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 가라앉는다고 자책하는 날 향한 위로
처음 수영을 배웠을 때였다.
강사는 말했다.
“힘을 빼세요.”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앞으로 가려면 더 세게 차야 하는 거 아닌가.
팔을 더 휘저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더 힘을 줬다.
몸은 긴장했고, 호흡은 가빠졌고,
결과는 늘 같았다.
가라앉았다.
그때 강사가 다시 말했다.
“지금은 가려고 하지 마세요.
먼저, 물 위에 있으세요.”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이건 수영 이야기만은 아니구나.
수영은 잔인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던 몸이
물 앞에서는 말을 듣지 않는다.
균형이 무너지고,
호흡이 흐트러지고,
머릿속에서는 생각만 많아진다.
“왜 이렇게 안 되지?”
“이 정도는 금방 할 줄 알았는데.”
이때 가장 괴로운 건
못하는 내가 아니라, 못하는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다.
킥복싱 스파링이 나를 드러내는 경험이었다면,
수영은 나를 낮추는 경험이었다.
수영의 첫 번째 역설은 이것이다.
힘을 줄수록 가라앉는다.
몸에 힘이 들어가면
물은 나를 떠받치지 않는다.
긴장은 저항이 되고,
저항은 침몰로 이어진다.
삶도 그렇다.
더 잘하려고 애쓸수록
더 통제하려 들수록
오히려 일이 꼬이는 순간이 있다.
그때 필요한 건
의지나 노력보다 수용이다.
수영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건
속도가 아니라 호흡이다.
숨을 참으면 금방 지친다.
호흡이 흐트러지면 몸 전체가 무너진다.
그래서 강사는 계속 말한다.
“숨 쉬세요. 계속.”
이 단순한 말이
의외로 가장 어렵다.
우리는 평소에도
숨 쉬는 걸 잊고 산다.
성과에 쫓기고,
역할에 매달리고,
다음 단계를 고민하느라
지금의 리듬을 놓친다.
호흡을 되찾는다는 건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것이다.
수영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은
기술이 늘었을 때가 아니다.
물에 나를 맡길 수 있게 되었을 때다.
“내가 떠도 괜찮겠구나.”
“물은 나를 가라앉히지 않겠구나.”
이 신뢰가 생기는 순간,
몸은 가벼워진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걸 내가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을 때,
누군가에게 맡길 수 있을 때,
흐름을 믿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에너지가 절약된다.
놓아준다는 건 포기가 아니다.
불필요한 힘을 빼는 선택이다.
물은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그대로 반응할 뿐이다.
힘을 주면 밀어내고,
몸을 맡기면 받아준다.
수영을 하며 알게 된다.
물과 싸우는 사람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물과 함께 가는 사람은 멀리 간다는 걸.
이건 경쟁의 논리가 아니라
지속의 논리다.
전환기의 삶도 그렇다.
이길 필요는 없고,
다만 흐를 수 있어야 한다.
요즘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일에, 너무 힘을 주고 있지는 않은가
통제하려다 스스로를 가라앉히고 있지는 않은가
숨을 쉬지 못한 채 버티고만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이렇게 바꿔본다.
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내려놓기
당장 결과가 없어도 리듬을 지키기
잠시 멈춰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기
그래서,
기획안이 잘 안 풀릴 때, 억지로 밤을 새우는 대신 산책을 나간다.
팀원과 갈등이 생겼을 때, 바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하루 시간을 둔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하자 오히려 더 멀리 간다.
성장은 언제나
더 세게 밀어붙이는 방향으로만 오지 않는다.
때로는
힘을 빼는 용기,
흐름을 믿는 선택,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는 수용에서 온다.
지금 당신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어쩌면 필요한 건
더 많은 노력이 아니라
조금 덜 애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 위에 떠도 괜찮다.
숨을 쉬어도 괜찮다.
그 순간,
당신은 이미 앞으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