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일자리가 아닌 일의 의미를 빼앗는다
얼마 전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에서
CES 2026이 열렸습니다.
저는 새로운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에도 관심을 갖게 된 거고요!
특히 제 눈길을 끈 건
바로 대한민국 기업들이 발표한
로봇, 피지컬 AI 기기들이었습니다.
물론, 엄청나게 큰 TV와
벽 구석이든, 주름 진 커튼에든
상관없이 평면으로
빛을 쏴주는 프로젝트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움직이는 로봇
생각하는 기계가 우리 삶에 성큼
가까이 오게 해주는 기술만큼
설레는 서비스는 없는 것 같습니다.
먼저 현대차 그룹 (보스턴다이내믹스) 에서는
"New Atlas"를 발표했습니다.
이 모델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 하드웨어에
구글의 제미나이(Gemini)가 탑재된
완전 전동식 휴머노이드 로봇입니다.
이 로봇은 숙련공을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인간만 가능했던 비정형적인 조립,
부품 체결, 불량 검수 등의
복잡한 노동을 가능하게 한다네요.
두번째는
LG의 "LG CLOiD" 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집안 일 대신해주는 로봇이죠.
역시 가전은 'LG'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있네요.
이 로봇은 "가사 노동 제로"를 비전으로 내세운
가정용 휴머노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LLM을 통해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청소, 빨래, 정리 정돈 등을 다 해준다고 홍보했습니다.
세번째는
삼성전자의 "볼리(Ballie)" 입니다.
이 로봇의 특징은
모니터 크기가 큰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사람의 감정을 읽고, 표정으로 반응합니다.
대학 캠퍼스나 사무실에서
길을 안내하거나, 일정을 관리해주는
'수행 비서'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사용자의 기분에 따라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조명의 조도까지 조절하면서
감정 케어의 기능을 탑재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미래에는 육체노동이 선택이 될 것"
이라고 말합니다.
네, 점점 인간의 노동은 줄어 들겠죠?
그런데 그게 정말
전 인류에게 좋은 일일까요?
제가 위에서 소개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기기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두산로보틱스의 "오스카 더 소터"인데요.
이 로봇은, 비전(카메라) 없이도
손끝 감각만으로 종이컵, 캔, 플라스틱을
구분해 집어냈습니다.
이러한 기능은
집안의 쓰레기 분리수거도 할 수 있고,
커피도 만들어 준비할 수 있고,
아이들이 원하는 음식도 뚝딱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고된 노동을 다 삭제 시켜버리면
인간은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요?
제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인간에게 '일'이란,
고생, 힘듦, 수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인간은 일을 통해 성장합니다.
실제로 AI가 사회초년생들의 일을 대체하니
지금 20대 초중반 신입사원 채용이 줄어들고,
10년 뒤에는 10년치 경력자가 사라질거라는
예측들이 여기 저기서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인간은 일을 통해
'내 것', '내가 만든 것', '내가 한 것'을
보고 싶어합니다.
이미 10년 전에 알파고의 침공으로
먼저 AI 시대를 맞이한
바둑의 세계를 취재한
장강명 씨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소설 쓰는 인공지능의 도입은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내 태도를 어떻게 바꿀까? … 내 글쓰기가 막힐 때마다 인공지능이 기가 막힌 조언을 해준다면 나는 소설 쓰기에서 도전을 할 수 없게 되고, 더 이상 흥분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온 소설은 ‘내 것'이라고 여기지도 못할 것이다. 거대한 의미의 흐름에 참여한다고 느끼지도 못할 것이고, 거기에 헌신할 수 있겠다는 믿음도 잃어버린다.
예전에 어떤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분이
'대중은 가수의 완벽함 때문이 아니라
결함처럼 보이는 부분에서 매력을 느낀다'
라고 했던 말이 기억 납니다.
예를 들면, '장혜진' 이라는 가수는
노래를 부를 때면 들숨이 꼭 나오는데,
기계적으로 해석할 때는 불필요해 보이지만,
사람들은 그 들숨 때문에 영혼의 공명을 느낍니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은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가지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은 만들어 낼 수 있지만
'내 것'이라고 여길 수 있는 글은 못 씁니다.
엄마는 밀키트 속 티본 스테이크보다
정성껏 손으로 빚은 유부초밥을
아이에게 먹이고 먹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합니다.
인간은 단순히 일을
'회피의 대상'
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삶의 이유와 즐거움과 만족을 찾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노동을 할 수 없는 날은
해방의 날이 아닌
절망의 날이 될 것입니다.
MIT의 경제학자 대런 아세모글루는
자신의 책 [권력과 진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중간한 자동화는 노동자에게
이중 타격을 입힌다.
노동자를 일터에서 쫓아내면서도,
그들을 다른 곳에 고용하거나
새로운 업무를 만들어낼 만큼
충분한 생산성 향상은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편의점 계산원 자리에
무인 키오스크가 들어섰다고 칩시다.
점장 입장에선 인건비가 줄어 좋죠.
그런데 사회 전체로 보면?
계산원은 일자리를 잃었고,
그렇다고 키오스크가
혁신적인 생산성 향상을 가져주지도 못 합니다.
단지 인건비를 아낄 뿐이예요.
그 계산원이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다른 식당으로 이직을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거기서도 계산대를 맡는다면요?
아마 비슷한 자리이니 만큼,
그곳에서도 이미 다른 키오스크가 대체할 겁니다.
지금 아세모글루는
단순히 AI를 비난하는 게 아닙니다.
