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비교군이 생겨야 깊어진다
필명25의 고등학교 친구 무리는 본인 포함 6명이다. 오늘 알바 인터뷰를 해준 친구는 앞으로 ‘5번 친구’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친구가 수능 없이 수시 반수를 성공해서 요즘 삼수붕어와 자주 만나고 있다. 친구의 공강 시간 때 같이 점심도 먹으면서 친구의 일상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 겸사겸사 인터뷰를 부탁했다. 알바 인터뷰를 하면 친구들이 그 일을 하면서 생긴 고민을 말할 때 내가 더 공감해 줄 수 있어서 좋다. (참고로 이 친구는 호주 시드니에서 초등학생 때 2년간 살다가 돌아온 유학파라서 영어 실력이 유창하다.)
“ㅇㅇ(5번 친구), 어떤 알바들을 해봤는지부터 말해줘.”
“내가 일했던 곳은 전부 백화점 내에 있는 매장이야. 일단 서점에 대학 1학년 1학기 중에 들어가서 2학기 중간고사 치고 그만뒀어. 거기서 나는 도서 말고 문구랑 액세서리 판매 파트에 주로 근무했어. 그다음에 의류 매장에서 3개월 일하고 그만뒀다가, 지금은 사은 행사장이랑 백화점 내에 있는 어린이 카페 겸 놀이장소에서 한 5개월 정도 일하고 있지.”
“각각 급여는 어땠어?”
“뭐든지 다 최저시급이었어. 백화점은 추가 수당이 있었는데, 아주 쏠쏠하지. 근데 좀… 주 15시간 이상 근무면 주휴수당이 들어가니까 14시간으로 아슬아슬하게 맞춰서 못 받은 부분은 아쉽긴 해. 어떤 관점에서 보면 근무시간이 실질적으로 하루에 8시간(점심시간 1시간 포함)이라서 주 16시간이 되고,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는데, 일부러 안 주더라…”
“의류 매장에서는 무슨 일을 했어?”
“내가 판매는 안 해봤고. 홀에서 고객 응대와 매장 정리를 하고, 창고에서 재고 관리와 매장에 없는 옷을 요청받으면 갖다 드리는 업무를 했지. 그 둘이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내가 언제든 두 파트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파트를 할 줄 알아야 해. 제품 설명이랑 브랜드 출신 국가마다 사용 용어가 달라서 가이드북이 있는데 그걸 달달 외워야 했지. 의류에서는 그 언어만 사용하기 때문에 그걸 스스로 배워야 상사들과 말이 통하고 안 혼나. 화장실 한 번 가는 것도 직원들끼리 사용하는 언어로 ‘~~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려야 해.“
“아, 손님들이 못 알아차리시게 하는 용도인가?”
”맞아. 그래서 나도 의류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는데, 무조건 기본 공부를 하고 갔어. 그 조금이라도 해놓은 공부가 진짜 천지차이야. 본인 배경 지식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라도 고객님께서 ‘이거 어때요?’라고 물어보셨을 때, ‘요즘 이런 핏이 유행하고, 이런 분들께 추천되는 스타일입니다.’라는 전문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이 완벽한 응대야. 이때 ‘완벽한 응대’의 정의는 ‘컴플레인이 없는 것’이거든.”
“사은 행사장이 뭐야? 어린이 카페에서는 어떤 일을 해?”
“백화점에서 손님들이 영수증을 주시면 우리가 상품권으로 교환해 드리는 곳이야. 어린이 카페가 약간 키자니아 같은 곳인데 아기들한테 풍선이나 바람개비처럼 소소한 장난감을 만들어서 나눠줘.”
“ㅇㅇ, 너는 알바를 다양하게 해 봤잖아. 그렇게 일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너만의 근무 원칙이 있을까?”
“있지. ‘모든 알바는 매뉴얼을 따르기‘ 매뉴얼을 봤는데도 정말 모르겠다? 그러면 ‘무조건 상사에게 물어보기’ 질문 자체를 두려워하면 평생 알바 못하고 더 크게 혼나게 되어있어. 질문이 두려워서 도저히 못하겠으면 차라리 그 알바를 미리 공부해 갔으면 해. 아주 많이. 그 알바를 하면서 벌어질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도 해봤으면 해. 그리고 오늘 일어난 상황에 대해서 내가 잘못한 것 같다면 부모님께 여쭤보길 바라. 그 알바 얘기를 활용하고 조언을 구하는 일련의 과정이 부모님과 친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 어느 순간 말이 확 트일 거야. 부모님 반응이 퉁명스러우면 ‘제 미래를 위해서 지금 투자하는 길이 알바예요. 제 미래에 대한 확고성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라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과 행동에 대한 부모님의 조언이 필요해요.’라고 말씀드리면 부모님도 의도를 깨달아주실 거야. 부모님은 쌓인 연차와 경험을 활용해서 미래에 벌어질 상황까지 예상해 주시기 때문에 매우 유용해.”
