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망쳐도 평안했던 이유

나를 몰아붙이지 않기로 했다.

by 브릭

1월부터 3월은 자격증 공부의 달이었다.

2월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3월엔 한국실용글쓰기 시험을 봤다. 한국사는 붙었는데 생각보다 기쁘지 않았고, 실용글쓰기는 떨어졌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결과만 보면 전자가 더 좋아야 맞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왜 그랬을까?




한국사능력검정 시험은 두 종류로 나눠진다. 심화가 1급부터 3급까지, 기본은 4급부터 6급까지 있는데

내 목표는 심화 3급이었다. 첫 번째 시험에선 정말 아쉽게도 한 문제 차이로 떨어져서 불합격의 맛을 봐야 했다.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던 시험을 다시 붙잡으려니, 책을 펼치기도 전에 마음부터 질려버렸다. 솔직히 너~~무 하기 싫었다. 게다가 9-6시 풀타임 직장인으로 자격증 공부를 병행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시 붙잡고, 또 붙잡으며 이어갔다.


그리고 2월 20일, 한국사 시험 결과를 확인하는 날.

가채점을 통해 대략적인 점수는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어서 기대감을 누르고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결과는 1급.

목표했던 3급보다 높은 점수였다. 가채점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성취감을 느꼈다.


근데 이상하게도 엄청 기쁘진 않았던 것 같다. 시험이 끝난 당일 최태성 선생님 유튜브에서 가답안을 확인했던 날, 그 순간에도 비교심리가 작동해서 나보다 적은 기간 공부하고 더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박탈감을 느꼈던 것 같다.


참 쓸데없는 감정이다. 어차피 목표치보다 높게 받았는데도 그 점수를 따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한 달 뒤에 시험을 하나 더 봤는데, <한국실용글쓰기> 시험이었다.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면 좋았을 텐데 한국사의 여파로 너무 지쳐있었다. 한국사 1급 합격으로 자신감이 생겼지만, 공부를 좀 쉬고 싶었다.


그래도 실용글쓰기는 작년에 미뤄둔 자격증이었고, 이미 사둔 새 문제집이 있었기 때문에 더 미루기 전에 얼른 봐야겠다고 나를 밀어붙였다.


2주만 공부하면 된다는 후기도 있고, 글쓰기 베이스가 나름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조금 쉽게 봤는데... 더 넉넉하게 여유를 두고 공부하는 게 좋을 뻔했다.




막상 시험이 시작되자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갔다. 전략적으로 마지막 서술형 9번 원고지 문제부터 작성했음에도 갈수록 시간에 쫓겨서 문제를 풀었다. 나중에는 시간이 너무 없어서 아예 쓰지도 못한 서술형 문제도 있었다.


그나마 위안을 얻었던 건, 시험장에서 시간은 나만 모자라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시험은 오후 12시에 마쳤고 중도 퇴실은 11시 반부터 가능했는데, 11시 반이 지나도 자리를 뜨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들 고개를 숙인 채 끝까지 문제를 붙잡고 있었고 시험장 안 열기는 더해졌다.




한국실용글쓰기 시험을 치른 나의 후기는, 탈탈 털렸다고 할까.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아쉽게 떨어진 게 아니라 아주 제.대.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감사했던 건 마음의 평안이었다. 시험 공부할 때 예민해지고 시달리는 성향이라는 것을 파악하면서 이번에는 막판에 마음이 평안해지도록 많이 기도했었다.


한국사 시험을 처음 보고 떨어졌을 때를 생각하면, 한 번에 붙지 않으면 돈 낭비, 시간 낭비라고 되뇌며 스스로를 압박했다.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도 평안함은 없고, 불안하고 초조하며 시달렸다.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을 땐 더욱 절망스러웠다. 고작 자격증 시험임에도 불구하고 패배감을 느꼈다. 두 번째 한국사 시험을 볼 땐, 마음을 달리 먹자고 생각했지만 두 번째 보는 거다 보니 이번엔 붙어야 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자꾸 나를 따라다녔다.




이번 실용글쓰기 시험공부를 시작할 때도 잘 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돈과 시간은 소중하니 말이다. 하지만 점점 지쳐가고 마음처럼 집중이 안 되는 모습을 보고 이대로 나를 압박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겠다고 판단했다.


한국사 첫 시험을 볼 때를 발판 삼아서,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과정을 누리자고 결정했다. 같은 시간 공부를 하더라도 불안하고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평안하고 누리면서 공부하도록 기도로 정신을 붙들었다. 그 결과, 시험을 못 보더라도 절망이 아니라 후련하고 평안한 마음이 남았다. 한 끗 차이 같지만 내겐 큰 차이였다.


한국사 1급에 합격해도 크게 기뻐하며 잘 누리지 못했던 때와 다르게 실용글쓰기 시험을 제대로 망쳤음에도 좋은 경험 했다며 웃어넘길 수 있었다.


당분간 쉬면서 나를 돌봐야겠다.

나를 몰아붙이기보다, 내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으니.




잠언 4장 23절)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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