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에 35만 원이 남았을 때,
내가 했던 선택.

실패의 끝자락엔

by 장준





Emergency Fund도 바닥이 나고

어느덧 수중에는 딱 35만원 정도만 남아 있었다.


도전하고 있던 일이 성과를 보이기 시작해

이번에만 좋은 결과가 있어준다면,


그간 고생했던 모든 걸 보상받고

나를 서포트해 주었던 사람들에게

보답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겨


예전과는 다르게

일을 구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는데.


결국,

또다시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그간 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금방 털고 일어나는 것에 있어선

나름 도가 텄다 여길 정도로

강해졌다 자만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는 다른 일들까지 겹쳐

가뜩이나 작은 내 코를 더 납작하게 할 만큼

힘듦의 차원이 달랐다.






원치 않은 결과를 받은 후


힘든 감정에 잠식되지 않으려

또 특히나 술에 의지하지 않으려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정처 없이 걷다,


우연히 새로 오픈하는 복싱장의

전단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예전에도 수중에 남은 돈이 얼마 없어

라면 한 박스로 한 달을 버틴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따뜻한 라면, 뽀글이, 생라면 등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음에

감사해 할 수 있었고,


또 지내던 곳에 먹을 것이 동이 나

본의 아니게 7일간 단식을 강행할 때에도


오히려 몸을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는

기회라 여긴 경험이 있던 터라


뒷감당은 미래의 나에게 맡기고

바로 다음 날 아침 해당 체육관에 찾아가

행사중인 30만원+a / 3개월 회원권을 끊어버렸다.


당연히 이 어리석은(?) 결정으로 인해

가뜩이나 실낱같이 얇은 수명을 이어가고 있던

내 불쌍한 계좌에는 단돈 몇만 원 밖에 남지 않게 되었지만 ㅎㅎ


그래도 그게 어디랴 :)






기약없는 결과를 기다리며

두 달여를 맥없이 흘려보냈던 것 같다.


몇 년간 침대도 없이

밤마다 요가 매트 위에서

새우 자세로 잠을 떼우며

불편했을 법도 한데,


살아보려는 본능인 건지

이전보다 누워 지낸 시간이

부쩍 많아졌었다.


그래도

지하 스튜디오를 벗어나

오전부터 복싱장에 나가

운동을 하기 시작하니


(안개처럼 내 생각을 가로막고 있던

스트레스가 줄어든 덕분인지)


다시 희망이 생기고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또 고민과 걱정이 가득해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고

항상 씨름하던 밤에도


고된 한바탕으로

몸이 지쳐버린 탓인지

오랜만에 편히 잠들 수 있었고,


다시 싸이클이 맞아들기 시작하니

건강도 의지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체력과 용기가 덤으로 생기다 보니

내 상황에 할 수 있는 일들에

마구 지원하기 시작했고,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한 번 거절당한 일터에 다시 연락해

일자리를 구하고서는,


자리가 나는 주에는 모두 주 7일을 일하며

하나둘씩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이것도 스토리가 있지만 그건 차후에..ㅎㅎ)






앞으로 여기서 다룰 스토리들이 많지만,

(또 눈치 빠른 분들은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이 글에서 나누고 싶은 결론은


아무것도 없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몸을 움직여 운동을 하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통장에 삼십여만원이 전부였던 나를

한심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인 일들로

원치 않던 상황에 놓이게 되고

그 와중에도 꿈을 쫓고 있던 나로선


헬스장을 등록할 수 있던

30만원 조금 넘는 돈이 있었단 것조차

감사할 따름이었고,


또 그 비용을 고스란히 앗아갈

프로그램에 용기내어 등록할 수 있었음에

진심으로 다행이었단 마음뿐이다.


꼭 헬스장이나 복싱장이 아니어도 좋다.


3개월 프로그램이 끝난 후

오디션과 인터뷰를 준비하며


아침저녁으로 집 주변 블록을

몇 바퀴씩 걷고 뛰기도 했었고


작은 스튜디오 방에서

새벽마다 푸쉬업과 스쿼트를 하기도


또 오전 산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줄넘기나 건물 계단 오르기 등


비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 운동을

계속 이어 나갔었다.






물론,

단지 운동만 시작 한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들이 모두 마법처럼

한순간에 해결되고


내가 원하던 삶이

당장 손에 쥐어지는 건

당연히 아닐 확률이 높다.


그 후에 또 힘든 일에 좌절하고

오랜 기간 낙담하는 시간을

다시 마주할지도 모른다.


그치만,

그 어떤 방법이라도 좋으니


꼭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내가 처해진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하다보면


맘 같지 않은 현실을 잠시 잊고,


날 움직이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던

스트레스와 걱정이 줄어드는 경험을 할 것이고


그 빈 자리를,


앞으로 나아갈 힘과 지혜

혹은 추가적으로 발생할

힘든 상황들을 버티게 해줄

근육과 정신력이 대신 메워주게 될테니,


혹시 지금

자신만의 방 안

부풀려진 생각에 짓눌리고

끊임없이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이 계신다면


눈 딱 감고 움직여

운동하라 권하고 싶다.


날 다시 일으켜 세워줬던 것처럼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당신에게도

분명 헤쳐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길테니.


이 긴 글을 건너뛰지 않고

여기까지 읽었다면, 당신은 분명

지금이라도 당장 일어나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의지력과 힘이 충분하고 강한 사람이다.


나도 안다. 그렇다고 지금 바로 일어나긴 힘들다는 거 ㅎㅎ


그치만 그래도,

같이 한 번 이겨 내 보자. 할 수 있다.

도전하는 우리들 모두 화이팅하길 바라며 :)







체육관에서 찍었던 짧은 영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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