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작은 것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작은 것들이다."
"It is the little things that are infinitely the most important."
마하트마 간디 (Mahatma Gandhi)
진단을 받고 난 뒤 며칠간, 나는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영화 속에서 보았던 암투병 여주인공들의 고통 속에 몸부리 치는 장면 말이다. 구토를 하러 화장실로 달려가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그러나 첫 번째 항암주사를 맞은 후 이틀은 고요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괜찮네'라는 생각을 하며 평온을 즐겼다. 어쩌면 영화 속 장면은 나를 찾아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기대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고통은 마치 내 몸 주위에 송곳이 있어 마구 찌르는 고통이었다. 영화보다 현실은 더 강했다. 뼈와 살이 따로따로 누가 누가 더 아플 수 있나 내기를 하는 듯한 고통. 나는 의사가 처방해 준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 후 겨우 잠들 수 있었고, 고통이 찾아오기 전 시간에 맞춰 약을 먹으며 겨우 버텼다.
내 몸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속눈썹도 빠지고, 심지어 코털까지 없어졌다. 나의 몸의 작은 것들이 나를 떠났다. 백혈구는 사라져 갔고, 나는 기능을 잃어가는 나의 신체를 느끼며 그 무력감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몸에 붙은 모든 털들이 사라지자 그제야 나는 그 작은 털들이 내 삶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비로 알게 되었다. 속눈썹이 사라지마 눈이 금세 마르고 먼지가 쉽게 들어왔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눈꺼풀이 서로 붙었다. 평소에 화장할 때 마스카라를 해줘야 하는 귀찮은 존재였는데, 코털의 더 중요했다. 코털이 사라지자 콧물이 바닥으로 그냥 뚝 떨어졌다. 그 작은 털들이 나를 도와주고 있었구나.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녀석은 바로 백혈구였다.
내 몸을 지키던 이 작은 전사들이 항암주사를 맞은 후, 급격히 사라졌을 때 나는 그들의 존재를 절실히 느꼈다. 그 전사들이 다시 돌아와 백혈구 수치가 500이 넘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500만 넘으면 그래도 고통이 덜했기에 매일매일 피를 뽑으며 나의 소중한 전사들이 내 몸으로 얼마나 돌아왔는지를 확인했다.
간디는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작은 것들이다" 만약 내가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내 몸 안에 일어나는 이 작은 변화들을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머리카락, 속눈썹, 코털 그리고 백혈구 등 그 작은 것들이야말로 내가 살아가는데 중요한 요소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함이 반복적 훈련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나는 이 고통을 훈련처럼 받아들였다. 매일 조금씩 내 몸의 변화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지 고민했다.
내 몸은 지금 비록 무너지고 있었지만, 그 무너짐 속에서도 나는 살아있다. 작은 것들로 구성된 내 몸은 많은 것들이 사라졌음에도 다른 작은 것들로 버티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작은 것들이 돌아왔다.