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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에서: 늘 혁신이 없다는 애플을 위한 변명

아이폰17 시리즈와 애플와치, 에어팟 프로 3를 통해 본 애플의 AI

지금 시각은 새벽 3시 50분. 새 아이폰을 기다리며 애플 이벤트를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에어팟 프로 3와 애플의 신형 워치, 아이폰 17과 아이폰 에어, 아이폰 17 프로까지 모든 제품이 공개됐다. 애플 CEO 팀 쿡의 마무리가 끝나고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언론이 쏟아낼 뻔한 헤드라인 말이다. "애플의 혁신은 없었다", "시장은 실망했다" 같은 기사들.


우리 언론이 애플에 호의적이지 않은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광고주 이슈도 있을 것이고, 애국심의 발로일 수 있다. 내지는 언론인 개개인의 취향일 수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본질이 아닌 편향적인 취사선택이 아닐까 싶다. 인용하는 외신 기사조차도 부정적인 입장만 선별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하지만 애플이라는 회사가 가진 사업의 본질을 보고 이 행사를 보면 어떨까 싶다.


내가 본 애플은 매우 보수적인 회사다. 그리고 느린 회사다. LTE로 넘어갈 때도, 5G로 전환할 때도 삼성이나 화웨이, 샤오미 같은 안드로이드 진영이 최신 통신 기술을 적용할 때 애플은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 혁신이 없고 느리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애플의 진짜 강점은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창조하는 혁신자가 아니라, 다른 사업자들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그 이상을 창조해 내는 완성자라는 점이다. 마치 일본이 카레를 자국의 음식으로 만들고, 오스트리아의 슈니첼을 돈가스로 재탄생시킨 것처럼 말이다.


대신 재탄생에도 애플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업의 본질을 지켰다. 여기서 애플이 가진 사업의 본질은 하드웨어를 판매하고, 시장에 팔린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확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확장의 근간에는 스티브 잡스가 늘 강조하던 "저절로 자연스럽게 구동되는(It Just Works)" 생태계와 사용자 경험이 있다.


지난 8월 애플의 2분기 실적을 보면 아이폰이 445억 8200만 달러로 13.5% 성장했고, 서비스 부문이 274억 2300만 달러로 13.3% 증가했다. 반면 웨어러블은 74억 4000만 달러로 8.6% 감소했다. 아이폰보다도 에어팟 프로 3나 애플 워치 발표에 그렇게 힘을 주고 부사장들이 대거 출동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참고로 지난 8월 애플의 팀 쿡 CEO는 AI를 애플이라는 기업의 생애 주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로 규정한 바 있다. CEO의 발언, 특히 투자자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하는 발언은 고도로 계산된 발언이다. 그는 당시 애플이 판매하는 모든 기기와 플랫폼에 AI를 내장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며, 애플 인텔리전스를 통해 개인화된 AI를 제공한다고만 밝혔다. 단 방향은 있었지만 "어떻게(How)"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EC%8A%A4%ED%81%AC%EB%A6%B0%EC%83%B7_2025-09-10_%EC%98%A4%EC%A0%84_2.12.58.png?type=w800 에어팟 프로 3의 새로운 기능, 출처: 애플

오늘 그 "어떻게(How)"를 볼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실시간 번역 기능이었다. 같은 에어팟 프로 3를 착용한 사람들끼리 실시간으로 번역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에어팟 프로 3를 켜면 상대방의 언어가 번역되어 귀로 들리고, 나의 말이 아이폰으로 보이는 공상영화 같은 일을 구현했다. 마치 설국열차에서 보던 그 장면처럼. 물론 그 근간에는 AI가 있을 것이다.


헬스케어 분야에서의 접근도 주목할 만하다. 애플의 헬스케어 관련 임원들이 대거 출동해서 애플 워치와 에어팟의 신고, 구조 기능을 강조했는데, 심장 관련 질환은 현대의학에서 가장 까다로운 영역 중 하나다. 암이나 AIDS와 달리 시간을 다투는 응급상황이고, 혈관 문제로 갑자기 사람이 떠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 제공하는 고혈압 알림 기능이나 응급 신고 기능은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애플은 자사가 보유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AI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양질의 데이터"를 한 번 상기하게 된 부분이었다.


