가 피곤할까 봐,
아이 걱정할까 봐,
말없이 견디며 살아왔다는 걸.
그래서 어느 날은
내가 조심스레 플렉스를 제안했다.
“이번 달엔 그냥… 우리 둘만을 위해
아무 이유 없는 돈을 한 번 써볼까?”
그녀는 놀란 얼굴로 웃었고,
나에게 있어 그 웃음은
은행 앱보다 훨씬 값진 알림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빠듯하게 살아간다.
자동이체는 다음 달에도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그녀를 울리지 않았다’는 말은
조금은 다르게 들린다.
이제는 ‘같이 울지 않으려 애써온’
작고 긴 연대의 또 다른 말로.
그리고 문득,
그녀가 울지 않도록 노력해온 모든 순간마다
나는 얼마나 많은 눈치를 받았는지,
얼마나 많은 정적을 견뎠는지,
생각하면 울컥했지만
그게 다 사랑의 모양이었다는 걸
이제는 깨닫는다.
은행 앱은
아직도 매달 우리의 통장 잔액을 줄이지만,
우리는 그 잔고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감정으로, 웃음으로, 고개 끄덕임으로
다시 채워가고 있다.
그리고 나도 이제부터 매달
묵묵히 자동이체 되는 마음 하나를 품는다.
‘다음 달엔, 당신을 좀 더 웃게 하자.’
그 결심도 매달 그녀에게 자동이체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