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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명이오 Apr 18. 2023

불황이든 호황이든 똑같다는 50대 자영업자

남한테 보이기 위한 허상에 사로잡히지 말길

 50대가 되어서 자영업을 시작한 엄마 아빠가 최근에 거래처분들이나 직원분들과 겸상을 많이 한다고 정작 딸과는 밥을 잘 못 먹었다.(우리 부모님이 사장이 된 이후로는 회식에 퇴사하신 분이나 거래처분이나 다 편하게 참석하신다. 직원분들이랑 펜션에 놀러 갔을 때도 거래처분이 같이 와서 재밌게 노셨다.) 다음은 오랜만에 삼수붕어와 저녁 식사하면서 나눈 대화이다.


 “아빠는 이 업계(제조업/건축자재 가공 및 유통)에 평생 있었잖아. 지금 경기를 0~100까지 숫자로 표현하면 어느 정도야?”


 “언제나 50이지.”


 “그래도 호황/불황은 있잖아.”


 “우리나라가 왜 세계적인 대기업이 많은 것 같아? 아빠 생각에는 우리나라가 그만큼 어려워봤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불황이라고 해도 못 할 건 없다. 자영업이 다 넉넉하게 갖추고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처럼 가진 건 없어도 은퇴 압박 때문에 마지못해 창업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잖아… 나도 처음에 은행 돈이라도 남의 돈 쓰는 게 꺼려져서 많이 망설였는데, 그래도 은행에 문을 두드리면 담당자가 알려주는 지원이 생각보다 많으니 괜찮았다. 나는 월급쟁이 하던 때보다 지금 생활이 훨씬 낫다. 엄마는 니한테 이런 얘기하지 말라 하지만, 내가 1년에 세금을 ~원(필명25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 내는데 월급쟁이 할 때는 상상도 못 했다. 본인이 일하던 분야에서 자영업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도 잘 준비하고, 은행에 문도 두드려 보고, 본인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다 받고 시작하길 바란다.”


 “아한테 그런 얘기하지 말라니까!”


 “아니, 아가 물어본다이가.”


 “그건 안 물어봤다이가!”


 “ㅇ여사, 일단 좀 들어보자. 아무튼 아빠도 토요일에 할머니 요양원 면회 가고 후회를 많이 했다. 니 말대로 아빠가 더 일찍 시작해서 돈이 많았더라면 할머니를 더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 있었겠지. 누구는 돈이 있어도 외면하고, 누구는 없이 살아도 할 도리는 하고 사니까. 우리가 지금보다 재산이 많았으면 할머니도 집에 가고 싶다고 울 일은 없었을 거다. 하지만 사업도 다 때가 있어. 지금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통보받아서 시작한 사업이지만, 엄마랑 아빠가 일찍 독립을 했다면 그 회사가 망하는 건 뻔했는데, 형님/동생들을 떳떳하게 모셔올 수가 없었을 거다. 오히려 지금 정직할 수 있어서 좋다. 사람은 다 자기 그릇이 있고, 그것을 키울지 말지는 본인 선택이다.”


 아빠가 샐러드가 담긴 대접을 가리켰다.


 “아빠는 월급쟁이 할 때 내가 저 정도는 되는 줄 알았어. 그런데 그건 온전히 내 그릇이 아니라, 예전 사장이 나를 이용한 거고. 지금은 대출은 남아 있지만, 이런 그릇 정도는 되지 않나 싶다.”


 “아저씨/삼촌들이랑 거의 30년을 사이좋게 지낼 수 있었던 비결은 뭐라고 생각해?”


 “아빠의 노력이지.”


 “거 참~”


 “ㅇ여사, 맞나? 안 맞나?”


 “그것보다도 우리가 회사 시작하고 먹는 거에 돈을 안 아꼈다이가. 그런 거에 괜히 돈 아끼면 서럽기만 하지. 일할 맛도 안 나고.”


 “사회생활 몇 년 차쯤부터 사람 보는 눈이 생겼다고 자각했어?”


 “근데 그건 본인이 만들어낸 허상 같은데? 나도 형님/동생들이랑 같이 일한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처음 보는 모습이 너무 많다.”


 “내가 이 사람을 다 파악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본인이 선입견을 빨리 심었을 뿐, 그 사람의 본체는 아는 게 아니라고?”


 “그렇지. 다 착각이야. 사람은 항상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뿐. 나는 네 엄마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나? 아직 모르는 거 많다. 근데 같이 산다. 단지 이 세상에는 어제 성공했던 방법이 오늘 안 통할 때, ‘아씨, 어제 이렇게 해서 됐는데 왜 오늘 안 돼!’ 짜증 내는 사람과 ‘음? 어제 이렇게 해서 됐는데 오늘은 안 되네? 어제랑 오늘이 뭐가 다르지?’ 생각하는 사람으로 나뉠 뿐이다. 내 생각인데… 요즘 애들은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보고 자라서 뭐든지 결론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최근 들어 나도 유튜브를 자주 보니까 그런 경향이 생긴 것 같은데, 잘 만들어진 유튜브 영상은 서론-본론-결론으로 짜여 있지만, 인생의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미래는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다른 사람들 성공담을 들으면 니 나이보다 처세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적용할 수 없다. 다 자기가 겪어봐야 알지. ‘사람’보다는 ‘시대’를 이해해야 성공하는 것 같다. 불변의 진리는, 인생은 내가 부족하더라도 남한테 폐 끼치지 않고 조그만 것을 주고받는 사람이 잘 산다.”


 “그래서 거래처분들도 우리를 알아보고 간식 같은 걸 챙겨주시나?”


 “그렇지. ㅇㅇ아, 니가 아빠보다 오래 살 거 아니가. 다 지켜봐라. 사람 일은 돌려받는다.”


 “아빠 지금 50대 중반인데, 50 평생 지켜보면서 권선징악 원리에 따라 진짜 벌 받은 사람 봤어?”


 “사람마다 똑같은 상황을 지켜봐도 ‘아, 저 인간 결국 벌 받았네.’할 수도 있고, ‘이거랑 저거랑 별 상관없어 보이는데?’할 수도 있지. 그래도 ‘보시’는 베푼 자에게 돌아오는 것 같다. 니도 알다시피 주변에 돈 많은 사람 있는데, 그 사람이 의미 있게 돈 쓰는 거 봤나?”


 “으으응~”


 “그 자체로 이미 벌 받았다고 본다. 돈을 벌었으면 가끔 의미 있게 써야 돈을 번 이유가 되지. 통장 잔고 숫자 자체가 목적이 되면 그게 무슨 삶이고? 가족끼리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어봤나? 병든 부모님을 전문가를 들여서 가족 품에 모셨나? 실물자산이 있어도 양도세 때문에 벌벌 떨면서 팔지도 못한다이가. ‘내가 이만큼의 돈을 열심히 벌어야지!’해서 벌었으면 본인이 그다음에 목표가 있어야지.”


 “그러니까 아빠 말은 통장 잔고 숫자만 보고 살면 허상인데, 그걸 은퇴 후에 의미 있게 못 쓰는 것만으로도 본인이 맹목적인 그릇이 된 벌이라고?”


 “응. 그게 혼자 번 돈도 아니고, 직원들이 뭉쳐서 번 건데 혼자 끌어안고 쓰지 못하는 것만 해도 벌이라. 그만큼이 자기 그릇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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