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ón 성당의 새벽 종소리로 시작하는 산티아고 순례길
걷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할 때 동행인의 유무와 상관없이 내 선택지는 걷는 것이었다. 걸을 때만 볼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이 나에게는 소중하다. 일상에서도 툭하면 걸었다. 퇴근길 혹은 친구와의 만남 후에 집까지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걷기도 했다.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일상에 치여 느끼지 못했던 계절을 느끼기도 했다. 걷는 것을 좋아하고 즐겨했던 나는 사실상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순례길 여정에 올랐다. 내가 느낄 사소한 것들을 기대하며 조금은 특별하지만, 나에겐 보통날인 순례길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막연히 그곳이 궁금했다. 근본적인 것을 알고 싶어 산티아고 순례길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신부님의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종교적인 이유가 아닌데도 그곳을 걷는 이유를 알고 싶어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한 책을 쓴 작가의 강의도 듣게 되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친구가 말했다. “그곳에 언젠가 가고야 말겠구나?” 그 한마디가 내가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곳에 갈 당위성을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했고 그것을 찾지 못해 그곳에 가야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일정이 4주에서 2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일정 앞뒤로 여행 계획을 세웠다. Madrid를 나흘 동안 둘러보고 León으로 떠나는 날이 밝았다. 친구와 나는 배낭을 메고 호텔을 나와 Chamartín역으로 향한다. 배낭의 무게가 내 어깨를 짓누르자 두 발이 무겁게 느껴진다. 준비해 간 옷가지도 얇아 얼굴과 몸에 스치는 바람이 차갑게 느껴진다. 그제야 조금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시작인가?’,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막상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를 시작하려고 하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León 대성당 근처 호스텔의 5번 방 9번 침대가 오늘의 내 집이다. 첫 번째 나의 작은 공간이 생겼다. 침대의 커튼을 치고 작은 전등을 켜면 온전히 내 공간이 된다. Toledo에서 산 수첩을 작은 선반에서 내려 오늘 일기를 적는다. 여행 시작 전 혼란했던 내 마음을 솔직하게 한 글자씩 적어본다. 시간이 지나 산티아고 순례길이 끝날 때쯤, 이 혼란한 마음이 사라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다음날 아직 별들이 떠 있는 새벽 León 대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드디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향한 진짜 한 발을 뗐다.
순례길 첫날, 화살표를 찾는 게 어색하고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심이 될 때쯤 순례자가 앞에 나타나 마음을 쓸어내린다. 작은 가방에 가볍게 차려입은 순례자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공항에서 배낭 무게를 확인하고 집으로 불필요한 물건을 추려서 보냈는데 아직도 배낭이 무겁기만 하다. ‘꼭 필요한 물건만 남긴 게 맞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내 앞의 순례자는 사라지고 다른 순례자가 나타나 있다. 바닥에, 벽에, 돌멩이에, 어디에든 길을 안내해 주는 노란 화살표가 있었는데, 그것 대신 순례자들이 이정표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