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필름 사진은 가디라기 위한 사진

by 별빛바람

요즘은 사진을 찍는 그 순간 이미 결과를 예측하게 된다. 어린 아이들조차 사진을 찍으면 “어떻게 찍었는지” 보여달라고 할 정도이니, 사진을 찍은 뒤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사실 필름 사진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한 롤에 24장 혹은 36장 짜리 필름을 계속 넣어야 한다. ISO 감도 역시 필름을 넣는 순간 확정이 되었으며, 흑백인지? 컬러인지? 조차도 필름을 넣는 순간에 이미 결정이 된다. 흑백인지? 컬러인지?에 대한 선택은 이미 필름을 선택한 뒤, 한 롤을 다 사용한 그 순간까지는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사진을 다 찍은 뒤, 가까운 사진관으로 가서 현상을 의뢰한다. 보통 2 ~ 3일 정도 걸린다. 친절한 사진관은 사진 상태를 보고 인화할 사진을 임의로 선택해서 인화해 주기도 하지만, 전문적인 사진관의 경우는 현상 후 인화할 사진을 선택해 달라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 보통 필름 사진을 찍은 뒤 최종 결과물을 보기까지는 최소 3 ~ 4일은 족히 걸렸다. 그러다 최신식 장비가 들어오면서 하루만에 현상 및 인화를 해 주는 곳들도 많이 생기곤 했었고, 코스트코에서 필름을 맡기면 현상과 인화를 해주기도 했으니, 쇼핑을 하고 끝날 때 쯤이면 원하는 사진을 다 인화해 주는 서비스는 이제 낯선 서비스가 된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그 일들은 하나의 추억일 뿐이다. 이젠 집 근처의 가까운 사진관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그리고 "필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나고 있다. 모든 사진들은 단지 셔터 버튼(이라고 하고 그저 스마트폰 액정이라 부르기도 한다.)을 누르기만 하면 어떤 사진이 나왔는지도 바로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사진만 남기고 다 지워버리거나, 혹은 마음에 들 때 까지 열심히 뽀샵(요즘은 스노우가 대세라고 한다.)을 하게 된다. 이 모든 시간이 불과 10분 남짓이다. 더 길면 그 사진을 찍었는지 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단지, 딱 그 순간. 사진을 찍고, 고르고, 편집 하는 그 찰나의 시간. 그 시간이 바로 사진을 통해 기억을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의 전부이다.

어린 시절 장롱 한 켠에 숨겨져있던 먼지가 뽀얗게 싸인 엘범을 펼쳐보았을 때 였다. 언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버지와 함께 갔던 도봉산의 추억. 그때 누가 만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 키보다 더 컸던 눈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 날의 추억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봉산을 어떻게 갔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버지는 한 평생 차를 사신 적이 없으니, 그땐 분명 지하철 혹은 시내 버스를 타고 도봉산에 갔을거다. 하얀 눈이 발목까지 쌓였던 사진의 흔적만을 바라보았으 뿐이다. 그 시절의 사진은 그랬다. 내가 어딜 갔는지,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누구와 어떠한 것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에 대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진 한 장을 찍는 것이 너무나도 특별했기 때문에 모든 순간이 남기 보다는 하나의 정형화된 모습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젠 디지털 - 아니 스마트폰이라는 문명의 수단이 우리의 일상과 같은 존재가 되었으니 "사진"을 찍는 행위는 그저 물을 마시고, 밥을 먹는 것과 같은 일상적이며, 평범한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이젠 사진을 찍는 그 순간, 어떠한 사진이 나왔는지? 어떠한 결과가 나왔는지 단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참 불편한 행동이다. 우선 필름을 구해야 한다. 인터넷에서 구입을 할 수 있지만, 빨라야 그 다음날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사진을 찍고, 현상을 하러 사진관을 찾아간다. 물론 그 사진관이 집 근처라면 다행이겠지만, 대부분 사진을 현상할 수 있는 곳은 멀리 떨어져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택배로 보내야 하니 그 시간도 최소 이틀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상하는 시간. 스캔본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메일로 전달 받는 시간까지 하면 그 시간은 최소 며칠의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름사진은 참 불편하고, 효율적이지 못한 한사진이다.

하지만 필름 사진 자체의 매력은 분명 존재한다. 정해진 필름 컷 안에서 선택을 해야한다. 내가 찍어야 할 피사체의 모습을 최대한 표현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진을 찍기 위한 고민을 해야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사진을 현상하고 보기 위한 기다림도 필요하다. 그런 필름 사진이 있으니 충분히 우리는 사진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고민해 보기도 하지 않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필름 사진이 생각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