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눈을 간지럽혔다. 밝디밝은 햇빛 때문인지 아니면 설렘 때문인지 눈꺼풀이 번쩍 뜨였다. 오랫동안 고대하던 하동으로 여행가는 날이다. 일반적인 여행이었다면 이렇게 기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행사의 2~30명 단체로 가는 투어를 예약했다. 나만 혼자 온 사람일까 봐 두려움도 있었지만 혼자서 단체투어를 가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앞섰다. 왠지 혼자 가고 싶었다. 하동 투어는 새벽 6시 시청역에서 시작했다. 시청역 2번 출구로 올라가니, 지네 몸통처럼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하동 가는 버스만 있는 게 아니리라.
줄지어 서 있는 버스를 2대 지났을까, 버스 전광판에서 ‘나만 몰래 가는 하동 투어’라고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내가 예약해 놓은 투어이다.
“반갑습니다, 고객님. ‘나만 몰래 가는 하동 투어’입니다.”
노란 모자에 파란 조끼를 입은 젊은 남성이 손을 팔랑거리며 반겼다. 예약 번호를 보여주니, 옆으로 비켜서며 버스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자리에 앉아 있으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눈이 절로 감겼다. 이런 나의 단잠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반갑습니다, 고객님. 저는 오늘 투어를 도와드릴 가이드입니다. 투어 중간중간 제가 퀴즈를 낼 텐데 잘 맞추시는 분께! 소정의! 선물이 있으니 잘 참여해 주세요!!”
“네~~!”
나는 창가에 앉아 있었는데, 내 옆자리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 옆을 힐끗 보니 빨간색 등산점퍼를 입은 여성이 야무지게 선캡 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햇빛이 강한 터라 아주 단단히 준비한 듯했다.
24명을 실은 관광버스는 고속도로를 끊임없이 달려 정오에 이르러서야 하동에 도착했다.
“여러분, 자 이제 하동에 도착합니다. 즐거우시죠?”
“네~~!”
이번에도 역시나 옆의 목청이 큰 아까 그 아주머니였다. 자리를 잘 못 잡았다고 후회했다. 살짝 흘긴 눈으로 째려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이내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 지진이라도 난 걸까.
“아가씨, 하동 다 왔다고. 이제 내릴 거래.”
아까 그 아주머니가 나를 흔들고 있었다.
“네, 알아요.”
자다 깨 짜증이 나서 나도 모르게 살짝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들 배고프시죠? 금강산도 식후경! 저희의 첫 순서는 바로~ 식사 되겠습니다! 하동 하면 어떤 음식이 떠오르시나요?”
“하동에 뭐가 유명한지 알아?”
“저야 모르죠. 아, 차 유명하지 않나?”
투어 가이드가 질문했고 옆에 있던 아주머니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자, 바로 대통 밥이랍니다! 대나무로 밥을 지은 대통 밥에 지리산에서 자란 채소로 만든 나물로 만들어진 한상차림이랍니다. 자, 좋으시면 박수 한번 주세요~”
짝짝짝 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공기를 타고 흘러넘쳤다.
끼리끼리 식사를 따로 할 줄 알았는데 기다란 테이블 2개에 12명씩 나눠 앉았다. 좌식 테이블에는 대통 밥을 제외하고 이미 한 상 가득 나물들과 생선구이 갈비찜, 된장찌개, 미역국이 차려져 있었다. ‘나만 몰래 가는 하동 투어’ 일행이 자리에 앉자, 새빨간 앞치마를 두른 식당 차리미가 대통밥을 들고 들어왔다. 연두색 대나무 통에 담긴 밥이 내 앞에 놓였다.
“여러분, 다들 대통 밥 받으셨죠? 안 받으신 분 손들어보세요. 좋습니다. 다들 맛있게 드세요.”
투어 가이드의 말을 끝으로 씹는 소리를 제외하곤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들 대통 밥을 먹느라 정신없는 것이리라.
대통 밥뚜껑을 여니, 오랫동안 갇혀 있던 하얀 안개가 올라왔다. 대통 밥 안에는 밤, 콩, 대추 등 다양한 재료와 함께 쪄낸 밥이 있었다. 내 젓가락은 지독하게도 갈비찜만을 공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