“너의 일터가 모두 백화점에 있었는데 다른 점포보다 백화점 내의 점포에서 특별히 요구되는 사항이 있을까?”
“백화점 내에 있는 매장에서는 분위기상으로 영어를 꼭 해야 해. 하면 좋다 수준이 아니라 거의 암묵적으로 필수라는 느낌이 있어. 영어를 겉핥기 수준만 구사하는 게 아니라, 판매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외국인 손님께도 한국인 손님 대하듯이 똑같이 잘 안내해 드리고, 컴플레인이 걸렸을 때 적절히 응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태도를 보여야 해. 모르겠으면 미리 안내 멘트를 파파고라도 돌려서 외워야지. 까먹었으면 즉흥으로 파파고를 활용해서라도 완벽히 응대하고. 그 멘트들도 항상 매뉴얼에 따라서 준비하고. 제일 좋은 변명이 ‘저희 매뉴얼이 이렇습니다.’야. 그렇게 안내해 드렸을 때, 점장님을 불러달라고 손님이 요청하시면 그때 바로 책임자를 모셔 오면 돼.”
(5번 친구의 시점으로 바라본 필명25)
“알바 종류별로 ‘내 경험을 토대로 봤을 때, 이 알바는 이런 사람에게 잘 맞을 것 같다.’를 얘기해 주라.”
“일단 서점은 돈 계산을 잘하는 사람. 그리고 액세서리는 하자 있는 제품이 은근히 많아서 그런 부분에 대한 안내가 필요해. 멘트도 길고. 또 디지털 기기는 진짜 조심히 다뤄야 해. 컴플레인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고. 매니저님에게 적절하게 위임하는 상황 판단 능력이 중요해. ‘저는 매뉴얼 그대로 잘 안내를 했는데, 컴플레인이 들어왔어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려주세요.’라고 잘 말씀드리고, 괜히 본인 생각대로 나서려고 하지 말길 바라. 무슨 일이 생기면 상사에게 달려가고. 상사가 없는 상황이라면, 같이 일하는 알바라도 연차가 높은 사람에게 가서 상황 설명을 잘 드리고 조언을 구하면 대부분 알려주셔. 얘기 안 하는 순간 내 문제가 되고 선배와 점장님께 가서 많이 깨져.”
“의류 매장은?”
“의류 매장은 하루종일 뛰어다녀야 해서 무조건 체력이 좋아야 해. 팔 힘도 좋아야 하고. 옷이 쌓아놓고 들면 무게가 엄청난데, 그걸 하나씩 들어 옮기면 혼나. 옷 뭉텅이를 한꺼번에 확 들어서 빨리 옮겨야 되거든. 상사들도 바쁘기 때문에 알바들을 그때마다 가르쳐줄 여유가 없어. 그래서 모르는 상황이 생기면 본인이 알아서 상사한테 달려가서 하나씩 물어봐야 하지. 아니면 엄청 혼나…”
“사은 행사장은?”
“금액 구간대별로 행사 상품이 달라져서 세심하고 계산에 유능해야 하지. 오차범위가 생기면 큰일 나. 상황 판단 능력이 있어야 하고, 내 행위에 대한 더블 체크는 필수야. 고객분들이 오래 기다리시더라도 최대한 꼼꼼하게 금액 확인을 해야 해. 서로 손해를 안 보기 위해서 신속정확이 아니라 ‘정확신속’이 맞는 태도야. 이 파트 직원분들이 아주머니가 많으신데, 그분들과 일해야 하는 경우에는 질문을 드릴 때 망설이지 않도록 본인이 친화력도 좋아야 해.”
“알바하면서 가장 어이없었던 경우는 뭐였을까?”
“서점에 처음 들어갈 때, 자꾸 교육 시간이랑 근무 시간을 바꾸는 경우가 어이없었지. 정직원과 알바를 차별해서 맨날 뭘 잘못해도 알바 탓으로 돌리는 것도 그렇고. 컴플레인이 걸려서 매니저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그 책임자가 현장에 있던 모든 알바의 번호를 차단해 뒀어. 한 번은 고객님이 총 2시간이나 기다리셨어. 결국에는 그 매니저랑 연락이 너무 안 돼서 점장님께 바로 연락드렸지. 매니저가 나중에 노인들에게 디지털 상품을 판매하지 말라는 지시까지 내렸어. 노인분들이 상품에 대한 설명이 길어지고 컴플레인도 많이 들어와서 판매가 까다로워진다고 싫어했어. 완전 고객 차별이야. 본인 업무에 지장이 생긴다고 기피했어.”
