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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기다리는 아이
by 체리 May 04. 2018

아홉 번째

빨간불은 예고도 없이

이 글은 어제 썼다. 아래 글에 언급한 면접은 평이하게 진행되었고, 다 끝난 후에는 회사 측에서 원하는 능력에 비해 제시한 임금 수준이 많이 낮아서 충격 반 분노 반인 상태가 되었다. 그러고 난 지금은 덜 우울하다. 이상한 부분에서 면접 본 회사에 도움을 받았다. 그래도 오늘은 다른 일자리를 더 찾아보고 커버레터도 쓸 만큼 생산성이나 감정 면에서 회복이 되었다. 때로 잘 지내다가 한 번씩 이렇게 고비가 오면 그날의 심리상태를 적는 것 정도는 좋다고 생각하지만 '해를 기다리는 아이' 매거진이 워낙 시간 순서를 무시하고 진행이 되었다 보니 다음 회차, 열 번째부터는 좀 더 시간 순서를 따르면서 진행을 하려 한다. 

 내일은 면접이 있다. 그리고 어제는 의기양양하게 애인한테 편지를 썼더랬다.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과거에서 내 자살 충동을 발견했노라고. 자랑스러웠다. 6개월 넘게 복용한 약도 이제 끊을 날이 다가오는 건가 싶었고, 치료도 이제 막바지이겠거니 확신했다. 얄궂게도 그 이메일을 보낸 바로 그날의 자정, 불안장애가 다시 찾아왔다. 이렇다 할 대상 없는 공포에, 이젠 겨울이 다 지나서 난방 텐트처럼 숨기 좋은 공간도 없는데 빨리 이불 밑으로 들어가 숨지 않으면 이렇게,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겠지 싶은 덧없는 마음이 꽂혀 왔다. 나는 매일 밤마다 10mg짜리 렉사프로를 복용한다. 전날 밤 약을 먹고 오늘 밤 분량의 약을 먹기 전 이유 모를 불안 때문에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했던 밤이라면 무수히 많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젯밤까지도 나는 꽤 괜찮았다. 대수롭지 않게 어젯밤 분의 약을 삼키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 수면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줄 거라 기대하면서. 큰 사건 없이 지내온 지난 2달여의 시간은 내게 이 정도 기대를 심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잠 속을 헤매던 시간이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뼈아팠다. 이런 날이 처음은 아닌데도. 우울증은 약 잘 먹고 잘 쉰다고 해서 꼭 회복을 약속해 주지는 않는 짓궂은 병이다. 이제 밑바닥에서 어느 정도 기어올라왔다 싶을 때 내 손을 밟아서 다시 저 멀리로 떨구는 건 또 어떻고. 그런 날이 치료의 매 단계에서 몇 번은 반복된다. 그것들은 내가 치료에 들인 시간과 나름의 노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느끼게 하고, 또 모든 게 허사인 것처럼 느끼게도 만든다. 그것들은 사실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면 거짓말처럼 책상 두 번째 서랍에서 튀어나오는 비싼 만년필처럼, 내 노력과 전문가의 도움으로 빚은 시간은 어디 가지 않는다. 당장 오늘 내 눈에 띄지 않은 것뿐. 

 이미 몇 차례 경험으로 인해 치료가 원점으로 돌아간 게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오늘 같은 날은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무력감을 견뎌내기가 힘이 든다. 왜 하필 애인한테 즐겁게 이메일을 써 보낸 다음 순간이어야 했는지, 왜 그 메일을 쓰기가 무섭게 이 날이 와서 얼마만인지 모를 자살에 관한 생각을 떠올리게 된 건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다음 병원 방문일은 대체공휴일인 월요일이다. 내가 또 죽고 싶었다고 말을 하면 치료 기간은 늘어나나? 그렇다면 말하고 싶지 않다.-그래도 말은 하겠지만- '언제까지', '얼마나 더' 이 둘은 늘 예상치 못하게 찾아와서 내 머릿속을 잔인하게 긁어놓고 가는데, 오늘도 그렇다. 팔다리는 무겁고, 홀로 깊은 진흙 늪에 잠긴 것처럼 움직이기가 힘들다. 아마 6개월 전이었더라면 이미 잠자리에 들기 전에 참지 못하고 와앙 울음을 터트렸을 텐데 우는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데에서 조금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살아있다는 사실만큼 행복하고도 무서운 것을, 나는 달리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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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도 여기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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