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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기다리는 아이
by 체리 May 12. 2018

열 번째

내가 구토 요정이 되기까지

이번 주에는 딱히 크게 구겨진 종이가 없어서 제목 배경 이미지로 쓰기 위해 다 먹은 약봉투를 구겼다. 


이번 주부터는 다시 치료 얘기로 돌아가 보려 한다. 지난주 분량 연재물을 쓸 때만 해도 굉장히 울적했는데 이번 주는 많이 좋아졌다. 내가 많이 좋아졌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건 언제나 사소한 사건들이다. 예를 들자면 치료를 시작한 초기에 나를 우울하게 만든 것들이 '내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음', '아무 감정도 못 느낌', '이렇게 사느니 그냥 사라져 버려야 될 것 같은데 이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답도 없는 것 같고 아무튼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뭘 할 에너지 자체도 거의 없음'이었다면 치료가 거의 막바지에 접어든 지금은 '어제 영화관에서 미끄럼틀 타고 싶었는데 못 탐', '붓펜 다 써서 사려 그랬는데 잊어버리고 그냥 집에 옴' 정도다. 감정의 폭 자체도 우울보다는 시무룩에 가깝고, 무엇보다 예전처럼 잘못된 일에는 지랄할 에너지를 되찾아가는 자신이 보기 좋다. 지랄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기보단 치료 전의 모습을 찾아간다는 게 어떤 발전을 의미하는 듯하여 안심이 되고 행복하다. 


 앞서 '여섯 번째'에서 내가 초기에 복용한 약이 브린텔릭스였고, 5mg로 시작해서 10mg로 늘려나갔는데 메슥거림 때문에 고생을 아주 많이 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다. 보통은 어느 정도, 그러니까 몇 주 정도 복용을 하면 몸이 적응해서 메슥거림을 덜 느끼게 되고, 증량을 할 계획이 있다면 환자가 익숙해진 단계에서 함량을 올려 처방하게 되는데 나는 브린텔릭스라는 약을 복용하는 내내 메슥거림에 시달려야만 했다. '왜 꼭 브린텔릭스여야만 하나'라는 생각에 한때 다른 병원을 방문해보기도 했는데 그곳에서는 프로작이라는 다른 약을 주었다. 검색 엔진을 이용해 찾아보니 프로작이라고 해서 브린텔릭스보다 부작용이 덜 심한 것 같지는 않고 새 병원에서 내게 준 설문지는 상당히 내 신용을 깎아먹는 것이었기에-기억나는 질문으로는 '남성이라는 단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꽃다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이 있었다.- 나는 처방받은 프로작을 버리고 브린텔릭스로 돌아갔다. 

 나는 어려서부터 멀미를 심하게 하는 편이었다. 결국 차 = 구토라는 공식이 어린 나의 두뇌 속에 완성되었고, 젊은 시절의 엄마는 나의 격렬한 반항을 막아 가며 차에 태우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요즘은 요령도 생기고 몸도 성장한 만큼 많이 나아졌지만 브린텔릭스의 부작용은 그때 그 시절의 멀미와 메슥거림을 완전히 재현하는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브린텔릭스를 먹기 전에 고봉밥을 먹어보라고 충고했지만 소용없었다. 오전 9시에 약을 먹고 나면 오후 1-2시부터 메슥거림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몇 시간 정도 지속되었다. 그 구토감이 없어질 때까지 나는 술을 진탕 마시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집앞 역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느라 물미역처럼 적신 머리를 변좌에 붙이고 새벽 내내 구토를 했던 2016년 1월 1일과 완전히 같은 자세로 우리집 변기 앞에 붙어있어야 했다. 엄마는 산책을 나갔다가 너구리에 물린 개처럼 침을 질질 흘리며 변기 앞에서 구르륵 소리를 내는 내 모습에 '이 약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매번 '이번 주만 참아 봅시다'라고 말할 뿐 처방은 몇 개월 동안 변하지 않았다. 요즘은 내 증상이 호전된 만큼 처방도 바뀌어서 구토감에 고통받지 않아도 되지만, 브린텔릭스와 나는 정말 안 맞았던 게 아닐까. 

 그런 탓에 지하철을 탈 때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남 앞에서 토하기는 죽어도 싫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약을 아무리 일찍 먹고 밥을 듬뿍 먹어도 구토감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잠실에서 지하철을 타면 2-3 정거장도 못 가서 신호가 왔다. 나는 늘 다섯 정거장도 채 못 가서 지하철에서 내려 구토감을 진정시키다 다음 열차를 타고 목적지로 가야 하는 처지였다. 

나는 우울증을 상당히 단순하게 생각했다. 우울증이라는 병의 회복 과정이 다친 몸의 회복 과정과 비슷할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한때는 내버려 두면 알아서 낫는 감기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약 먹고 푹 쉬면 전자레인지 즉석밥처럼 땡 하고 완성되는 거겠지 싶었다. 이 생각이 얼마나 안일한 것이었는지는 매 치료 과정의 고비를 겪고 나서 깨달았다. 

 실제 회복 과정은 부작용과의 사투였고, 치료 과정 상의 진전은 늘 매 과정이 끝난 뒤에야 실감이 났다. 몸의 부상은 매일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불안감이 덜한데, 우울증 치료는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어, 그러고 보니까 예전처럼 우울하진 않은데?'라는 식으로 효과가 나타난다. 약물 요법이라고 하면 꽤나 강력할 것 같은데, 이 약물 치료가 주는 효과를 환자가 실감하기까지는 1-2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불안감에 빠지기도 쉽고, '이깟 게 무슨 소용이야'라는 심리에 빠지는 일도 많다. 부작용의 개인차 역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본인에게 맞는 약을 찾는 데에만 상당한 시간을 소요하는 경우도 많다. 보이지 않는 것과의 싸움이 얼마나 고되고 지난한지 엿보는 매 순간이었다. 




 얼마 전에 피부과를 방문했다. 이상하게 온몸에 원인 모를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서였 다. 피부과 원장님은 나한테 계속 복용하는 약이 있는지 물었고, 나는 별 망설임 없이 '우울증 약이요'라고 대답했었다. 복용 기간을 묻는 질문에는 6개월이 넘은 것 같다고 말했다. 내 대답에 조금이지만 놀란 듯 보였던 피부과 원장님은 "먹고 나니까 괜찮아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이 원장님이 내게 '힘들었겠네' 나 '힘내요'가 아닌 반응을 보인 신선한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병원은 우연히 길가에 있길래 들어갔을 뿐이고 집 근처도 아니기 때문에 다시 갈 일은 없겠지만, 나도 다른 사람의 인생에 저런 신선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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