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에게 저런 말을 들어버렸다
너는 47살에 생사가 결정된다.
... 그럼 제가 47살에 죽는다는 말씀인 건가요?
그래.
저 47살은 만 나이 기준인 걸까, 한국 나이 기준인 걸까. 무당이 방울을 흔들면서 만 나이를 기준으로 내 나이를 말했으니 만 나이로 생각하면 되는 건가. 어떤 기준이든 간에 지금으로부터 47살은 그리 먼 미래는 아니다. 오히려 가까운 미래지.
발단은 청첩장 모임이었다. 모임의 호스트는 사주팔자에 관심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무속 신앙에도 가까워졌다. 본인이 만나본 무당 중에 아주 용한 무당이 있다면서 그녀에 대한 썰을 풀기 시작했다. 평소 정신 건강이 안 좋은 나에게 이런 대화는 참 솔깃하게 다가온다. 모임이 끝나자마자 그 무당집에 문자를 남겨 예약을 했다. 인기가 많은 분인 건지 연락 드린 날로부터 한 달이 되어서야 그분을 뵐 수 있었다.
용한 분이라 소문을 듣고 간지라 그곳에 앉아 있으면 속 시원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줄 알았다. 근데 오히려 답답한 이야기만 잔뜩 듣고 말았다. 나에게 무려 '수녀 팔자'라는 말씀도 하셨다. 사주팔자로는 남편이 두 명 이상 있을 팔자라는데 도대체 어떤 말을 믿어야 하는 건지.
내가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을 때마다 "난 신의 눈으로 보고 있어. 신은 거짓말 하지 않아."라고 일갈했다. 마치 가스라이팅 당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하면... 내 속이 너무 꼬인 건가.
절정은 치성이었다. 매년 가을마다 날 괴롭히는 깊은 우울감과 그 원인에 대해 털어놓자 대뜸 치성을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그 얘기를 짧은 시간 동안 10번은 하셨다. 문득 도대체 치성비가 얼마일까 궁금해졌다. 가격은 무려 250만원!! 요즘 돈의 가치가 많이 내려갔다고는 하지만 250만원은 상당히 큰돈이다.
그리고 내가 치성을 빌어줄 대상은 생전에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는 하지만 내가 무속적인 방법으로 그녀를 위해 빌어준다한들, 그녀가 과연 좋아할까란 의문이 크게 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날 가장 놀라게 만든 건 내 생의 유효기간이었다. 47살이 되면 갱년기와 더불어 여러 가지 건강문제로 인해 생사의 기로에 설 것이라 말했다. 오래 살고 싶다면 지금 하는 직업을 때려치우고(ㅋㅋㅋ) 시골로 가서 봉사활동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내 직업이 무병장수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건 확실히 알고 있는데 50세가 되기도 전에 죽는다 굽쇼? 저 나이면 명예퇴직도 힘든데 이게 무슨 소린지.
그나저나 저 말을 들으니 내 마음속 어딘가가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남들보다 잘 살아보겠다고 바둥거릴 필요가 없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 분의 말대로 정말 내 삶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아득바득 살기보단 지금까지 못해본 것들을 도장 깨기 하며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집에 가서 남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 47세에 죽는다니까... 장례식장 국은 육개장으로 하고, 편육 말고 수육으로 준비해. 난 납골당 이런데 안치되는 거 싫으니까 그냥 화장해서 한강에 뿌려. 납골당에 모시면 맨날 니 꿈에 나타나서 무섭게 할 거야."
비 오는 날 갑자기 외출을 하고 와서 뚱딴지같은 말을 내뱉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는 남편은 완전 질린 표정을 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막살아보련다. 그리고 혹시나 47세를 훌쩍 넘겨 생존하게 된다면 조촐하게 파티라도 해야겠다. 47세 이후부터의 삶은 어찌 보면 신에게 선물 받은 삶일 수도 있으니.
근데 무당집에 다녀오니 뭔가 성당이나 교회에 가고 싶어졌다. 치성을 드리라고 말한 대상을 위해 무속적인 방법이 아닌, 기독교적인 방법으로 그녀의 영생을 위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다. 어쨌든...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