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삶

#어느 클래식 음악 전공자의 평범한 이야기

by 바코

#글을 시작하면서


저는 제 삶이 유난히 사연이 많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왜 나만 이럴까’

‘왜 내 인생만 이렇게 복잡하고 꼬여있을까’

좌절도 많이 했습니다.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최고가 되어야 하는데, 보통이라서.


보통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했었습니다. 항상 높은 곳을 바라보니, 눈앞의 소중함과 소소한 행복을 느끼지 못했었습니다. 더 잘하고 싶고, 더 부유하고 싶고, 더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 때문에 늘 마음이 조급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따끈한 전기장판 위에서 아빠 다리를 하고 노트북을 다리에 올려놓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입니다.


이 곳에 저의 사연들을 하나씩 꺼내어 적어보려 합니다.


글을 써 내려가면서 어디까지 솔직해져야 하는 건지 결단을 내리지 못해 몇 번이나 썼다 지웠다 를 반복하며 고민에 빠졌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비난받을 용기가 부족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완벽한 용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봅니다.


저의 꿈은 음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누구나 음악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꿈꿔봅니다. 제가 가진 재능으로 그런 사회를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저의 개인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시작된 출판의 꿈이 다음 스토리 펀딩을 통해 글을 연재하게 되면서 댓글과 메일을 통해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은 어느 클래식 음악 전공자의 가난한 어머니의 이야기였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뒷바라지를 해줄 수 없어 속상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 글을 보고 딸아이를 보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는 말씀에 저도 어머니가 생각나 눈물이 났습니다. 글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는 일은 감사하고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현재와 과거를 기록하고 정리하며 다가올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흥미진진한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출판을 결심했었습니다. 지나간 20대를 돌아보며 스스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꿈을 출판을 통해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고 싶었습니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그리 성숙된 나이는 아니지만, 철부지 어린애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삶에서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독일에서 겪은 에피소드와 그로 인해 변화된 가치관과 지금 삶의 모습을 글과 사진을 통해 가까운 지인들에게 하나의 소식지처럼 전하고 싶었습니다. 지인들에게 받았던 도움과 관심을 저도 보답해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출판을 준비하면서 좀 더 많은 분들께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평범한 저의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되고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부터 제 얘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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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일

나는 인천공항에서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가 베를린 땅을 밟기 전까지는 주변 지인들과 친지들의 따뜻한 응원과 애정 어린 반대가 있었다.


“지금도 가난한데, 그 힘든 길을 왜 굳이 선택해서 가느냐? 갔다 와서는 뭐할 거냐. 음악 해서 뭐 먹고살래?”


그 애정 어린 반대가 나에 대한 미움과 비난으로 느껴져 밤을 새워가며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 사실 잘 먹고 잘 살려고 독일을 가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음악의 본 고장인 독일에 가서 클래식 음악의 거장들의 향기와 그들의 삶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독일의 문화와 시스템을 직접 보고 듣고 배우고 싶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는 주변의 얘기가 듣기 싫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독일 가서 석사, 박사 따고 와서 한국에서 교수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효도도 하고....”


그럴싸해 보이는 말들로 포장하고, 독일에 가고 싶은 이유를 모두가 납득할 만한 말로 바꾸어 말하고 다녔다. 클래식 음악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 독일에 간다는 말은 내 형편에 맞지 않는 배부른 소리였기 때문이다. 진심은 속에 묻어둔 채,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것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실제로 독일에서 음대 석사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다.


꿈과 현실에서 수도 없이 갈등하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지만, 결론은 내가 원하는 길을 가는 것이었다. 가난하다고 꿈을 포기할 순 없었다. 앞이 캄캄하다고 해서 가던 길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캄캄해서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근처까지는 가봐야 했다. 그래야 돌아올 때도 미련이 없을 것 같았다.


독일을 떠날 당시 집안 형편이 더 안 좋아져서 그나마 집에 있던 업라이트 피아노까지 팔아버렸다. 이리저리 내가 모은 돈과 주변에서 보태준 돈을 합치면 거의 천만 원이 되는 돈이었는데, 그중의 일부를 부모님께 떼어드리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면 포기하거나 미루거나 해야 하는데, 나는 그때가 아니면 다신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고 클래식의 향기가 풍기는 나라에서 하루빨리 아침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만큼 독일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독일을 다녀오면, 음악의 기회가 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나의 재능을 쓰겠노라고.


나의 어릴 적 꿈을 나열하자면 피아니스트, 작가, 독일에 가서 음악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서른 즈음되어버린 지금 내 꿈을 돌이켜보면 아직 이루어진 것은 독일을 다녀온 것 밖에 없지만,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가슴에 품은 꿈을 놓지 않으려 다짐한다. 그리고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닌 나와 비슷한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꿈길을 걸어가고 싶다.


나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독일을 다녀올 수 있었다. 손녀딸 유학을 위해 저금하신 할머니, 나의 인생 멘토 청주 이모 이모부, 독일어 배울 수 있게 학원비 보태준 사촌오빠, 내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지 못했지만 항상 진심으로 내 곁에 있어준 친구들, 모든 사정을 아시면서도 나의 재능을 인정해주시고 독일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독려해주신 교수님, 존재만으로도 고마운 부모님.


“나중에 제가 잘되면 꼭 갚을게요.”


“항상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도움을 받을 때마다 고마운 마음에 이렇게 얘기하면, 하나 같이 돌아오는 대답은 이러했다.


“흘려보내라.”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다. 나는 독일에서 얻은 지식의 깨달음 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얻은 즐거움과 성취감을 맛보게 되면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 혹은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살아나가는 방식도 있다는 것을 공유하고 싶어 졌다. 흘려보낸다는 것의 기본은 소통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통의 기본자세는 타인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나의 삶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 듯, 타인의 삶도 존중되어야 하니까.


이 이야기들은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하여 쓰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주관적인 것들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것도, 강요받는 것도 선호하지 않는다. 그냥 동네 친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라며, 이 작은 바람을 남몰래 기도해본다.


나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중받고 싶다.

당신의 생각도 옳은 것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존중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