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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기다리는 아이
by 체리 Apr 28. 2018

여덟 번째

발을 디디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 것들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죽어도 몰랐을 것들이 있다. 내가 '요새 치료받아'라고 말하자 '걱정하지 마, 오빠도 아팠어.'라고 말했던 우리 오빠의 담담했던 말투나 '나도 요즘 매일 울어.'라고 말했던 친구의 일상 같은 것. 아무렇지 않게 '오빠도 군대에 있을 때 우울증이 심했어.'라고 말했던 내 사촌의 어른스러운 옆얼굴 같은 그런 것. 청년 우울증이 심각하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라니. 나는 올해로 28살이다. 대체 우리나라의 2030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사뭇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로 '사실 나도'라고 말해준 사람들이 주위에 많았다. 충격이랄 것까진 없겠지만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완전히 모른 채 넘어갔겠지'라는 생각에 슬퍼지기에는 충분했다. 이것도 성장의 일종인가? 성장기는 옛날에 모두 지나갔을 텐데? 혼란스럽기도 했다. 특히 참을 수 없이 슬퍼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더 이상 없는, 그런 나이라는 것 때문에 몸서리쳐지게 외롭기도 했다. 아니, 문제는 견딜 수 없이 슬픈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게 아니라 내가 아무 도움도 청하고 싶지 않다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팔을 깨물어 가며 터져 나오는 신음을 참을지언정 힘든 티를 내고 도와달라고 애걸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 내게는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기간만큼 약을 먹고 나니 괜찮더라는 오빠의 말에 이 사람의 고통은 이미 흘러간 후구나,  하는 것들이 전해져 왔다. 오빠라는 사람이 원래 섬세하고도 담담한 성격이지만 나도 그 우울증이라는 짐승을 마주한 적이 있노라며 꼭 필요한 최소한의 단어만으로 선언하는 오빠의 모습을 보니 '왜 말해주지 않았어?'라는 뻔한 말마저도 나오지 않았다. 이 사람은 이제 우울증이라는 짐승으로부터 자유로워졌는데, 보통 힘든 과정이 아니었을 텐데, 이미 끝난 그 일을 나도 '오래전에 흘러간 일'로 대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정말 그게 최선이었는지는 지금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지만, 같은 시험을 지금 이 순간 다시 마주하게 되어도 정확히 같은 선택을 내릴 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내 고통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 우울증도 최종장에 접어들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놀라울 정도였다. 때는 지나간 금요일로, 나는 추적추적 비 내리는 압구정 거리를 걸어 면접을 보러 갔었다. 가는 길에는 '거 참 멀기도 하군'이라고 투덜거렸으나 면접을 보고 나오는 길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떡집 체인이 그 회사 근처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곧 '대단한 회사였군'이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2차 면접은 떨어졌지만 압구정에 다시 가면 꼭 그 떡집을 찾아갈 테니 수확은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떡집이 아니고,  면접관이 내게 "작년 10월에 파리에서 돌아온 후로는 무엇을 했나요?"라고 물었을 때였다. 생각의 흐름을 의식하기도 전에 답은 나와 있었다. '죽을 생각을 하고 있었죠. 죽을 곳을 찾고 있었어요.' 절대 입 밖으로 낼 수는 없는 말이었지만, 동시에 있'었'죠,라고 과거형으로 말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워서 면접 중인데도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먹는 걸 좋아하는 내가 다음 끼니보다 '죽자'는 생각을 더 자주 했던 그 시기의 일이 아주 멀지는 않더라도, 그렇게까지 가깝지는 않은 과거의 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멀면 어떻고 가까우면 또 어떻단 말인가. 나는 '죽고 싶었'던 작년 10월 무렵의 일들을 어쨌거나 '과거'로 의식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순간을 위해 고추장 먹은 닭처럼 웩 웩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브린텔릭스를 삼켜댄 거란 말인가. 나는 작년 10월 한국에 돌아온 후로 이렇다 할 영리 활동이며 변변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면접 도중 내 가장 컸던 고통이 과거의 한 부분이 되었다는 걸 깨달은 그 순간 나는 '해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내가 태어나 싸워본 것들 중 가장 질기고 해로웠던 것을 떠나보낼 준비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우울증에 걸린 경험을 긍정하는 건 아니다. 안 걸릴 수 있으면 안 걸리는 게 최고다. 게다가 내가 이렇게 아파 봤으니 남도 잘 위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우울증에 한번 걸려 봤다고 해서 더 괜찮은 위로를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긴 하지만 조금은. 아주 조금은. 내가 이 길에 서보지 않았더라면 절대 보지 못했을 어떤 고통들을 마음에 품을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나의 해가 멀리서나마 조금씩 내 몸을 덥혀주고 있다는 사실에도 한없는 감사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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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도 여기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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