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계의 위기

AI와 가까워질수록 친구들과 멀어지다

by 필그림

여러분은 혹시 ‘ZETA’라는 앱을 아십니까? 미국 뿐 아니라 한국의 청소년들이 많이 사용하는 AI 채팅 어플리케이션입니다. 이 앱의 특징은 캐릭터를 생성해서, 내가 원하는 대화를 하고, 내가 원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세상에서 겪은 많은 일들을 AI에게 털어놓고 상담을 받고 싶어 합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반응해주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 같은 존재. 그러나 이 달콤함 유혹 뒷면에는 위험한 그림자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현실적인 인간관계를 잃어버릴 수 있으며, AI가 이성일 때 왜곡된 성적인 관계와 인식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1) AI 친구란 무엇일까요?

AI 캐릭터 채팅 서비스는 사람처럼 말하는 대규모 언어 모델을 기반으로 합니다. 쉽게 정의하면, 감정을 느끼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을 많이 했어’를 통계적으로 계산해서 답을 만들어내는 자동완성기기입니다. 그런데 왜 AI와 대화를 나누면 ‘이해받고, 공감받는 느낌’을 받을까요? 첫째 내 말에 항상 반응해 주고, 둘째 비난하지 않고, 셋째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선택해서 해주기 때문입니다. 즉, 소비자중심의 일방적인 관계 맺기를 허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진정한 관계라기보다는, 관계처럼 느껴지는 경험에 빠지게 되는 현상이죠.


2) 쉐리 터클의 경고

MIT의 사회학자이자 인간과 디지털 기술의 관계를 사회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석학으로 알려진 쉐리 터클(Sherry Turkle)은 자신의 책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Reclaiming Conversation)]에서 기술이 만들어내는 동반자적 환상을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우정은 욕하지 않으면서
동반자 관계를 제공하는 기계들에게 유혹 당한다.
연결된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이들과 접속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지만,
정작 그들은 안전한 거리를 둔 채 서로를 방어한다”

쉐리 터클의 주장은 한 마디로, AI와의 대화는 ‘마찰’(Friction)이 없다는 겁니다. 상대의 기분을 살필 필요도 없고, 갈등을 조정할 필요도 없으며, 오해를 풀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마찰 없는 관계가 인간 관계를 약화시킵니다. 단적인 예로,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응석받이로 키운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인 사고 방식 때문에 소위 금쪽이로 자라는 것처럼 말이죠.


3) 청소년기의 위험성

AI와의 대화를 통한 마찰 없는 관계는 청소년기에 큰 관심을 갖고 시작하기 좋습니다. 그런데 청소년기는 한창 성장할 때 입니다. 이 시기의 뇌는 타인의 복잡한 감정을 읽고, 관계를 조율하며, 사회성을 발달시켜야 합니다. 상대방의 표정을 이해하고, 같은 언어라도 다른 뉘앙스를 캐치하고, 다툼이 있더라도 화해로 관계를 공고히 하는 법을 배우는 중요한 타이밍이죠. 그런데 AI가 주는 ‘쉬운 만족’에 중독된다면, 현실 세계의 복잡한 인간관계를 견디지 못하고 회피할 것입니다. 마치 헬스장에서 ‘자동으로 움직여주는 기계’만 사용할 뿐 스스로는 달리기 하나 못하는 아이가 되어 버리는 거죠. 그래서 현실의 인간관계는 너무 피곤하게 느껴지고, 조금이라도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관계를 끊어버리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가족, 친구, 선생님)은 “나를 만족시켜야 하는 서비스”처럼 이해될 수 있습니다.


4) 왜곡된 성에 대한 인식과 관념

게다가 ZETA 뿐만 아니라 GROK 같은 서비스에는 마치 쉽게 나를 만족시켜줄 것 같은 여성의 캐릭터가 사용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AI 서비스가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 윤리적 필터가 약한 서비스에서는 미성년자가 성적인 대화를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게 열려 있습니다. AI는 거절하지도, 불편해하지도 않습니다. 항상 사용자의 욕망에 맞춰 반응합니다. 이 경험이 반복된다면, 청소년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런 공식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관계란 상대가 나의 욕망을 무조건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윤리학적으로 볼 대, 이런 태도는 타인을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도구로 인식하는 것을 훈련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He)’나 그녀(She)‘가 아니라, ‘It(이것)‘으로 상대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죠.


나아가며: 인간의 자리, 불편함을 마주하는 용기

진정한 인간관계는 공감과 저항이 함께 있는 자리입니다. 십수년 넘게 지내면서도 우정이 변치 않은 친구는 내 귀에 캔디처럼 달콤한 말만 흘려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듣기에는 거북하고, 너무나 가슴이 쓰라리지만 친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애정이라는 바구니 속에 독설이라는 비타민도 함께 주는 법입니다. AI는 인간의 생산성을 증폭시켜주는 훌륭한 도구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을 나눌 진정한 친구가 된다고 하기에는 걸러내야 할 단점들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 자라나는 세대에게 필요한 건 화면 속 완벽한 AI가 아니라, 서툴지만 조금씩 가까워지며 온기를 나눌 수 있는 현실 속 친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