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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폭풍 꽃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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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핌비 Oct 05. 2024

우리는 언제 비로소 작은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가?

4화.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작은 것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작은 것들이다."
"It is the little things that are infinitely the most important."

마하트마 간디 (Mahatma Gandhi)


진단을 받고 난 뒤 며칠간, 나는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영화 속에서 보았던 암투병 여주인공들의 고통 속에 몸부리 치는 장면 말이다. 구토를 하러 화장실로 달려가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그러나 첫 번째 항암주사를 맞은 후 이틀은 고요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괜찮네'라는 생각을 하며 평온을 즐겼다. 어쩌면 영화 속 장면은 나를 찾아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기대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고통은 마치 내 몸 주위에 송곳이 있어 마구 찌르는 고통이었다. 영화보다 현실은 더 강했다. 뼈와 살이 따로따로 누가 누가 더 아플 수 있나 내기를 하는 듯한 고통. 나는 의사가 처방해 준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 후 겨우 잠들 수 있었고, 고통이 찾아오기 전 시간에 맞춰 약을 먹으며 겨우 버텼다. 


내 몸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속눈썹도 빠지고, 심지어 코털까지 없어졌다. 나의 몸의 작은 것들이 나를 떠났다. 백혈구는 사라져 갔고, 나는 기능을 잃어가는 나의 신체를 느끼며 그 무력감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몸에 붙은 모든 털들이 사라지자 그제야 나는 그 작은 털들이 내 삶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비로 알게 되었다. 속눈썹이 사라지마 눈이 금세 마르고 먼지가 쉽게 들어왔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눈꺼풀이 서로 붙었다. 평소에 화장할 때 마스카라를 해줘야 하는 귀찮은 존재였는데, 코털의 더 중요했다. 코털이 사라지자 콧물이 바닥으로 그냥 뚝 떨어졌다. 그 작은 털들이 나를 도와주고 있었구나.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녀석은 바로 백혈구였다. 

내 몸을 지키던 이 작은 전사들이 항암주사를 맞은 후, 급격히 사라졌을 때 나는 그들의 존재를 절실히 느꼈다. 그 전사들이 다시 돌아와 백혈구 수치가 500이 넘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500만 넘으면 그래도 고통이 덜했기에 매일매일 피를 뽑으며 나의 소중한 전사들이 내 몸으로 얼마나 돌아왔는지를 확인했다. 


간디는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작은 것들이다"  만약 내가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내 몸 안에 일어나는 이 작은 변화들을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머리카락, 속눈썹, 코털 그리고 백혈구 등 그 작은 것들이야말로 내가 살아가는데 중요한 요소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함이 반복적 훈련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나는 이 고통을 훈련처럼 받아들였다. 매일 조금씩 내 몸의 변화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지 고민했다. 


내 몸은 지금 비록 무너지고 있었지만, 그 무너짐 속에서도 나는 살아있다. 작은 것들로 구성된 내 몸은 많은 것들이 사라졌음에도 다른 작은 것들로 버티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작은 것들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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