인공지능이 혁신적인 기능을 가진 건 맞지만,
정말 사회 전체 영역에 유익하냐 질문하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발명되도,
사람을 돕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되지
대체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면 어떻게 될까요?
네, 대립과 충돌과 갈등만 난무합니다.
최근에
회계사에 합격한 사람들 중
20% 이상이 채용되지 못해
길거리에 나와 시위를 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뉴스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고숙련 노동자와 저숙련 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는 벌어지게 되겠죠.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는,
중산층은 붕괴하고.
부는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집중되고 말 겁니다.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켈러그(Kellogg) 교수는
[플랫폼 경제에서의 알고리즘 관리]
라는 논문에서,
우버 기사나 물류센터 직원들이 겪는
'보이지 않는 상사'의
압박을 받는다고 분석 해냅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도 배달의 민족, 요기요 같은
배달 기사 플랫폼이 있습니다.
자동차로, 오토바이로, 자전거로,
심지어는 도보로도 배달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배달 오토바이들은
과속을 많이 하는 걸까요?
왜 그렇게 사고가 많이 나는 걸까요?
바로
"보이지 않는 상사"의 감시 때문입니다.
저는 배달의 민족 알바를 해봤습니다.
스마트폰에 어플을 설치하면
배달이 왔다는 표시와 함께
음식점 까지 도착해야 하는 시간
주문한 곳까지 도착해야 하는 시간이
시한폭탄 터지는 것처럼 좁혀져 옵니다.
게다가
아무리 구부러진 골목길이어도
어플 속 지도에서는 직선으로 계산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빨리 가도
알고리즘이 명령하는 시간보다
빨리 도착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켈로그 박사도 이렇게 말합니다.
알고리즘 통제는 노동자에 대한
원격 자동 추적 및 평가를 가능하게 하여...
그들의 자율성을 줄이고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
시간 내에 배달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배달 콜은 더 이상 잡히지 않습니다.
배달 기사는
한 건씩 쌓아 올려서 버는 배달비가 안 모이니
더 이상 그 일을 지속할 수 없게 되겠죠.
이렇게 인간보다 인공지능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세상
파놉티콘의 감시 꼭대기에 들어가는 세상
이런 세상은 인간 소외, 인간 절망으로
이끌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석 연구원이자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였던
메리 그레이(Mary Gray)는
인간의 노동은 깊숙히 감춰지고
인공지능의 작동원리만 부각하는 현상에
이렇게 이름 붙였습니다.
<유령 노동 (Ghost Work)>
우리는 흔히 GPT나 Gemini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얻으면,
'이 인공지능 성능이 아주 좋네'
라고만 말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자동화 뒤에는
인간의 수동화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인공지능에 대한 책을 찾다가
제목만 들어도 충격적인
한 권을 찾았습니다.
이 책에서 통찰력있는 내용이 있어
이렇게 장문의 글이지만 공유해 봅니다.
지금의 AI는 종종 우리가 직접 통제하고 목적에 따라 설계할 수 있는 도구라기보다는, 우리가 적응해야만 하는 불가피한 힘으로 여겨진다. 지금 우리는 테크 기업가들이 자신의 발명이 세상을 얼마나 더 좋게 바꿔줄 것인지 거창하게 홍보하는 기술결정론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계들을 만들고, 유지하고, 수리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종종 감춰진 채, ‘스스로 작동하는 자동화'라는 허구를 지탱하기 위해 무대 뒤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고 있다.
혹시 "데이터 라벨링 작업"이라는
알바 거리를 들어 보셨나요?
한 때는 한국에서도 이 일감이 유행했는데
이제는 아프리카, 인도, 필리핀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루에 10-12시간씩 데이터에
수기로 이름, 카테고리를 적어서
데이터의 형태를 정렬하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쓴
제임스 멀둔, 마크 그레이엄, 칼럼 캔트는
"AI 작업의 80%는 AI 연구실이 아니라
글로벌 남반구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데이터 주석 작업"
이라고까지 말한 것입니다.
확률적으로 볼 때, 당신 역시 추출 기계가 착취 가능한 자원으로 여기는 전 세계의 노동자, 소비자, 시민 집단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다. AI 시스템은 당신의 노동, 아이디어, 예술, 물, 에너지, 데이터, 그리고 당신의 국가에서 나오는 필수 광물을 원한다. AI 추출 기계는 권력을 소수에게 집중시키고, 과거 식민주의의 권력 구조를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한다. 동시에 노동을 단순화하고 강도를 높여, 이미 과로에 시달리는 전 세계 노동자들로부터 더 많은 이윤을 추출한다.
이렇게 AI가 인간의 노동을 착취하는 것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인공지능을 우주 밖으로 몰아 내야 할까요?
인공지능으로 장사하는 빅테크 기업들과
맞서 싸워야 할까요?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이 기술이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
아니면 협력할 것인가?
AI는 분명 기가 막힌 도구입니다.
의사가 암을 더 빨리 진단하도록 돕고,
교사가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도록 지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면요?
기술 개발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단순히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자동화가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증강 기술로 나아가야 합니다.
제도적 장치도 필요합니다.
기술 발전의 혜택이 소수에게만 집중되지 않도록요.
케냐의 데이터 주석 작업자가
시간당 1달러가 아니라
정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필리핀의 콘텐츠 조정자가
정신 건강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편리함만을 따라가는 소비자가 아니라,
이 기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누가 희생되는지를 아는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문한 배달 음식 뒤에는
알고리즘에 쫓기는 배달 기사가 있고,
우리가 질문하는 ChatGPT 뒤에는
끔찍한 이미지를 보며
하루를 보내는 조정자가 있습니다.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