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전 1.0으로 사는 법
어딘가에 있다.
반쯤 쓴 사업계획서.
한 챕터에서 멈춘 원고.
만들다 닫아둔 포트폴리오 파일.
"좀 더 준비되면 꺼내야지."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서랍은 조용히 무덤이 됐다.
완벽한 순간은 오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오지 않는다.
1801년,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됐다.
책도 없었다. 제자도 없었다.
관직도 없었다.
당시 기준으로 그의 커리어는 완전히 끝났다.
그런데 그는 썼다.
조건을 기다리는 대신,
있는 것으로 시스템을 만들었다.
유배지의 아이들을 모아 가르쳤다.
가르치면서 정리했고, 정리하면서 썼다.
책이 없으면 기억에서 꺼냈다.
기억이 흐릿하면 제자의 질문에서 시작했다.
강진은 그에게 '서재가 없는 공간'이 아니었다.
'완성된 환경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었다.
18년. 500여 권.
공자는 이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습(習)'은 아는 것이 아니다.
새끼 새가 날갯짓을 반복하는 모습에서 온 글자다.
완벽한 비행을 준비하고 나는 새는 없다.
떨어지면서 나는 법을 익힌다.
준비가 됐을 때 시작한 게 아니다.
시작했기 때문에 준비가 됐다.
"나는 다산이 아니다."
맞다. 하지만 당신에게도 강진이 있다.
퇴근 후 남은 저녁과 밤
아이디어만 있고 실력은 부족한 지금.
아직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자리.
그것이 당신의 강진이다.
조건이 나쁜 게 아니라, 조건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완성도 낮은 걸 내놓으면 신뢰를 잃는다."
비교 대상이 틀렸다. 미완성 대 완성이 아니다.
미완성 대 존재하지 않음이다.
서랍 속에서 10년을 묵힌 것은 세상에 없는 것과 같다.
꺼내야 피드백이 온다. 피드백이 와야 다듬어진다.
버전 1.0이 없으면 2.0도 없다.
위험한 것은 미완성이 아니다.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거창한 선언은 필요 없다.
오늘, 당신의 서랍에서 하나만 꺼내자.
그리고
파일 이름을 업데이트해보자.
제목만 써보자.
첫 문장 하나만 쳐보자.
그게 버전 1.0이다.
그리고 그것이 존재해야, 다음이 생긴다.
지금 서랍 안에 잠들어 있는 것.
쓰다 멈춘 것, 말하다 삼킨 것, 시작했다가 닫아버린 것.
그것을 세상에 꺼내지 못하게 막는 것은 무엇인가.
준비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가.
정직하게 들여다볼 때, 거기서 다음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