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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기다리는 아이
by 체리 Apr 18. 2018

일곱 번째

아플 자격

 우울증에 걸린 후 많이 생각한 것 중 하나는 대체 내가 '왜'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인지와 과연 내가 이렇게 고통을 겪을 만큼 뭔가를 '열심히' 한 사람일까, 그러니까 소위 '자격'이라는 게 있는 인간일까. 이 두 가지였다. 일도 나름 잘 되어가고 있고, 개인적인 상황이야 뭐 늘 좋지는 않지만 인생이 원래 좋다가 나쁘다가 하는 것이고,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몇 년 동안 사고 싶었던 비싼 펜도 샀고, 나름대로 차곡차곡 하나하나 해나가고 있다고 믿었는데 왜 나는 우울증이라는 검은 개와 맞닥트리고 말았는지. 안 그래도 '우울증'이라는 병명이 설명해 주듯 내 인생은 이미 우울과 허망감이 무릎까지 찰랑찰랑 차있는 게 기본 상태였는데 내가 '엄살'을 부리는 나약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우울의 수위는 이제 가슴팍까지 차올랐다. 우울이 무슨 훈장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우울과 싸우는 것을 도와주는, 주변의 '훌륭하고', 나보다 '힘든 일을 많이 겪어낸' 사람들도 아니고 감히 내가 우울을 논하고 있다는 사실이 말할 수 없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런 기분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그 사람은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병이고,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도와줄 의사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분이 조금 가벼워지긴 했지만 크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이유나 진행 과정, 시작된 시점 같은 것들은 충분히 짚이는 데가 있었지만 결국 버티다가 우울증 앞에 무릎을 꿇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더 안 좋았다. 이건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닌데도. 나는 성격이 꽤 급한 편이라 이 우울증으로 발생할 여러 가지 손해에도 생각이 미쳤다. 치료 기간 동안 충분한 생산성을 내지 못할 거라는 점이나-실제로 초기에는 맞는 약을 찾지 못해서 거의 전체 치료 기간의 반 정도를 약 부작용(메슥거림)때문에 고통받았다.- 지금은 쉴 시기가 아니라 바짝 벌어서 내 계획을 위한 자금을 마련할 시기라는 점도 우울증에 한몫했다. 우울증에 안 좋은 건 다 골라서 한 것 같다. 

 우울증에 걸려서 단 한 가지 (그나마) 좋았던 것은 반복적으로 내 짜증 샘을 자극하는 아버지의 행동이나 말에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약물로 자살 충동을 어찌 들어낸 후에도 감정이라는 것들은 그다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화나야 마땅한 일에 화가 나지 않았고, 예전 같았으면 5분은 거뜬히 폭소했을 일들도 무심한 눈길만 한번 던지고 흘려보내게 되었다. 인생은 3 무(無), 무미, 무취, 무색으로 거듭났다. 지금은 80% 정도는 치료되었지만 치료 초기에는 반복적인 자살 충동만 어찌 해결했을 뿐 어떤 현상도 '그래 죽음만이 답이다'라는 결론으로 연결되는 막무가내의 논리구조는 건재했다. 누군가가 우울해하거나 '죽고 싶다'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보통 '널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라' 거나 '너보다 힘든 사람들도 열심히 산다', '죄받을 생각 하지 말라' 같은 말들을 해주는데 사실 우울증이나 병리적인 자살 충동이 이런 말들로 완화가 된다면 왜 그것들이 '병'이라고 불리겠는가.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라서 엄마가 저런 류의 말을 할 때 정말 신기할 만큼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말들이 어떤 의미인지 뇌에서는 해석이 되는데 결국 결론이라고 내놓는 게 '그래, 죽음만이 답이다.'라서 이 괴리 때문에 더 미쳐버릴 것 같았다. 뇌 이 자식아, 좀 말이 되는 연산을 내놓으라고! 


 그래서, 과연 나는 '아플 자격'이란 게 있는 인간일까. 나는 가끔 자신에게 있어서 상당히 가혹해지기 때문에 아직도 스스로가 그런 '자격' 있는 인간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직도 '그때 넘어져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라고 자책한다-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 '아플 때'가 아니었다고도 생각한다. 여전히 구제불능인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치료가 상당히 진행된 지금, 변한 점이 있다. 고통을 겪음에 있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자격' 따위는 따질 필요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는 걸 잘 알게 된 것이다. 이유가 없어서, 도움이 필요해서 병인 것이다. 


 죽고 싶긴 한데 아직 그럴듯한 방법론이 떠오르지 않았을 때와 자기 전 가벼운 불안증세 때문에 오늘은 절대 잠들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는 거의 이 노래(https://youtu.be/ij0-TuDBLKU)를 들었다. 어릴 적 좋아했던 나카시마 미카라는 가수인데, 양측이관개방증이라는 병을 앓은 후 복귀한 다음-출시 시점이 아니라 이 영상이 찍힌 시점- 부른 곡이라 다른 말들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이 사람이 콘서트에서 경솔하게 한 말이나 기미가요 제창 같이 행보 면에서 나와 안 맞는 부분이 많아서 '다신 안 들어야지' 생각했는데 죽고 싶을 때 이 사람 노래를 찾게 되다니 묘하다고 생각했다. 노래를 듣고 나면 기분이 아주 조금 나아졌을 뿐이고 그다지 살고 싶어 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좀 좋아진 게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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