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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기다리는 아이
by 체리 Apr 09. 2018

여섯 번째

일상 브레이커 항우울제

 처음으로 처방받은 약은 브린텔릭스였다. 일단 5mg에서 시작해서 몇 주 후에 10mg로 증량하는 방식으로 치료가 시작됐다. 밤에는 가벼운 불안장애 때문에 2-3시까지 버티다가 잠을 청했고, 그 때문에 밤에는 따로 멀타자핀을 복용했다. 처음으로 약을 처방받는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약봉투에 병원 전화번호만 달랑 적혀있고 어떤 약물을 얼마만큼의 용량으로 처방받았는지에 관한 정보를 전혀 듣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집에 와서야 깨달았고, 정말로 이 약을 먹어야 하는지 깊은 고민에 휩싸였다. 병원에 전화를 해봤지만 내가 어떤 의사한테 진료를 받았고 오늘 몇 시에 방문했는지 설명해도 약에 관한 정보는 직접 방문해야만 알려줄 수 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이런 답변은 불안감을 가중시켰고, 불안감은 의료 관련 일을 하는 친구가 하나는 위장 보호제, 하나는 브린텔릭스라는 식으로 설명해준 후에야 가셨다. 친구는 신경정신과에서는 이런 식의 약 처방이 드물지 않은 일이라고도 말해 주었다. 이렇게 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불안함을 품었던 배경에는 신경정신과를 방문한 것이 처음이라는 사실이 가장 크게 작용했고, 그 외에는 아는 사람의 일가족이 스틸녹스계 약물의 부작용을 호되게 겪은 탓에 '혹시 처방받은 약이 스틸녹스 계열인데 내가 부작용을 심하게 타면 어떻게 하나?'라는 불안감도 일정 부분 작용했다. 정신과에 대한 나의 무지는 끊임없이 불안과 공포로 연결되었다.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죽자', '저건 어때', '저기 있는 (도구 이름) 으로는 (방법)으로 죽을 수 있을 거야.' 같은 생각들이 사그라들었다. 덮쳐오는 생각들의 빈도가 점점 줄었고, 매번 그런 생각에 저항하느라 소모해야 했던 에너지들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래부터 위가 약한 편이기 때문에 메슥거림-은 대부분의 약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라지만- 을 동반하는 브린텔릭스를 장기복용해야 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울적한 것이었다. 하다못해 비타민도 6개월을 복용하고 나면 1-2개월은 위장이 쉬도록 휴식기를 가지는데 먹고 나면 3-4시간은 메슥거려서 뻗어 있어야 하는 브린텔릭스를 5-6개월은 꾸준히 먹어줘야 한다니. 물론 이 약의 복용 여부는 다른 것도 아닌 생존에 직결되어 있으니만큼 불만을 품을 처지가 아니었지만 씁쓸한 것은 씁쓸한 것이었다. 


 약의 복용은 매일의 시간표-아침식사 이후 브린텔릭스를 복용한 후 2-3시간이 경과하고 나면 어김없이 메슥거림이 올라와 이른 오후에는 늘 바닥에 누워있었다. 이런 증상은 사람마다 정도는 있어도 서서히 나아진다고 들었으나 나의 경우에는 몇 달이나 지속되었다.- 뿐 아니라 음주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작년 한 해 파리에서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생활하면서 이곳 사람들이 안주를 필수로 곁들여 먹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한순간이었다. 안주라고 해봐야 생햄이나 치즈나 빵 같은 것이었고, 그것은 다양한 안주와 함께하는 풍요로운 음주의 지평에 한없이 익숙해진 이 한국인에게 상당히 잔인한 현실이었다. 무엇보다 늘 먹던 안주가 없으니 전보다 더 빨리 취해서 추태를 보이기 일쑤였다. 그래서 작년부터 음주를 제한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나 찔끔찔끔 아이스크림에 뿌려 먹던 위스키나 주말에 바삭하게 구운 소시지에 곁들여 마시던 한잔의 맥주까지 싹 끊어내야 한다는 사실은 가혹했다. 하지만 회식이 끝나고 아무렇지 않게 동료들한테 인사한 후 집에 돌아와 문을 잠그고, 바닥을 버르적거리며 엉엉 울었던 날의 희미한 기억은 우울증 치료 기간 동안 절대 술을 마셔선 안된다는 확신을 주었다. 아마도 이 증상에는 개인차가 있을 것이나 나 같은 경우에는 음주가 감정의 진폭을 말도 안 되게 넓혀 놓았다. 그래서 사람들과 있을 때에는 상당히 즐거운 듯 쾌활한 모습을 보였지만 일행들과 헤어져 집에 와 문을 잠그고 나면 어김없이 무너져 내렸다. 누구에게, 무엇 때문에 미안한지도 모르면서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소리치며 목 놓아 울었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목 놓아 울다가 씻으러 들어가려고 파리 아파트의 싸구려 이케아 옷장 문을 열었는데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아 쉽게 빠지는 손잡이 쪽 목재에 이마를 강타당한 후로는 나의 건강과 금전적 손실 위험의 방지를 위해 꼭 술을 끊기로 다짐했다. 