SE-d73192d7-9de0-40d2-8726-c59b2a0af7d8.png?type=w800 출처: 애플

이 발표에서 애플이 강조하지 않았지만, 중요했던 점은 이 모든 기능들이 '온디바이스 AI'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대규모 언어 모델을 단말기에서 구동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배터리와 전력 문제다.


개인적으로 애플 워치를 사용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가 배터리 충전이 느리다는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는 점이었다. 그리고 더울 때 아이폰을 쓰다 보면 발열 때문에 종종 멈추는 경우도 있었다. 겨울철 스마트폰이 손난로가 되는 현상을 생각해 보면, AI를 많이 사용하게 될 때 온 디바이스에서 대규모 언어 모델을 돌리는 상황에서 전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프로세서에서 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처리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 점을 애플은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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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지점에서 애플의 진짜 전략이 드러난다. 애플은 사실상 엔비디아와 같은 팹리스 반도체 사업자로서 자체 칩을 설계해왔고, 그동안 축적된 역량이 이제 발현되면서 전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자사의 로드맵에 맞는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폰 17이나 아이폰 에어, 아이폰 17 프로에서 이런 기술들이 동일하게 적용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충전 시간 개선도 결국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온 결과다.


카메라 기능의 진화는 더욱 흥미롭다. 아이폰 17에 도입된 정사각형 센서가 핵심인데, 이는 단순한 기술적 개선을 넘어선다. 사용자가 세로로 찍을지 가로로 찍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객체 인식을 통해 자동으로 최적화한다는 것이다. 셀카를 찍기 위해 폰을 가로로 돌리는 번거로움 없이, 세로로 잡은 상태에서도 가로 모드 촬영이 가능하다는 것은 사용자 경험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더 주목할 점은 단체 촬영 시 AI가 자동으로 시야각을 확장해 모든 사람을 프레임에 담는다는 기능이다. 그리고 전면 카메라와 후면 카메라를 동시에 녹화하는 듀얼 캡처 기능까지 더해지면, 사람이 할 영역이 더 줄어들고 그 분위기에만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AI 사업자들이 늘 강조하는 "본질"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이면에는 애플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 전략이 있다. 정사각형 센서라는 하드웨어 혁신과 AI 기반 객체 인식이라는 소프트웨어 기술이 만나 "그냥 저절로 된다"라는 애플다운 경험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품은 "창작자 경제"가 중요해진 시대적 맥락에 맞춘 것으로 보인다.


사실 본지가 있는 성수동. 성수동이 팝업의 성지로 떠오르는 배경에는 기업들이 기존 마케팅 예산을 "팝업 스토어"라는 형태의 자발적 입소문을 기반으로 한 마케팅 예산으로 돌린 탓도 크다. 개개인이 창작자가 되는 이 시점에서 대중들은 편하게 사진을 찍고 저절로 구도를 맞춰주는 도구에 대한 수요가 커질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AI가 지원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체 설계 칩, 그리고 빠른 충전이나 배터리까지 애플이 노리는 시장이 무엇인지 너무 자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시장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미국 동부 시각 기준으로 발표 시작 시점인 1시에 236달러였던 주가가 에어팟 설명할 때는 상승했다가, 아이폰을 설명하면서 확 떨어졌다.


특히 급락한 순간이 2시 5분부터인데, 바로 아이폰 17 프로 발표 때였다. 시장은 애플 워치나 에어팟에 대해서는 기대감을 보였지만, 애플이 드러낸 AI에 대해서는 여전히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


애플스러운 발표였다. 올해로 출시 18년째를 맞은 신형 아이폰은 단순히 보기엔 혁신이 없어 보일 여지가 많았다. 그럼에도 맥도날드 빅맥 버거의 맛이 뉴욕이든, 서울이든, 키이우든 동일하듯 스티브 잡스 때부터 이어온 애플의 철학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일지도 모르겠다. 온 디바이스 AI라는 방향성을 제시한 애플이 과연 이 전략으로 다음 18년을 또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인가. 시장이 보인 냉담한 반응이 단순한 실망인지, 아니면 새로운 변화의 전조를 읽지 못한 것인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애플이 던진 화두에 안드로이드 진영은 늘 반응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 개선이 이뤄졌고, 기술은 진보하고 발전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류는 그렇게 발전해왔다.


혁신이냐 정체냐의 이분법적 판단보다는, 조용히 변화하는 기술의 궤적을 따라가 보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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