“진열할 물품이 많은 매장 여러 곳에서 일해봤잖아. 직접 사다리도 타봤어?”
“서점에서 일할 때는 내가 책 파트가 아니라서 안 타봤는데, 의류 매장에서 타다가 넘어질 뻔했어. 통로 폭이 너무 좁아서 사다리 하나를 펼치면 그 통로가 꽉 찰 정도야. 나는 솔직히 의류 쪽 알바는 어지간해서는 추천 안 해. 개인적인 전공과 관심사가 의류 쪽이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는 고생이지만, 그게 아닌 사람들은 너무 힘들어. 진짜 비추천이야.”
“이제 막 20살이 되어서 알바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특히 많은 새 학기 시즌에 무경력으로 알바를 구하기 힘든데, 네가 뚫은 방법이 뭐야?”
“그냥 운빨로 된 것 같아. 진짜 모르겠어. 내 형제는 1년 내내 이력서를 넣어도 탈락했어. 개인적인 생각인데… ‘점장님께 한 마디’ 그 칸을 정말 수려하게 잘 써야 해. 본인 말발이 된다 싶으면 뽑혀. 그게 결국에는 일하다가 생긴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에 연관되니까. 좋게 말하면 친화력이 좋은 거고, 나쁘게 말하면 아부 잘 터는 사람이 뽑힐 가능성도 높지. 실제로 내 대학 친구의 경우인데, 사회성이 떨어지고 내향적일수록 사람들과 많이 부대낄 수 있는 알바를 해봐야 하더라고. 그 친구는 전화 공포증도 심했고, 매장에서 직원이랑 몇 마디 나누는 간단한 카드 결제까지 무서워했어. 옆에 있는 다른 친구한테 부탁해서 해결할 정도였지. 근데 그 친구가 좀 값비싼 음식점 알바를 하면서 팁을 꽤 받은 거야. 말을 잘할수록 팁을 잘 받으니까 점점 입이 트였어. 고객들의 니즈와 해당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거야. 하하, 결국에는 자본주의지. 그 친구 MBTI가 INFP였는데, 게다가 극 I, F, P 성향이었어. 그냥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나갈 때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반응을 하지는 않았을 건데?’ 싶은 언행을 많이 했거든. 그런데도 팁을 많이 받으려고, 일을 잘해보려고 노력하면서 결국에는 센스가 생겼잖아.”
“내가 한 질문 외에 개인적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다면?”
“일단 어떤 일이든 닥치고 해 보세요. 그리고 알바들 사이에서 ‘정직원이 아닌데 우리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라고 말이 나올 때가 있는데, 그런 마인드로 일을 나갈 거면 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어. 그런 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물론 그 말이 맞긴 하지만, 그런 마인드로 일을 한다면 내가 원하는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없어. 모든 일에는 최선의 노력이 있어야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 내가 이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일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내가 미래에 원하는 직업을 가졌을 때 자신이 원하는 성취감과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 같더라. 현재 우리가 하는 알바는 생계형일 수도 있고, 경험용일 수도 있고, 단순 벌이일 수도 있지. 하지만 이 세 가지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발돋움이기 때문에 이 일 하나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신경 쓰지 못한다면 그건 자신의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의지 없다고 볼 수 있어. 또한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알바를 행하는 태도가 자신이 원하는 미래, 직업을 대하는 태도와 일치한다고 생각하면 내 경험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거야. 자신의 미래가 확고하더라도 반대의 경험을 한 번 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어.“
“마지막 말은 아까 나한테도 개인적으로 해준 말이네?”
”그렇지. 내가 그 말을 해준 이유가 비교군이 생겨야 내가 확실히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있어. 원하는 점수가 안 나왔더라도 대학은 한 번 경험 삼아 가보고, 아니다 싶으면 휴학하고 원래대로 공부하고. 내 취향의 책이 있더라도 정반대의 내용이 담긴 책을 읽어보고, 자신과 의견이 맞다고 생각되는 책이더라도 더 깊게 사료해 보고.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면서 ‘아, 이건 아니다…’라고 하나씩 지우는 소거법을 적용할 수도 있고, ‘내가 이걸 진짜 좋아했구나…’하는 리마인드도 되고.”
마이 베프. 인생 5회차 5번 친구. (친구의 신상 보호를 위해 사진은 같이 놀러다니며 찍은 것으로 대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