 위에 적은 부분들은 우울증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의 일이다. 기간으로 따지면 한 5개월 전쯤의 일이 아닐까(파리 집에서 살던 무렵의 이야기는 더 전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적어나갈 이야기는 불과 며칠 전에 벌어진 일이다. 나는 의사로부터 한 달 분량의 약을 처방받아 출국했다. 그렇기 때문에 진료나 상담은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중단되었지만 치료 자체는 나름대로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우울증은 치료 초기에 비교했을 때 상당히 나아졌고, 자살 충동이 자취를 감춘지는 몇 달이 다 되어가고. 가끔 호르몬이 미쳐 날뛰는 시기에 기분이 저조해지는 것을 빼면 전반적으로 좋아졌다는 게 잘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며칠 전의 경험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날 아침 눈을 뜨기 전에 나는 서로 다른 세 종류의 꿈을 꿨다. 셋 모두 상당히 음산하고 기괴하고 이상할 만큼 선명한 꿈이었지만 문제가 된 것은-어디까지나 꿈속의 이야기이다.- 나의 조부모와 사촌을 포함한 일가친척이 오빠와 내 눈 앞에서, 한 살인마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 꿈이었다. 꿈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한 15~18년 전에 일어난 것 같았지만 꿈속의 나는 이 사건이 15년 전에 일어났는지, 20년 전에 일어났는지 혹은 한국에서 일어났는지, 워싱턴-정말 뜬금없지만-에서 일어났는지 기억해내지 못했다. 사건의 생존자인 내 오빠에게 가서 물어보았지만 오빠는 그 사건에 대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꽤나 유명해서 범죄학 교과서나 오래된 신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얼마간의 조사 끝에 당시 우리 집의 가계도와 희생자와 생존자(우리 남매)들의 당시 나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4살, 오빠는 7살일 때의 이야기였다. 여차저차 한 끝에 나는 그날의 기억을 완전히 되찾았고, 조부모의 온갖 관절이 있을 수 없는 각도로 꺾여나가거나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지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생존본능에 패배하는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해냈다. 그리고 나와 오빠가 조금이라도 구출되기까지 시간을 벌려고 살인마가 살려주려는 듯한 기색을 보일 때-물론 함정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사촌을 대신 보내 그들을 사지로 내몰았던 것까지 기억해냈다.  

보통 때라면 거 참 더러운 꿈을 꿨다고 생각하면서 흘려보냈을 일이다. 그런데 이날 눈을 뜬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마실 커피를 불에 올리면서도 불안감에 등허리가 딱딱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우리 부모님은 살아있고, 양가의 조부모님은 오래전에 타살과는 관련 없는 방식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조금만 생각해봐도 말도 안 되는 꿈이라는 건 뻔했지만 그날 나는 오전부터 이른 오후까지 내내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셨었나?', '그런데 어디서 돌아가셨지?'라는 생각에 벌벌 떨면서 도통 침대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날이 포르투에 가기 전전날이라 할 일이 꽤나 많았음에도 불안감 때문에 침대 밖으로 발을 딛기가 쉽지 않았다. 꿈속에서 충돌한 기억이 두 가지, 즉 1. 우리 일가친척은 15년 전에 워싱턴에서 무참히 살해당했다.(거짓) 2. 우리 일가친척은 20년 전에 한국에서 무참히 살해당했다. (거짓)이었다면 깨어난 후에는 세 가지의 기억이 자꾸만 충돌했다. 즉, 위의 1,2에 3. 우리 가족은 건강하게 살아있으며 조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은 사실이나 모두 자연사였다 (참) 이 추가된 것이다. 나는 고장 난 컴퓨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잘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 치료가 원점보다 더 나쁜 곳으로 돌아간 것 같아 허탈감도 들었고, 특히 '무슨 중2병도 아니고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얘기는 의사 양반한테도 하기 싫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직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나 이 현상은 일시적이었고, 나는 귀국한 후 의사와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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