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그려낸 거짓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 후기

by dilettante

*주의사항*

해당 글은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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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말이 맞았어.
가장 위험한 동물은 인간이야!!

인간은 생존을 위해 윤리와 신념을 버리는 존재일까.

인간 또한 동물이기에, 생존 본능을 따른다.
그래서 인간은 생존 앞에 누구보다 무서워질 수 있다.

여기서의 무서움은 잔인함이 아니다.
잔인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타락했다는 자각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다는 자기 설득의 형태로 나타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구명보트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한다.
적자생존, 약육강식. 배 위에 남은 건 오직 그뿐.
그건 오렌지주스도, 블랙앤화이트도, 점박이표범도 모두 똑같다.

살아남길 원한다면, 누군가를 먹어야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 또한 구명보트 위의 다른 동물들과 다르지 않다.
인간이 특별하다고 믿어온 이유들은, 이 보트 위에서 가장 먼저 침몰한다.

배 위에 오른 이들은 모두 생존의 단계를 거치고 있는 존재다.
배 위에서는 윤리도, 신분도, 종교도 모두 같은 무게로 가라앉는다.
물 위에 남는 것은 오직 살아남겠다는 의지뿐.

그리고 파이는 가라앉는 것들을 붙잡지 않기로 선택한 인간이다.

전부 다 말씀드릴게요.
제 이야기를 듣고 나면, 당신도 믿게 될 테니까요.

종교는 사지에 내몰린 인간이 붙잡을 수 있는 마지막 구명줄이다.
절대적인 누군가에게 의존함으로써 고독을 상쇄한다.

식수를 얻든, 음식을 얻든 파이는 늘 신에게 감사를 표한다.
대상은 바뀌지만, 내용은 같다.
심지어 파이는 생존을 위해 살생을 저지른 순간조차도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신이여 저를 도우소서!

제가 가진 윤리를 하나씩 버리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믿음은 점점 더 강해진다.
그러나, 파이는 모든 윤리를 스스로 감당하지는 않는다.
제 안에 있던 잔혹함의 몫을 리차드 파커에게 넘긴다.

파이의 상태는 일종의 정서적 해리에 가깝다.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잔혹함을, ‘나’가 아닌 존재에게 떠넘기는 방식이다.
그래야만 그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결국 생존을 위해 투쟁하게 된 순간, 믿음은 자연 발생한다.
인간은 혼자서 버틸 수 없을 때, 자신보다 큰 존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 존재는 구원이기 이전에, 책임을 잠시 내려놓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품격은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는 유일한 것.

그러나 파이가 살아남는 순간,
품격은 생존을 막아서는 기준이 아니라,
살아남은 이후에야 다시금 되돌아오는 질문이 된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순수했던 파이가
점차 생존을 위해 뭐든 할 수 있게 된 것은 과연 진화인가, 퇴화인가?
윤리를 내려놓았으면서도 종교를 갈구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그럼 말해주실래요? 어느 이야기가 더 좋으세요?
신을 믿는다는 것도 같아요.

파이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야기는 피륙이 되어 현실 위를 덮는다.
잔혹한 현실에서 동화 같은 여정으로,
동화와 같은 여정에서 삶의 연명으로.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중요치 않다.
결국 믿음이란 두 이야기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여기서 묻는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며 살아왔는가.
그것은 생존이었을까,
아니면 살아 있기 위해 선택한 가장 그럴듯한 거짓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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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에스엔코, 2026)

연극을 보다 왜인지 울컥하는 순간들이 있었다면
그건 박정민 배우의 연기력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것 때문이었을까?

나를 후려친 건, 결국 내가 선택해 온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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