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갑자기 추워진 날이었다. 그래도 낮에는 날씨가 맑고 선선하여 걷기가 좋은 가을하늘이었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걷기 시작했는데 대나무 숲이 있을 자리가 아닌데, 담벼락 위로 멋진 숲이 보였다. 어릴 때 언젠가 한 번쯤은 걸어봤을듯한 기억의 골목이었다. 멋진 나무들 사이로 나의 지금이 보였다.
오랜만에 한번 센치해져볼까?
몇글자 적어본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고, 부산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그리고 독일에서 2년정도 겨우 버티다가 비행기값을 빌려 울며 불며 돌아왔다. 독일에서의 경력과 경험으로, 생계를 유지위해 해외영업과 무역 관련 일을 하는 중소기업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때 직장생활의 예의나 시스템, 서류 작성법, 이메일 소통법, 어제 보였던 책상이 사라지고 다음날 새로운 임원이 보이는 부서별 간의 세력싸움과 사내정치 등등을 두눈으로 지켜보았다. 그와중에도 내 삶의 산소같은 피아노 레슨과 음악활동은 조금씩 병행하며 지내왔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월급받는 주유소 소장이 되어 탱크로리 위에도 올라가 화물차 아저씨들과 친구도 되어 보았다.
아무리 사는게 힘들어도 사람있는곳에
희망이 있다는 진리를 터득하며 버티었다
직장인의 삶을 살아보니,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가 꽃집을 열기 위해 알아본 보증금 200 짜리 3평 남짓한 작은 공간을 뺏들어(?) 내가 그 공간에 작은 작업실을 열었고, 그 작업실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공간을 확장하여 광안리 수변공원 옆에 '라움 프라다바코'라는 이름으로 문화공간을 열게 되었다. 라움 프라다바코를 오픈과 동시에 코로나가 터졌고 ,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텨내기 위해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국가 지원사업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러자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원한 대부분의 단체의 사업에 선정되었고 일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니 이곳저곳에서 또 불러주고, 코로나를 버텨내니 그 후로 대관사업도 잘되게 되었다. 7년동안 400여개의 지역공연과 300여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기획과 컨텐츠 제작은 주로 내가 하였고, 공간과 회계ㆍ각종 사업운영은 남편이 하였는데, 운영하던 공간의 규모는 커져서 5개까지 지점을 내게 되었다.
그렇게 2019년부터 하루하루 정신없이 보낸 날들을 뒤돌아보니, 어느새 나는 내 분야의 로컬 문화기획전문가가 되어있었다.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들, 그리고 보람되고 기쁜 시간들도 많았고
고마운분들께서 기회도 주셔서 곳곳의 구정과 시정을 오가며 각종 위원활동도 하게 되고, 후배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뒤돌아볼 겨를이 없이 일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수영구에서 만든 청년센터의 센터장으로 근무하며, 또 다른 입장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포지션만 바뀌었을 뿐 하는 일의 방식이나 마음가짐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짧은인생 살아오며 스스로 체득하고 견뎌내고 버티면서 구축된 나만의 방향은 있다.
하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기획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서로의 생각과 방향이 달라도 협의하고, 다시 또 조정하고
거기에 나의 창의성과 기획성을 발현시키되 절대 함께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우리의 공동선을 추구하겠다는 나의 원칙.
둘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을 만나고 마주보고 맞닥뜨리고 실망하는 과정에서도 최대한 배려하겠다는 나의 고집.
셋 가장 바람직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원만하고 합리적인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그 누구도 따라올수 없는 나만의 노하우와
기획성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
일기를 참 오랜만에 쓰는 것 같다.
하지만 공개하지 않았을 뿐 나의 개인 USB에는 기억하고 싶은 날의 기분과 느낌, 그리고 업무방식의 특징과 앞으로 개선해나가고 싶은 시스템에 관한 생각들을 다듬으며, 새롭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벌써 10년이 다되어가는 내가 2017년 스스로 출간했었던 에세이 '보통의 삶'의 개정판 또는 두 번째 책을 출간할 계획인데, 일정이 자꾸 미뤄지고 있다. 쌓아놓은 기록들을 정리해서 좋은 타이밍에 나의 두 번째 책을 펴낼 생각이다.
며칠전 이른 새벽 남편이 교회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문득 중고등학교 때 나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 새벽연습을 위해 집에서 2시간 걸리는 예고까지 티코를 몰고, 학교까지 픽업을 해준 엄마가 생각났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나의 재능을 알아봐 주고, 나를 응원해 주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금의 이 열심의 마음ㆍ이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겠다고 또 한 번 다짐했다.
하지만 어차피 잘 될 때는 다 잘 되고, 안 될 때는 뭘 해도 안 된다는 정도는 나도 알수 있는 나이이기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 모든 것은 지나가는 일ㆍ순간에 불과하다.
아침에 눈 뜰때마다 매일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삶이다.
얼마남지 않은 나의 불혹은 또 어떤 모습일까
나는 나를 반드시 기대한다.
이것이 내가 내 삶을 지켜내는 방법일진데
그대들이여 따뜻하고 격려의 눈빛으로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지켜봐주심이
어떨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